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단풍나무를 만들다
쓸데없는 것들이 귀중 해지는 순간이 있다. 특히 아이들과의 미술 놀이를 하다 보면 그렇다. 먹고 난 요구르트 통, 다 쓰고 난 휴지의 휴지심 등이다. 오늘의 함께 놀이는 휴지심을 이용하기로 했다. 지금까지의 미술 놀이가 같은 주제의 개별 작품 활동에 주력했다면 이번에는 공동육아의 취지를 충분히 살려 협동작품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가을이라는 계절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휴지심 단풍나무 협동화'가 오늘의 놀이 주제다. 언제고 한 번은 필요한 날이 오겠지라는 믿음으로 꾸준히 모아 온 한 집의 엄청난 휴지심들, 지방 출장길 모텔에서 발견한 휴지심, 회사 화장실에서 가져온 휴지심들이 모이니 엄청난 양이 됐다. 아이들이 휴지심을 던지고 휴지심 망원경 놀이를 하는 동안 엄마들의 손은 바빠졌다. 휴지심을 단풍잎으로 자르기 시작한 것.
어느 정도 양이 잘라지자 이번에는 목공풀로 붙이기. 아이들의 고사리 손이 거들기는 했지만 엄마들의 빠른 손을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아이들은 힘 조절이 어려워 푹하고 나와버린 목공풀을 덕지덕지 발라 놓아 수습하는 시간도 꽤 걸렸고. 그래도 엄마들이 목공풀을 발라놓은 휴지심 단풍잎을 종이에 붙이는 것은 아이들도 제법 거들었다.
이제는 잎사귀를 채우고 꾸밀 일이 남았다. 지금껏 앞서 있던 엄마들이 한 발 물러나고 본격적으로 아이들이 자리를 잡을 차례. 알록달록 이 색 저 색 단풍잎으로 예쁘게 채워주리라 한껏 기대했지만 늘 기대는 크고 현실은 다른 법. 아이들은 대충대충 쓱쓱 칠하다 말고, 주변에 꽂힌 책으로 시선을 옮기고, 자기들끼리 장난을 치고, 잘라지지 않은 휴지심에 다른 그림을 그리느라 바빴다. 엄마들은 여전히 앞서 앉아 아이들을 시키고, 대신 칠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끼리 협동화를 상상했지만, 엄마와 아이들 모두의 협동화가 되었다. 물론 엄마의 역할이 훨씬 더 큰. 그러나 어떠랴. 여럿이서 하나의 그림을 완성할 수 있는 과정을 체험하는데 의의를 두면 되지. 사실 두서관 휴카페라는 장소를 선택한 것은 엄마들이었기에 옆에 꽂힌 책을 꺼내와 읽어달라는 아이들을 탓할 수만은 없었다.
아이들의 역할이 크든 작든 모두의 힘이 보태어진 협동화는 그 과정만으로도 근사했다. 카페지기도 우리의 근사함을 알아보고, 우리의 작품을 카페에 전시하겠노라고 했다.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지. 작음 힘도 보태서 힘을 모으면 근사함이 만들어지고, 그 근사함을 우리만이 아닌 다른 사람들과도 나눌 수 있다는 기쁨. 오늘도 아이들은 놀이에서 배우고, 놀이를 통해 자란다.
※ 2016년 10월 15일 함께 놀이
<함께 놀이는 이렇게>
0) 준비물: 전지 사이즈의 도화지, 휴지심, 목공풀, 양면테이프, 크레파스/색연필 등 색칠 도구, 풀, 가위,
스티커 등
1) 단풍나무 관련 동화책 나누기
2) 단풍이 되는 과정, 이유 살펴보기
3) 휴지심을 이용하여 나만의 단풍나무 꾸미기
4) 소감 발표하기 (계획은 했으나, 실행은 못함)
* 목공풀보다는 양면테이프를 이용하는 것이 휴지심 붙이기에 더 좋았음.
치우기는 힘들었겠지만 물감을 이용하면 호응도가 더 좋았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