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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초등학교 1학년 종업식

by 여유수집가

내일이면 종업식이다. 워킹맘의 무덤이라던 초등학교 1학년이 끝났다. 공개수업에서 번쩍번쩍 손을 들고 또박또박 발표하는 하이디는 예상보다 더 야무졌고, 토론 수업에서 친구들 반응이 걱정돼 말 한마디 선뜻 하지 못한 채 입을 다문 하이디는 예상보다 더 소심했다. 어떤 친구 엄마는 하이디를 보고 인사를 너무 예쁘게 잘하는 밝은 아이라고 했고, 어떤 친구 엄마는 아이에게 들었다며 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는 하이디를 조용한 아이라고 했다. 중국어와 바이올린을 척척 잘하는 뛰어난 아이이기도 했고, 그림 그리기에 서툴고 줄넘기를 반에서 제일 적게 넘는 아이이기도 했다.


유치원 때라고 하이디가 크게 달랐던 것은 아니다. 한글을 빨리 깨쳐 책을 술술 읽었지만 친구들이 모두 자신의 이름 세 글자를 쓸 때 하이디는 자신의 이름 중 가장 쓰기 쉬운 '유' 한 글자만 쓸 수 있었다. 엄마 참여 수업 무대에서 주인공을 했던 아이였지만 단짝 친구가 생기기까지는 반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하이디는 자신의 기질을 유지하며 자신의 속도대로 자라고 있는데 학교라는 공간은 내 마음을 조급하게 했다. 학생이라고 해도 이제 갓 1학년. 시험이 있는 것도 아니고 등수를 매기는 것도 아닌데 괜히 긴장이 됐다. 특히 여자아이들은 끼리끼리 무리를 지어 놀기 시작한다는데 하이디 혼자 덩그러니 남으면 어쩌나 초조했다.


다행히 너무 좋은 선생님을 만났다. 선생님께서는 엄마가 걱정하는 아이의 기질을 잘 파악해 살펴 주셨다. 하이디가 좋아하는 친구와 짝을 할 수 있는 기회, 어울릴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주셔서 하이디는 예상보다 빠르게 그 친구와 단짝이 됐다. 하이디가 못하는 부분보다 잘하는 부분을 크게 칭찬해주시며 아이가 주눅 들어하는 순간에 응원의 말로 용기를 북돋아 주셨다. 토론 수업이 싫어 금요일에는 학교에 가기 싫다던 하이디도 언젠가부터 그 말을 하지 않게 됐고, 마지막 토론 수업 날에는 수업이 재미있었다는 이야기도 하게 됐다. 게다가 한없이 서툰 그림 실력에도 하이디는 여전히 자신이 그림을 잘 그린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다. 무엇보다 내가 덜 걱정하고 빨리 대처할 수 있도록 하이디의 학교 생활을 꼼꼼하게 전해주셨다.


엄마인 나도 힘을 냈다. 불안해한다고 하이디가 갑작스레 달라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내 마음이 아이를 더 힘들게 할 수도 있기에 초조한 마음을 감추려 애썼다. 아침마다 포스트잇 편지를 쓰며 아이에게 응원의 말을 전했고 세상에서 제일 편한 엄마와 신나게 놀 수 있도록 늘 부족한 시간이었지만 최선을 다해 하이디와 놀았다. 퇴근 후 엄마로 불리는 시간보다 '해바라기', '바이올렛', '주주', '라라' 등 캐릭터 이름으로 불리는 시간이 더 길어도 괜찮았다. 또 내 걱정을 너무 드러내지 않기 위해 나의 회사생활이 어땠는지를 먼저 이야기하며 은근하게 아이의 학교 생활과 친구 관계를 물었다.


20190212_071013.jpg 며칠 전 내가 써준 포스트잇 편지

시간이 흐르며 걱정을 슬며시 내려놓게 되었는데 하이디는 다시 나를 긴장시켰다. 여름방학이 끝난 다음 아이는 학기초의 모습으로 돌아가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낯설어했다. 한 달의 공백이 엄마에게는 별 일이 아니었는데 하이디에게는 별 일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2주의 시간이 흐른 뒤 하이디는 혼자만의 적응을 끝내고 방학 직전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겨울방학이 끝난 뒤 개학. 설마 이번에도 그럴까. 친구들과 보낸 시간이 1년을 채워가는데. 설마는 늘 섣부른 기대다. 점심시간에 무엇을 했냐고 물어보면 혼자 상담실이나 도서관을 갔다고 했고, 가끔은 책을 읽고 가끔은 멍하니 앉아 있었다고도 했다. 이제는 괜찮을 거라며 아무렇지 않게 질문했는데 여전히 낯설어하는 아이를 보며 마음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그렇다고 단짝 친구한테 같이 놀자고 먼저 말하지 그랬냐며 아이를 채근할 수도 없었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하이디에게는 2학기라는 긴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겨울 방학은 달랐다. 개학을 하고 2주의 시간이 지나고 나니 바로 종업식이다. 관계를 되돌릴 시간이 없다. 1학년을 무사히 잘 마치게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막판 이렇게 다시 아이의 안타까운 기질을 마주하게 된다. 겨울방학이 끝나고 친구들과의 관계를 낯설어하는 아이를 보며 선생님께 부탁을 드려볼까도 생각했다. 단짝 친구와 같은 반이 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그러나 곧 마음을 돌려 엄마의 조급함을 내려놓는다. 언제까지 내가 아이의 인생에 개입할 수는 없으니까. 하이디가 직접 걸어야 할 길이니 하이디의 운명에 맡기기로 한 것이다.


20190113_165853.jpg "울 엄마는 내가 짱 이래" - 뮤지컬 '마틸다' 노래의 한 구절

다시 또 시작이다. 이제 친구들 뿐만 아니라 선생님까지 바뀌면 아이는 또 얼마나 낯설어하며 대체 어느 정도의 적응 기간을 가져야 할까. 다른 친구들은 1학년 때보다도 더 빨리 친해지고 더 빨리 새로움에 적응할 텐데. 1학년 입학을 할 때처럼 불안하고 초조하지만 다시 힘을 내어 본다. 하이디에게는 하이디만의 속도가 있기에 엄마의 시선으로 속도를 평가하지 않으려 한다. 부족한 점보다는 예쁜 점을 더 크게 생각하며 가장 친한 친구로 제일 다정한 사람으로 하이디 곁에서 하이디를 응원해주기로 한다. 그렇게 뒤를 든든히 받치고 있으면 하이디를 더 빨리 뛰게 할 수는 없겠지만 넘어지려는 순간 완충재가 되어주고 조금 더 빨리 일어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지 않을까.


초등학교 1학년만 잘 보내면 한시름 놓을 줄 알았는데 육아는 이렇게 늘 다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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