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의 일기
지난 월요일. 이러저러한 일들로 화요일이 되어서야 사무실을 나올 수 있었다. 저녁을 먹고 다시 책상에 앉으며 아이와 영상통화를 했다. 아이는 내가 보고 싶다고 했고, 나도 아이가 보고 싶다고 하니 아이는 내게 빨리 올 거냐고 물었다. 미안하다는 나의 대답에 울먹이는 아이. 화제 전환이 필요했다.
다음 날 견학을 가는 아이에게 간식 도시락은 엄마의 숙제였다. 무엇을 싸줄까 아이에게 물었다. 아이는 포도와 바나나를 주문했다. 포도는 예측 가능한 대답이라 미리 배송을 시켜놔서 다행. 아, 이런. 바나나는 예상을 못했었다. 하지만 편의점에서 쉽게 살 수 있는 과일이기에 냉큼 그리 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아이는 기분 좋게 전화를 끊었다.
새벽 한 시가 넘은 시간. 택시에서 내려 아파트 로비를 들어서는데 불현듯 아이와의 약속이 떠올랐다. 감기 기운까지 있어 잠깐 망설였다. 미안하다고 하고 바나나를 싸지 말까. 그래도 아이와의 약속인데. 약속은 지켜야 한다고 말하는 엄마인데. 귀찮음을 이겨내고 아파트 입구에 있는 편의점으로 향했다. 엇, 바나나가 보이지 않는다. 떨어졌단다. 길 거너편 편의점에도 바나나는 없었다. 이제 어떻게 한다. 또 망설였다. 다시 집으로 돌아갈 것인가, 한 군데를 더 가볼 것인가.
이왕 나선 길. 한 곳을 더 가보기로 했다.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24시간 마트. 왕복 20분의 시간이 아쉬웠지만 아이와의 약속은 그보다 훨씬 더 소중했다. 약속을 지키는 엄마가 되고 싶었다. 다행히 마트에는 바나나가 있었고, 빠른 걸음으로 20분의 시간을 15분으로 줄여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식탁 위에 바나나를 올려놓으며 시계를 보니 새벽 두 시. 그래도 가벼운 마음으로 잠을 청할 수 있었다.
이 바나나가 보통 바나나가 아님을 아이에게 알아 달라고 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아이와 약속을 지키기 위해 새벽길을 30분 넘게 헤맨 엄마의 마음이 쌓이고 쌓인다면 시나브로 아이는 알게 될 것을 믿는다. 약속의 무게를. 약속은 지켜야 함을. 엄마는 약속을 잘 지켰음을. 그리고 자신도 약속을 잘 지켜야겠음을. 말과 글 또는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저 자연스럽게 깨달았으면 좋겠다. 지금은 깨끗하게 빈 도시락통으로 돌아와 간식이 너무 맛있었다며 활짝 웃는 아이의 얼굴만으로도 충분하다. 더 심해진 감기가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