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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살과 38살, 새해 계획을 말하다

by 여유수집가

2018년 마지막 날, 아이에게 물었다. 새해 계획은 무엇이냐고. 트렌디한 카페에서 달콤한 타르트를 먹으며 던진 질문. 거창한 기대 없이 의례 다들 하는 질문이니 그저 가볍게 아이에게 해본 말이었다. 하지만 아이는 의욕에 넘친다. 아빠와 엄마의 새해 계획을 만들어주겠단다. 아빠는 일찍 퇴근하기, 엄마는 떡국 맛있게 만들기란다. 만두를 꼭 넣어야 한다는 당부도 함께.


엄마보다 훨씬 자주 일찍 퇴근하는 아빠인데 아이는 왜 아빠의 새해 계획에 일찍 퇴근하기를 말했을까. 아하! 2018년 마지막 날 엄마는 휴가인데 아빠는 회식이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역시, 아이들은 내일이 아닌 오늘을 산다. 엄마는 달달한 타르트를 먹으며 오늘 너무 많이 먹어 살 좀 찌겠구나 걱정하지만 아이는 그저 달달함이 주는 오롯한 달콤함을 마음껏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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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콜라테를 입 주위에 묻히고 이제 자신의 계획을 말하는 여덟 살. "나는 열심히 노력해서 꾸준한 아이 되기." 아니, 여덟 살의 마지막 날을 살고 있는 아이 입에서 '꾸. 준. 한'이라는 말이 나오다니! 순간 나는 급하게 나의 기억을 되짚었다. 내가 평소 아이에게 꾸준히 해야 한다고 강조를 했었나. 반복해서 말했었나. 딱히 떠오르는 기억이 없었다. 놀람을 감추고 그저 반사적으로 나온 엄마의 질문은 "무엇을 열심히 노력할 건가요?". 아이는 생각주머니가 커지는 책을 많이 읽고 스케치폰(핸드폰 모양 장난감으로 게임을 할 수 있음)은 '쬐끔'하겠다고 대답을 했다.


아이가 말하는 꾸준함을 듣고 유독 놀랐던 이유는 엄마인 내가 아이에게 알려주고 싶었던 가치와는 달랐기 때문이었다. 아직은 초등학교 저학년. 꾸준함보다는 다양함의 가치를 더 먼저 알기를 바랐다. 조심성이 많고 예민한 아이이기 때문에 더 과감하게 도전하고 새로운 것을 즐기는 아이이기를 바라는 엄마 마음이 앞선 반응이었다. 그나마 아이 앞에서 놀람을 표현하지 않았음이 다행이라면 다행.


이제는 궁금증을 해결할 차례다. 왜 꾸준히 하겠다는 생각을 했느냐고 물었더니 아이는 명쾌하게 대답한다. 학교 교훈이 '스스로 바르게 꾸준히'라서 그랬다고. 사실 교훈이나 급훈이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저 멋스럽게 지어낸 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고등학교 때 급훈을 정할 때는 담고 있는 의미보다는 다른 반 보다 튀어 보이기 위해 애쓴 기억마저 난다. 하지만 하이디에게는 달랐다. 교훈이 새해 계획이 될 만큼 큰 의미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 아이와 나는 분명 다른 존재다. 내가 그랬으니 아이도 그럴 것이라며 지레짐작하지 말아야 한다고 결심하지만 늘 내 생각이 앞서간다. 내가 나은 아이니까. 나를 닮았을 테니까. 내가 늘 이렇게 말하니까. 무엇보다 내가 어른이니까라며 아이를 내 기준과 잣대로 판단하려 한다. 있는 그대로의 아이를 바라봐주기, 그리고 있는 그대로의 아이 모습을 인정하고 사랑하기. 2019년 부모로 하는 나의 다짐이다.


이제는 별 의미가 없다며 세우지도 않았던 새해 계획. 아이에게 묻지만 말고 나도 직접 세우기로 한다. 아이를 따라서 나는 꾸준히 읽고 쓰는 2019년을 다짐한다. 읽으면서 배우고 쓰면서 나를 돌아볼 것이다. 지금처럼 쓰지 않았으면 곱씹지 않았을 생각. 오늘을 사는 아이라는 것. 엄마와 다른 아이라는 것. 쓰고 돌아보면서 조금씩 바른 방향으로 나침반의 방향을 고쳐 가다 보면 나도 하이디도 함께 행복한 2019년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행복한 우리의 2019년을 그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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