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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놀이터를 소개합니다

일곱살과 스위스 일주일

by 여유수집가

2017년 조금 이른 여름휴가를 스위스로 정한 것은 유럽을 사랑하는 엄마 취향, 산을 좋아하는 아빠 취향, 놀이터를 좋아하는 일곱살 취향이 모두 반영된 결과였다. 일곱살이 된 아이가 이제는 10시간 이상의 비행도 견뎌줄 것이라 믿었고. 사실 엄마 역시 7년이란 시간 동안 유럽과 절연했던 터라 인내심에도 슬슬 바닥이 보인 상황이었다.


처음 유럽에 가자고 했을 때, 딸바보 남편은 아이가 힘들어하지 않을까. 아이가 좋아해 줄까를 걱정했다. 이런 남편의 걱정을 한 번에 날려버릴 수 있는 계획이 필요했다. 1일 1놀이터를 실천해보기로 한 것이다. 야심 찬 계획이었지만 미리 공표하지는 않았다. 막상 스위스에 갔는데 생각보다 놀이터 찾기가 어렵거나, 놀이터를 찾다가 길을 헤매면 그것도 낭패니까.


여행을 준비하면서 일정마다 놀이터를 정리해뒀다. 혹시 변경될지 모를 일정을 대비해 놀이터 검색 방법도 따로 메모했다. 독일어로 놀이터는 'Spielplatz'. 구글에서 찾고 싶은 지역명 + Spielplatz로 검색 후 위성으로 실제 모습을 확인하는 방법이었다.


여행을 다녀온 지금! 그 결과는? 대.성.공. 한 번의 헤맴 없이 1일1놀이터 미션을 완수했고, 아이는 지난 주말에도 스위스는 언제 또 가느냐 물었다. 물론 나와 남편에게도 최고의 여행이 되었고. 감히 말한다. 일곱살과의 유럽은 고난이라고 했던 많은 사람들의 말을 180도 반전시킬 수 있었던 것은 놀이터 때문이라고. 그래서 그 근사한 스위스의 놀이터를 지금 소개한다.


1일차. 7월2일, 첫 번째 놀이터 : 비 오는 날에도 간다, 루체른 교통박물관

교통박물관은 엄밀히 말하면 놀이터는 아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직접 체험해볼 수 있는 시설이 많은,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었기에 놀이터로 소개한다. 사실 이날 비가 와서 야외 놀이터에서 놀이가 어려웠던 탓도 있다. 1일 1놀이터의 목표 달성을 위한 의지인 게다.


다람쥐 챗바퀴에 직접 들어가 뛰어보고, 팔 에너지를 사용한 토끼 경주 게임도 해보고, 조정 레이스에 도전하는 등 여러 가지 체험을 직접 하며 아이는 즐거워했다. 야외 체험시설도 많았는데 비가 와서 해보지 못해 아쉬움이 남더라. 실내 공간만 돌았음에도 반나절이 훌쩍 지나갈 정도의 규모가 큰 박물관이다. 특히 교통수단을 좋아하는 아이들에게는 최고의 장소가 되리라 생각한다.



2일차. 7월3일, 두 번째 놀이터 : 어느 나라든 초등학교에는 있죠, 베기스 놀이터

베기스 유람선에서 내려 리기산 케이블카를 타러 가는 길에 있는 놀이터다. 학교 놀이터로 처음에는 수업에 방해되는 것은 아닌지 들어가기를 망설였다. 아무리 살펴봐도 아이들은 보이지 않고, 공사를 하는 인부분들만 돌아다니시기에 방학인가 하며 신나게 놀았다. 돌아 나오며 건물 안을 살짝 들여다보니 체육관에서 수업은 진행이 되고 있었다. 큰 소리로 떠들며 논 것도 아니고, 건물과 놀이터 사이에는 넓은 잔디밭이 있어 방해는 되지 않았겠다 합리화를 했다.


