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벅이 엄마랑 제주한달
제주로 가는 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비행기로, 다른 하나는 배로 가는 것이다. 물론 소요 시간과 편의성을 고려하면 비행기가 최적이다. 하지만 배로 갈 때의 장점은 내 차를 직접 가지고 갈 수 있다는 것. 무엇을 뺄지 말지 고민 없이 짐을 가득 싣고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작년 여름, 여수항에서 배를 타고 제주로 갔다. 4박5일의 일정에 물놀이 짐이 많았고, 자전가 타기가 취미인 남편의 자전거를 가지고 가기 위함이었다. 샴푸의자가 없으면 머리 감기기가 전쟁인 아이를 위해 샴푸의자를 트렁크에 넣으며 모두 다 챙겨갈 수 있음이 뿌듯했었다. 사실 여수까지의 운전은 나의 몫이 아니기도 했고.
제주 한달살이. 챙겨가야 할 짐의 양을 어찌 4박5일에 비할까. 고민이 시작됐다. 짐을 일부 택배로 보낸 뒤 비행기를 타고 가서 현지에서 차량을 렌트하는 방법, 짐을 차에 실어 탁송으로 보내고 우리는 비행기를 타고 가는 방법, 마지막으로 차도 우리도 함께 배를 타고 가는 방법. 어떤 것이 제일 좋을까.
처음에 나는 차량 탁송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짐을 싸며 무엇을 빼야 할지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고, 운전의 부담 없이 우리 역시 편히 갈 수 있어서였다. 하지만 차주인 남편의 생각은 달랐다. 비용도 비용이고, 탁송 역시 썩 내키지 않는다며 짐을 택배로 미리 보내고, 차는 현지서 렌트를 하자고 했다. 어차피 나는 뚜벅이. 차도 남편이 오는 주말에만 필요하고, 모닝캄 회원이라 무료 수화물이 하나 더 추가되니 가져갈 수 있는 짐의 양도 제법 넉넉하다는 이야기였다. 일리가 있었다.
숙소에서도 흔쾌히 택배를 받아준다며 서울서 언제 보내면 한달살이 시작일에 도착하는지까지 친절히 안내해줬다. 가져가야 할 물건 목록을 작성하며 어떤 것을 가져가고 어떤 것을 택배로 보낼지 시뮬레이션을 하고 있는데 남편이 마음을 바꿨다. 그냥 우리도 차도 배로 가자는 거다. 어차피 운전은 남편 몫. 남편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
금요일까지 휴직 전 마지막 근무를 하고 토요일에 목포로 향하는 일정. 미리 짐을 쌀 시간이 거의 없었던 상황에서 출발 직전까지 짐을 싸도 되는 장점은 내게 너무 컸다. 미리 정리해둔 목록을 들고, 금요일 밤부터 토요일 오전 내내 정신없이 짐을 싸고, 점심을 먹고 서울에서 출발했다. 미니멀리즘. 욕심을 줄인다고 했음에도 한달살기 짐의 양은 엄청났다. 테트리스처럼 차곡차곡 쌓아 겨우 트렁크 문을 닫을 수 있었다. 여행인 동시에 생활이기 때문이리라.
제주로 가는 뱃길이 4시간으로 가장 짧은 목포. 하지만 서울에서 목포까지는 다섯 시간이 걸렸다. 서울을 빠져나오는데 차는 너무 더디 가고, 갈 길은 멀고. 운전을 못하는 나는 운전을 하는 남편의 눈치가 보였다. 하지만 남편은 무슨 일인지 생각보다 운전도 힘들지 않고, 허리도 아프지 않다며 괜찮단다. 아마 해지는 하늘이 너무 근사했기 때문이 아닐까. 이건 감성적으로 포장한 내 생각이고, 음... 어쩌면 다음 주부터 주중 자유가 기다리고 있어서일지도 모른다.
내 멋대로 생각 대신 남편이 꺼낸 이야기는 낙지란다. 굳이 전날 내려와 1박을 하고, 다른 도시가 아닌 목포를 택했으니 목포의 만찬을 누리자며 저녁으로 택한 메뉴였다. 게다가 건강검진으로 그동안 금주를 했던 남편이 2주 만에 처음으로 마시는 소주이기도 했다. 낙지 소고기 탕탕이와 호롱구이 거기에 잎새주까지. 일곱살 마저 계속 산낙지를 달라며 너무 맛있단다. 밥보다 산낙지란다. 바다를 건너기 전날 저녁. 그래, 목포로 온 보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