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입시 원서를 쓸 당시 담임 선생님께서는 어울리는 전공이라며 신문방송학과나 경영학과를 권하셨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법관이 꿈이었던 나는 고집스레 법대에 진학했다. 사법고시를 포기하고 입사 원서를 쓸 때는 백수로 남겨질까 불안해 조건이 맞으면 지원 이유를 회사에 따라 바꿔가며 원서를 냈다. 오래도록 법관이 되고 싶었던 것 외에 어떤 일을 하면 잘할지, 어떤 일을 좋아하는지에 대해 고민해 본 적은 없었다.
출간 예정인 책 초고의 일부다. 최종 원고에서 덜어낸 부분이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법관이 꿈이었던 나는’ 이 문장이 초고 파일을 다시 열어보게 했다.
내게는 국민학교 2학년 때부터 6학년 때까지의 일기가 남아있다. 지금은 나보다 딸이 더 즐겨 읽기에 서울집에 남겨두지 않고 굳이 제주까지 챙겨 왔다. ‘산책’에 대한 글을 쓰며 어린 시절에도 산책을 자주 했던 기억이 떠올라 일기장을 펼쳤다. 그랬던 어린 시절 일기장에서 ‘산책’ 대신 ‘꿈’을 찾았다.
1990년 4월 19일 목요일 맑음 <나의 꿈> 나의 대표적인 꿈은 두가지이다. 이비인후과 의사와 글쓰는 작가이다. 내가 왜 이런 꿈을 선택했냐면 의사는 내가 귓병으로 고생하여서, 나도 나처럼 고생하는 사람들을 도와주어야겠는 생각으로 이 꿈을 가지게 되었고 나의 취미는 글쓰기와 책읽기여서 하고 싶다.
이 일기를 읽고 당황했다. 내 기억의 오류 때문에. 나는 내가 국민학교 2학년부터 변함없이 법관을 꿈꾼 줄 알았다. 국민학교 2학년 때 담임 선생님을 무척 좋아했는데, 선생님께서 내게 법관이 어울리겠다고 하신 다음부터였다. 판사, 검사, 변호사, 인권변호사의 변화만 있을 뿐 법관의 테두리 안에 내 꿈이 머물렀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기억의 오류를 안고 살고 있을까. 어제 발견한 꿈의 오류는 당황스럽긴 했어도 ‘그럴 수도 있다’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게는 법관이 되고 싶다는 확신이 필요했기에 그 확신의 근거를 오랜 꿈에서 가져왔을 테니까. 선생님의 한마디 말에서 시작됐을지라도 그 말을 오래도록 붙들었던 건 내 의지였음을 믿고 싶었을 테니까.
대입 원서를 쓸 때만 “법관이 오랜 꿈이었어요.”라고 말하지 않았다. 문과와 이과를 선택할 때도 담임 선생님께 법관이 꿈이라는 말을 했었다. 선생님께서는 내게 수학을 더 잘하고 좋아하지 않냐며 이과를 권하셨으니까. 친구들도 부모님도 내게 법관보단 다른 직업이 더 어울린다고 하는 상황에서 홀로 꿋꿋하게 법관으로 나아가려면 기억의 오류가 당연했을지도 모른다.
‘그럴 수도 있다’라고 오류 난 기억을 편들면서도 사실 마음이 개운치는 않았다. 내 탓인 일을 남 탓으로 기억하는 오류를 범하며 살고 있을 수도 있고, 잊지 말아야 할 고마움을 지우는 오류를 범하며 살고 있을 수도 있으니까. 아프고 나쁜 기억을 덮기 위해 망각 또는 기억의 오류는 필요하지만, 두뇌의 한계가 좋은 쪽으로만 작용하면 좋겠다. 내가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범위 안에서만 기억의 오류가 범해지기를. 어쩌면 그래서 기록이 필요한 건지도 모르겠다. 내 탓인 일을 내 탓으로 인지하고, 잊지 말아야 할 일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장치로 말이다. 결국 사람답게 살기 위해 기록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조금 아쉬웠다. 국민학교 때 작가가 꿈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했다면 나는 좀 더 빨리 작가에 도전했을지도 모르니까. 아닌가? 지금이라도 꿈을 이뤘으니 꽤 괜찮은 인생인 건가? 국민학교 때부터 시작된 꿈을 여전히 이뤄가고 있다는 생각에 키보도를 두드리는 손끝에 힘이 실린다. 물론 입꼬리는 살포시 올라간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