나무로 만들어진 정글짐을 넘나드는 아이는 마치 탐험을 하는 것 같았다. 쇠로 만들어진 정형화된 모양이 아닌 자연스럽게 쌓아 올린 모양은 예상하지 못한 움직임을 만들어내며 이렇게 해볼까 저렇게 해볼까를 생각하게 했고, 넘었을 때의 성취감과 즐거움을 더욱 크게 했다. 나무 정글짐에 이어 바닥마저 나무껍질로 만들어진 놀이터는 나를 놀라게 했다. 여기서 처음 생각한다. 스위스 놀이터는 정말 자연친화적이구나. 아이들은 참 좋겠다. 부.럽.다.



3일차. 7월4일, 세 번째 놀이터 : 피르스트를 더욱 오래 즐기는 방법, 보어트 놀이터

여행을 준비하면서 꼭 가야지 결심했던 놀이터 중 한 곳이다. 피르스트를 가기 위해서는 곤돌라를 타게 되는데 첫 번째 중간 기착지인 보어트에 있다. 피르스트로 가는 길에 들리는 것보다 피르스트를 충분히 즐기고, 돌아오는 길에 들리는 것을 추천한다. 놀이터에서 에너지를 소진하고 피르스트에 올라가면 아이들은 걷기를 싫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지쳤어도 놀이터는 아이들의 에너지를 솟아나게 하니 말이다.


해발 1,600m에 위치한 놀이터. Alpenspielplatz(알스프 산맥의 놀이터)이라는 이름답게 놀이터를 둘러싸고 있는 풍경에 입을 다물 수 없었다. 깨끗해서 더 강렬하게 느껴지는 햇빛이 아이를 비추고, 만년설의 알프스가 두 눈 가득 들어오는 곳. 뜨거움과 차가움이 한 데 공존하는 풍경. 아이들은 놀이터를 즐기고, 부모들은 알프스를 즐기는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미끄럼틀을 타기 위해서는 높은 사다리를 올라야 했다. 겁이 많던 아이가 몇 번의 망설임 끝에 꼭대기 오두막에 도착했을 때 손바닥이 뜨겁게 박수를 쳤다. 재촉하지 않고, 충분한 시간과 여유를 주면 아이는 해내는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반성도 했다. 나는 왜 한국에서는 충분히 기다려주지 못했을까.


한 번 성공한 아이는 그 성취감이 좋아서인지 몇 번을 반복해 미끄럼틀을 탔다. 그리고 혼자의 만족에 그치지 않았다. 또 다른 주저하는 아이에게 한국말로 할 수 있다고 응원을 하더라. 그래서 알려줬다. "Cheer up! You can do it!" 처음에는 중얼거리던 아이가 씩 웃어주는 반응에 큰 소리로 응원을 했다. 하지만 또래로 보이는 남자아이는 끝내 오르지 못했고, 아이는 무척 아쉬워했다.


이 놀이터에는 트램펄린도 있고, 모레 놀이터도 있고, 작은 개울도 있다. 모레 놀이터에는 누가 놓고 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장난감도 있었다. 물론 미끄럼틀, 흔들 다리는 당연히 있었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조금만 적었더라면 내가 먼저 덥석 올랐을 그네도 있었다. 알프스를 보면서 느끼는 느긋한 흔들거림. 대리만족이라도 하기 위해 타고 또 타라며 열심히 아이를 태우고 나는 또 열심히 밀었다.



4일차. 7월5일, 네 번째 놀이터 : 뮈렌에서 5분만 더 가면, 알멘트후벨 놀이터

어제와 같이 여행을 준비하면서 꼭 가야지 결심했던 놀이터다. 뮈렌에서 푸니쿨라를 타고 5분을 더 올라오면 알멘트후벨이 있고, 이 곳에 놀이터가 있다. 어제보다 높이가 더 높아진다. 해발 1,907m. 묀희봉, 아이거봉, 융프라우산으로 둘러싸여 그야말로 장관이다.


