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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해도 괜찮아

by 여유수집가

띠띠띠띠띠띠. 도어록 버튼을 누르고 현관문을 열면 허겁지겁 아이가 거실로 나온다. 그리고 원망스러운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왜 벌써 왔냐고 타박을 한다. "이제 30분밖에 안됐어." 아빠나 할머니가 상황을 말해준다. 최애 프로그램, 캐리 TV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TV를 많이 보면 생각주머니가 작아지고 생각주머니가 작아지면 짜증도 많이 나게 되고 재미있는 놀이도 할 수 없게 된다는 엄마의 말이 아직은 통하는 초등학교 1학년. 스스로 TV를 끄고 엄마 곁으로 온다.


20180915_132927.jpg #캐리보다는아니지만 #책을좋아하는아이 #제주도 #디어마이블루

최근 들어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반복되는 퇴근 풍경이었는데 딱 하루 달랐던 날. 아이는 TV를 보지 않고 소파에 누워 책을 보고 있었다. 보통 씻는 것도 허락을 받아야 하고 씻고 나서 무슨 놀이를 할지도 정해야 하는데 그런 재촉도 없이 계속 책을 보고 있었다. 달라진 아이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시키지 않아도 독서록을 쓰고 하나도 모자라 더 쓰겠다고 했다. 잔소리의 'ㅈ'도 꺼낼 필요 없는 평온한 저녁이었다.


이제는 씻고 자야 할 시간. 세면대 앞에 선 아이가 버럭 화를 낸다. "내가 속상한 일이 있었다고!!!" 사실 잔소리의 'ㅈ'도 할 필요가 없던 시간이었지만 내 입은 계속 달싹거렸다. 다다다다 수다쟁이에다가 이것 하자 저것 하자 엄마랑 하고 싶은 역할놀이도 많은 아이가 조용히 머무를 때는 무슨 일이 있었다는 신호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너무 꼬치꼬치 물어보는 엄마가 되지 말자고 엊그제 결심을 했기에 그마나 달싹이는 입을 끝내 열지 않을 수 있었다.


아이가 먼저 말을 시작하니 이제는 내가 물어봐줄 차례. "무슨 일이 있었는데?" 아이는 격한 어조로 이야기를 꺼낸다. "창의과학놀이터에서 공 꺼내기를 했다고..." 하나의 과제를 모둠 친구들이 상의해 함께 해결방법을 찾는 수업인 창의과학놀이터. 이번 주 주제는 수저, 집게, 포크 등 도구를 이용해 구멍 속 공을 꺼내는 것이었다. 하이디는 수저를 이용해 구멍 속 공을 꺼내려고 했는데 몇 번을 실패해서 포기를 했다고 한다. 다른 친구들은 다 성공을 했는데......


근육 발달이 느린 아이. 남들보다 먼저 읽었지만 남들보다 쓰는 것은 훨씬 늦었고 아직까지 에디슨 젓가락을 쓰며 그림 그리기도 만들기도 서툴러 걱정이 많다. 게다가 2학기 학부모 상담에서 선생님도 나와 같은 걱정으로 집에서 종이접기를 많이 해볼 것을 권유하신 상황이었다. 걱정만 하고 있었는데 사건이 발생했다.


"하이디야, 엄마가 상담 갔을 때 선생님이 ***하고 ****은 정말 잘 한다고 칭찬하셨다는 이야기 했지?

하이디한테도 선생님이 ***는 천재라고 말씀하셨다며,

사람은 다 잘할 수가 없는 거야.

*** 잘하는데 공 꺼내기 좀 못할 수도 있지 뭐.

바로 포기한 게 아니고 몇 번 해보고 안되길래 포기한 건 나쁜 게 아니야."


다행히 하이디는 고개를 끄덕끄덕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사실 아이가 못하는 것에 크게 괘념치 않는다.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이 극명하게 갈리는 아이라서 못하는 것이 있는 만큼 두드러지게 잘 하는 것이 있기에 그걸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마음이 쓰였던 것은 '포기'라는 말이었다. 포기를 말하는 아이에게 나는 어떤 말을 해줘야 할까. 고민이 됐다. "될 때까지 해보지 그랬어. 그럼 성공했을 텐데...", "몇 번 해봤으면 되는 거야. 포기도 괜찮아." 갈등했고 후자를 택했다.


지금까지 포기는 뒤쳐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될 때까지 도전했고 할 수 있다며 나를 밀어붙였다. 그래서 얻은 것도 많았지만 놓친 것도 많았다. 회사에서 칭찬과 인정을 얻었지만 어떨 때는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을 놓쳤고, 어떨 때는 편안한 여유를 가질 수 없었고, 어떨 때는 까칠함으로 상대를 아프게 했다. 포기를 없앨수록 독해졌고 팍팍함은 늘었다.


이제는 다르다. 육아휴직으로 한 번의 쉼을 가지고 나서는 하이디에게 될 때까지의 가치보다 하는 만큼의 가치를 알려주고 싶다. 몇 번 해보고 안되면 포기해도 된다고. 포기는 나쁜 것이 아니라고. 나를 넘어서는 영역까지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넘어서는 영역에서는 포기해도 괜찮다고 알려주고 싶다. 성공의 해석이 성취보다는 행복에 가깝기를 바란다. 무엇을 이루기 위해 하는 것보다 재미가 있어서 무엇을 계속하는 삶. 지금부터 내가 살고자 하는 삶이고 아이도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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