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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원으로 가능했던 아이들의 낮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변주하다

by 여유수집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아이들과 야외 놀이에서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놀이다. 가만히 멈춰있는 것이 너무 어려운 개구쟁이들. 자주 접하게 되는 놀이임에도 매번 까르르 웃음이 터진다. 여기에 조금 다른 변주를 한다면? 오늘 함께 놀이의 제목은 '연극놀이'였고, 그 첫 번째 놀이가 바로 '무궁화 꽃이 --- 합니다'였다. 오타인가? 처음 공지를 보고 들었던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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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 꽃이 세수합니다."

술래가 특정 동작을 이야기하면 친구들이 그 동작을 하며 멈춰서는 놀이였다. 움직여도 걸리고, 특정 동작을 하지 않아도 걸리는 놀이. 샤워도 하고, 밥도 먹고, 잠도 자고, 만세도 하고. 아이들은 재미있어 어쩔 줄 몰라했다. 그중에서도 으뜸인 것은 "무궁화 꽃이 똥을 쌉니다."였다. 똥 싸는 포즈를 취하며 까르르 웃음이 터진 아이들은 도무지 멈춰있을 수가 없었다. 똥을 싸다 급기야 주저앉기까지. 서로 술래를 하고 싶다고 손을 번쩍 들며 아이들의 흥분 에너지가 마구 발산되기 시작했다.


아이들마다 두 번씩 술래를 하고 나서야 이어진 다음 놀이는 동물 흉내 놀이였다. 아이들마다 하고 싶은 동물을 아무 소리 없이 몸으로 표현해 다른 친구들이 맞추는 것이었다. 흉내 내는 것도 아이들마다 개성이 묻어났다. 토끼와 고양이를 선택한 여자 아이들. 개구리, 도마뱀을 선택한 남자아이들. 그리고 고양이 세수하는 모습, 개구리가 파리를 잡아먹는 모습까지 생생하게 표현하기도 하고, 표현하기보다 웃기에 바쁘기도 하고, 같은 토끼도 귀 모양을 서로 다르게 표현하고, 도마뱀을 열심히 표현했는데 친구들이 맞추지 못해 서운하기도 하고. 가지각색의 모습에도 같은 것은 하나, 아이들 얼굴에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점점 높아진 흥분 에너지는 거울놀이에서 한 번 더 증폭됐다. 엄마 또는 아빠와 마주 보고 서서 한 사람이 하는 동작을 거울처럼 맞은편 사람이 따라 하는 놀이. 발레를 하고, 뜀 뛰기를 하고, 춤을 추고, 태권도를 하고, 몸동작에서 얼굴 표정으로 단계가 넘어간 아이는 엄마를 보고 마음껏 메롱을 했다. 물론 마주선 엄마도 아이를 향해 메롱을 해야했고. 친구들과의 교감에 이어 엄마, 아빠와의 교감까지. 웃음은 공간을 가득채우고도 넘쳤다.


20170513_120339_11.jpg 팽이로 변신한 아이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흥분을 잠시 가라앉히는 책 읽기 시간. 오늘의 놀이 선생님이 '이상한 굴'이라는 책을 읽어줬다. 돼지가 굴에 들어가 너구리가 되고, 다음 굴로 들어가 딱따구리가 되고 계속 변신을 거듭하다 마지막에 다시 돼지로 돌아온다는 이야기였다. 이제 책 속의 이야기를 직접 표현해볼 시간. 의자 절벽을 지나 바닥에 붙인 테이프 외나무다리를 건너, 던지기 놀이 링 징검다리를 넘어, 현수막 물길을 지나 훌라후프 굴로 들어간 아이들은 이야기의 순서대로 변신을 시작했다. 돼지-너구리-딱따구리-고양이-마귀할멈-실-시계-나무토막-다시 돼지 순서였다. 내가 변신하며, 친구들이 변신하는 모습을 보며 아이들은 다시 한번 흥분의 세계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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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이는 그 날 저녁, 하루 중 가장 행복했던 일을 "무궁화 꽃이 똥을 쌉니다."를 했던 것이라고 말했고, 엄마가 몸이 좀 좋지 않아 대신 온 아빠는 집으로 돌아가 너무 즐거운 놀이에 감동했다고 말했단다. 그리고 공동육아 모임을 끝내고 시댁 가족 모임으로 간 나는 조카들에게 '무궁화 꽃이 ---합니다.' 놀이를 알려줬고, 여기서도 이 놀이는 대히트를 쳤다. 다음 날에도 아이는 이동하는 차에서 나와 함께 '무궁화 꽃이 ---합니다.'를 했고, '이상한 굴' 변신 놀이를 했다. '무궁화 꽃이 똥을 쌉니다.'는 몇 번을 반복해도 아이에게서 웃음을 떼어놓지 못했다.


준비물 비용 0원. 아이들을 위한 깊은 고민과 '아는 형님'에서의 싸이 겨땀파크 못지않은 선생님의 땀으로 채워진 너무 즐거웠던 시간. 아이들은 한 시간 정도 흥분 에너지 발산 후 다들 푹 낮잠을 자며 엄마들에게 휴식을 선물했다는 훈훈한 이야기도 덧붙인다. 아이들과의 놀이에 돈이 필요하거나 화려한 장난감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함께 할 친구들이 있고, 몸으로 부딪히는 놀이가 있다면 한 시간 내내 넘치게 웃을 수 있다. 그리고 우리의 놀이는 우리 조카들에게 또 다른 친구들에게 확산되며 누군가에도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 주리라 생각된다.



※ 17년 5월 13일 토요일의 함께 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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