풍경만 장관일까. 거의 대부분의 놀이기구는 나무로 되어있고, 미끄럼틀 꼭대기 오두막과 꽃 모양의 미끄럼틀 기둥, 거미줄 모양의 그물 타기 등 놀이기구도 어느 것 하나 풍경을 헤치지 않았다. 자연에 대한 섬세한 배려가 놀이터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높은 미끄럼틀을 타기 위해서는 거미줄 그물, 외나무다리, 나무 사다리, 아니면 줄타기를 해야 한다. 각각의 방법은 난이도도 다르고, 여러 가지 방법을 조합하며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었다. 아이들은 몇 번의 도전 끝에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았고. 하나의 미끄럼틀을 향해 각기 다른 방법으로 올랐다. 노는 과정에서 저절로 창의성이 키워질 것 같았다.


이 놀이터에는 물놀이 기구가 있었다. 단순히 물을 받을 수 있는 공간만 있는 것이 아니라 물을 긷는 펌프부터 물을 옮길 수 있는 바가지도 있었고, 아이들이 나무판을 꽂고, 기울기를 달리하며 여러 방향으로 물을 흘려보낼 수 있는 수로도 있었다. 물놀이도 하나의 방법이 아닌 여러 방법으로 놀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혼자서는 그 과정들을 해낼 수가 없기에 아이는 자연스레 중국인 친구와도 놀이를 함께 했다.



4일차. 7월5일, 다번째 놀이터 : 동네 놀이터마저 차이나는 클라스, 뮈렌 놀이터

이 날은 특별히 1일 2놀이터를 놀았다. 뮈렌에서 알멘트후드벨을 가기 위해 푸니쿨라를 타러 가는 길에 위치한 놀이터다. 아이는 놀이터를 보자마자 잡을 새도 없이 미끄럼틀로 올라갔다. 더 근사한 놀이터가 있는데 여기서 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었다. 아이를 달래서 알멘트후벨로 갔고, 거기서 한 시간을 넘게 놀았기에 돌아오는 길에는 당연히 지나칠 줄 알았다. 게다가 비도 오고 있었고.


하지만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까. 아이는 "놀이터다!"를 외치며 다시 한번 다람쥐처럼 달려 미끄럼틀에 올랐다. 비가 온다며 그냥 가자고 소리치는데 어랏, 햇빛이 고개를 내밀더니 비가 그쳤다. 그래, 이왕 논 것 좀 더 놀지 뭐. 그리고 이미 자연 속의 아이를, 놀이터 속의 아이를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알아버렸기에 나는 더 이상 말리는 것을 멈추고 벤치에 앉았다.


아장아장 걷는 아이와 갓난쟁이 아이를 데리고 나온 뮈렌의 주민과 함께 한국말과 영어가 섞인 재미난 대화를 나누며 놀았던 시간. 작다고 무시할 수 있는 놀이터가 아니다. 파란 잔디밭 위, 커다란 나무 그늘 밑, 멀리 보이는 알프스 산맥. 여전히 나무로 된 기구들. 동네 놀이터마저 차이나는 클라스를 보여준다. 방문하는 놀이터가 늘 수록 내 부러움 역시 커져만 간다.



5일차. 7월6일, 열 번째 놀이터 : 반짝이는 호수가 보이는, 슈피츠 놀이터

슈피츠 유람선 선착장 부근에 놀이터가 있다. 이 곳은 숲 속이 아니라서 그런지 그늘막이 쳐져있었다. 이 역시 아이들을 위한 배려. 어떤 놀이터든 곳곳에 새심함이 넘친다. 지금까지는 높은 곳에서 압도하는 알프스 산맥과 함께 했다면 이번에는 햇살 부서지는 호수를 바라보며 아이를 지켜볼 수 있었다.


이곳에는 모레 놀이와 물놀이가 함께 가능한 공간이 있었다. 물론 같이 가지고 놀 수 있는 장난감도 있었고. 또 바로 옆에는 넓은 잔디밭이 있고 잔디밭 뒤로는 큰 미끄럼틀이 있는 수영장이 보였다. 처음에는 리조트인가 보다 하며 저곳에서 1 박하면 좋겠다 생각을 했는데 알고 보니 워터파크였다. 그냥 수영장이 아닌 호수와 연결된 수영장이 있단다. 수영복을 가지고 오지 않았음이 아쉬워지는 순간이다.



