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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의 규정 속도는?

by 여유수집가

하이디 담임 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하이디가 수학 시간에 문제 푸는 속도가 느려 속상해한다며 집에서 연습을 시켜주면 좋겠다는 연락이었다. 문제 푸는 요령이 없어 그렇다며 하이디가 아무렇지 않으면 상관이 없는데 속상해하니 연락을 드렸다고 하셨다. 초등학교 1학년, 학교에서 배우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뒹굴뒹굴 놀다가 책을 보면 그것으로 충분한 날들, 문제집은 거리가 먼 이야기였다. 방과후 수업만으로도 바쁜 아이. 집에서는 놀게 해 주리라 다짐했지만 선생님의 연락은 내 마음을 조급하게 했다. 당장 연산 문제집과 수학 교과 문제집을 주문했다.


매일 날짜를 써두고 연산 문제집 3장에 수학 교과 문제집 2장을 풀자고 했지만 8살에게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엄마가 집에 오기 전에 다 해두라고 했는데 알아서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울까. 일별 체크리스트를 만들고 임무를 완수하면 스티커를 붙여주고 스티커판을 완성하면 선물을 사주는 것으로 동기부여를 해도 할까 말까 한 날들. 연산은 +1에서 시작해 +6에 도착하면서 어느 정도 속도도 붙고 습관도 잡혔지만 수학 교과 문제집은 아이의 컨디션에 따라 좋아하는 영역인지에 따라 완성도가 너무 달랐다. 어느 날은 다시 되짚어볼 문제 하나 없이 잘 풀고, 어느 날은 모든 문제를 모조리 읽다 말고 풀어 별표 투성이고, 어느 날은 2장 중 1장은 딱 빼놓고 풀고. 아직 교과 진도를 따라잡지 못해 복습을 하는 상황이라 엄마의 마음은 급했지만 혹여 아예 안 한다는 보이콧을 선언할까 봐 티를 내지 않는 인내가 너무도 필요했다.


며칠 전에도 퇴근을 하고 집에 가니 아이는 엄마 숙제를 하고 있었다. 연산 문제집은 완료. 수학 교과 문제집을 풀고 있었다. 차라리 내가 없었으면 더 후딱 풀었을 텐데 엄마가 등장하니 엄마와 놀고 싶어 문제 푸는 속도는 더더욱 느려졌다. 그만 풀고 놀자고 해야 하나... 그래도 약속인데 하라고 두어야 하나... 갈팡질팡하고 있는데 갑자기 툭하고 튀어나온 아이의 말. "숙제하기 싫어 죽고 싶다." 깜짝 놀란 내가 남편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남편은 아이와 마주 앉아 대화를 시작했다. 죽고 싶다는 말이 얼마나 나쁜 말인지에 대해. 아빠와 마주 앉아 잘못했다고 말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는데 내 탓인 것만 같았다. 수학 그게 뭐라고 좀 못 풀면 어떻다고 숙제하기 싫어 죽고 싶다는 말을 하게 하는 것인지. 아이가 제대로 뜻을 알고 쓴 것이 아니라도 생각하려 해도 머리와 마음은 따로 놀았다.


사건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다시는 '죽고 싶다'는 말을 쓰지 않기로 약속을 한 뒤 남편이 아이를 안아 주는데 아이의 눈에서 눈물이 터졌다. 이번에는 전학을 가고 싶단다. 같은 반에 개구쟁이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 때문에 전학을 가고 싶고, 수업시간에 딴짓을 하면 혼내는 선생님이 무서워 전학을 가고 싶고, 공부가 하기 싫어 전학을 하고 싶고, 쉬는 시간이 너무 짧아서 전학을 가고 싶단다.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도 개구쟁이 친구들은 있고, 어떤 선생님이라도 수업시간에 딴짓을 하면 혼을 낼 것이고, 학생은 어디서든 공부를 해야 하고, 쉬는 시간은 다른 학교도 짧다는 말로 아이를 설득하는데 아이는 또 말한다. 유치원 단짝 친구와 같은 학교에 다니고 싶다고. 아이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따라가다 보니 다다르는 결론. 늘 잘한다고 칭찬을 받던 중국어 시간에 노래가 너무 길어 다 외우지 못했고, 같은 반 단짝 친구는 실뜨기를 잘하는데 자신은 서툴러서 같이 놀지 못했던 속상한 마음의 표출이었다.


꼴찌여도 즐겁게, 체육대회 달리기 중

소근육과 대근육 발달이 또래에 비해 느려서 잘하는 것보다 못하는 것이 더 도드라지는 아이. 줄넘기도 잘 못하고 친구들이 요즘 주로 하고 논다는 실뜨기도 잘 못해서 의기소침했던 날들. 그래도 중국어는 잘한다고 칭찬을 받았었는데 그 중국어마저 못했으니. 못하는 것들에 대한 속상한 마음이 겹친 지친 하루였던 것이다. 잘하던 일을 잘 못하게 될 수도 있다고 이야기를 하다가 잠깐 호흡을 골랐다. 중국어를 잘한다고 당당해하던 아이가 위축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상황을 물었다. 어떤 노래였냐고. 하이디만 다 못 외운 것이었느냐고. 아이는 처음 배운 노래였고 친구들도 다 같이 어려워했다고 대답을 했다. 늘 먼저 외웠고 늘 먼저 따라 했던 시간. 그 '먼저'를 못해내면서 아이는 초조했었나 보다. 어느 속도에 장단을 맞춰줘야 하나. 절하는 것에 대한 기준부터 다시 이야기를 꺼냈다. 즐겁게 하면 잘하는 것이라고. 무조건 먼저 하고 다 하는 것이 잘하는 것은 아니라고.


쉽게 말한다고 해도 그건 어른의 생각. 어른의 말은 아이의 마음에 쉽게 닿지 못했다. 그렇다면 말보다는 행동. 다 못 푼 수학 문제집을 덮고 실뜨기 연습에 돌입했다. 한번 더 한번 더 연습을 반복하며 아이는 한 단계 한 단계 익숙해져 갔다. 첫 단계도 어버버버 하던 아이는 '소 눈' 단계까지는 천천히 할 수 있게 됐다. 비로소 얼굴에 피어나는 웃음. 내일 단짝 친구와 실뜨기를 하겠노라 설레어했다. 실뜨기를 하면 친구들은 다음 그다음 단계까지 척척할 텐데. 너의 단계가 아무것도 아닐지도 모르는데. 어쩌면 천천히 한다고 또 핀잔을 들을 수도 있는데. 많은 말들이 떠올랐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직접 부딪혀야 하는 일이니까. 아직은 순수하고 착한 아이들이라 하이디의 작은 발전을 친구들이 응원해줄지도 모르니까. 친구들의 핀잔도 단단히 이겨낼 수 있는 하이디일지도 모르니까.


달팽이면 어때, 우리 즐겁게 가자!

이번에는 또 속도와의 전쟁이다. 수학 문제를 푸는 속도, 중국어를 잘하는 속도, 실뜨기를 못하지 않는 속도. 친구들보다 앞서는 속도, 친구들과 함께 가는 속도, 친구들보다 뒤처지지 않는 속도. 아이를 키우는 것은 모르겠는 것 투성이다. 오늘도 또 모르겠다. 어느 속도에 맞춰 아이를 키워야 하는 것인지 내가 아이에게 바라는 속도가 너무 빠른 것은 아닌지 또는 너무 느긋하게 바라보는 것은 아닌지 도통 모르겠다. 실뜨기마저 숙제가 되어버린 느낌에 또다시 씁쓸한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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