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감놀이를 하다.
들어는 봤나. 지랄 총량의 법칙. 아이가 하루에 부릴 짜증, 더 솔직한 표현으로 지랄의 양은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유치원에서는 모범생인데 집에서는 짜증쟁이거나 유치원에서는 말썽쟁이인데 집에서는 순한 아이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더 나아가서는 하루를 넘어 인생에서도 이 법칙은 적용된다고 한다. 사춘기를 무난하게 넘겼다면 20대에 가서 늦춘기로 속을 썩인다는 것이다.
지랄 총량의 법칙은 아이들도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어쩌면 당연한 사실에서 출발한 것은 아닐까. 스트레스를 받는데 풀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짜증 혹은 지랄로 표출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가기 싫은 유치원에 가야 하고, 하기 싫은 양보를 해야 하고, 귀찮은 활동도 해야 하고. 그런 짜증을 유치원에서는 누르고 있다가 집에서 표출하거나 또는 그 반대인 경우가 되겠다. 가만 생각해보면 공동육아에서 아이들에게 폭발적인 호응을 받았던 놀이 대부분은 스트레스 해소가 가능한 것이었다.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마음껏 해볼 수 있는 것. 오늘의 물감놀이도 그랬다.
오늘 함께 놀이는 '무지개 색깔 친구들' 책을 읽는 것으로 시작했다. 책을 읽은 다음에는 각 색깔에 해당하는 물건을 맞춰봤고, 치자를 이용해 손수건 염색도 했다. 색깔 퀴즈를 맞추겠다며 손을 번쩍번쩍 들고, 물이 치자를 통해 노랗게 변해가는 모습을 보며 신기해서 눈이 동그래지고. 여기까지의 아이들 반응도 무척 좋았지만 뒤를 이어 시작된 물감놀이에 비하면 새발의 피였다.
녹말물감을 이용해 손바닥과 발바닥으로 그림을 그려보자며 시작된 물감놀이. 그림은 무슨. 손바닥과 발바닥을 비비며 춤을 추고, 방방 뛰고. 녹말과 물감을 뒤섞으며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표현하는 시간이었다. 센스 있는 동요 선곡까지 더해져 물감 디스코텍에 와 있는 기분이었다. 버려도 상관없는 옷을 입고, 커다란 김장 비닐이 바닥에 깔려 있고, 집이 아닌 주민센터의 장애물 없는 넓은 공간. 게다가 함께 뒷수습을 할 엄마들까지. 그래서 엄두를 낼 수 있는 시간이었고, 그래서 아이들을 통제하지 않을 수 있었다.
더러워진다 조심해라. 옷에 묻는다 살살해라. 친구한테 피해 준다 하지 말아라. 치울 때 엄마 힘들다 그만 해라. 몇 번이고 안된다는 말을 했어야 하는 상황. 엄마 옷에 묻지 말라고 살짝 피해 다니기만 할 뿐 함께 웃으며 가만 바라볼 수 있음에 조금 괜찮은 엄마가 된 것 같았다. 아이에게 자유를 선물하는 그런 멋진 엄마 말이다. 술을 마시거나, 노래방을 가거나, 잠을 자거나, 책을 읽거나, 그냥 멍 때리거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이런저런 방법을 찾아 헤매는 어른들. 방법을 잘 모르는 아이들에게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시간을 기꺼이 마련해주는 것 또한 부모의 역할임을 배운다. 내게로 향할 지랄을 줄여 내 스트레스를 감소시키는 시간이 됨은 물론이고.
※ 16년 7월 23일 토요일의 함께 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