6일차. 7월7일, 일곱 번째 놀이터 : 마테호른이 배경, 수네가 라이호수 놀이터

한국에서부터 꼭 가야지 결심했던 마지막 놀이터다. 부모들은 마음껏 마테호른을 즐길 수 있고, 아이들은 마음껏 놀 수 있는 곳이다. 게다가 호수가 바로 근처니 마음만 먹으면 수영도 가능하다. 규모로 따지면 이곳이 제일 넓었다. 미끄럼틀도 2개가 있고, 해먹도 있고, 작은 나무 자동차도 있는 놀이기구 공간과 물놀이 공간이 분리되어 있었다. 여러 조합이 가능한 수로 역시 제일 길이가 길었고.


구름이 많았기 때문인지 넓은 규모 때문인지 아이들은 생각보다 적었고, 대부분의 아이들은 물놀이 공간에 몰려 있었다. 사실 이런 물놀이 공간은 한국에서도 본 기억이 없다. 중국이나 인도 아이들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 그래서 보어트 놀이터에서 못 탄 그네의 한을 이곳 해먹에서 풀었다. 흔들흔들 해먹에 누워 마테호른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세상이 모두 내 것 같았다.


특히 이 날은 아이가 전날 구입한 하이디 옷을 입고 있어 더욱 스위스 답게 놀 수 있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물론 바라보는 내 마음이 역시 더욱 즐거웠고.



7일차. 7월8일, 여덟 번째 놀이터 : 사다리를 건너는 용기, 베른 장미공원 놀이터

메리고라운드가 반갑게 맞아주는 곳, 베른 장미공원에 있는 놀이터다. 이곳의 매력은 길게 쭉 이어진 나무다리. 흔들 다리고 있고, 출렁다리도 있고, 외나무다리고 있고, 징검다리도 있는데 모두가 쭉 연결되어 있다. 그 연결의 시작, 높은 흔들 다리를 건너는 아이를 보니 마음이 조마조마해 옆을 떠날 수가 없었다. 내가 건너는 마냥 옆에서 아이를 따라 걸었다.


우리 아이 뒤를 이어 다리를 건너던 유럽 꼬마 아이. 정말 쿵! 소리를 내며, 내가 어머! 비명을 지르게 하며 다리 사이로 떨어졌다. 하지만 나의 당황이 무색하게 아이는 너무 태연히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고, 엄마는 원래 있던 자리에서 몇 마디 말만 툭 던지고 말더라. 조금 전 불안불안 아이 옆을 걷던 내 모습이 창피하게 느껴졌다. 저렇게 대담하게 키워도 된다는 생각과 함께.


엄마가 소심하니, 아이 배짱이 두둑 할리가 있나. 소심한 아이는 떨어진 사고를 목격한 뒤 낮은 다리만 건너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조금 전의 생각은 어디로 가고 안심이 된 나는 놀이터 바로 앞의 포토스팟에서 베른 시내를 배경으로 마음에 들 때까지 사진을 찍었다.



아이는 스위스에서 무엇이 제일 좋았느냐고 물으면 매일 갔던 놀이터라고 한다. 맞벌이다 보니 주말에만 갈 수 있는 놀이터. 주말이라고 마음껏 나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미세먼지다 뭐다 자주 데리고 나가지 못했다. 하지만 스위스에서는 아무런 장벽 없이 늘 한 시간 또는 그 이상을 충분히 놀 수 있어 놀이터에 마음을 홀딱 빼앗기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맑은 공기, 맑은 기운, 아름다운 풍경! 게다가 '자연이 놀이다'를 알려주는 재미난 기구들. 풍경이 복지라는 스위스에서 놀이터는 아이들에게 산 교육의 장이었다. 놀이터를 들리지 않았더라면 몇 군데 관광지를 더 갈 수도 있었겠지만 여행의 즐거움은 반감됐을 듯하다. 아이가 즐거워하니 나도 즐거웠고, 놀이터에서 바라보는 풍경 또한 너무 근사했기에 이번 여행에서 신의 한 수는 바로 놀이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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