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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차, 우연히 제주의 삶을 듣다

뚜벅이 엄마랑 제주한달

by 여유수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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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에 목포를 출발한 배는 13시35분 제주항에 도착했다. 작년 여수항에서 제주로 떠날 때를 생각하면 목포항은 양반이었다. 성수기가 지난 일요일 아침이었기 때문이리라. 승객 숫자가 현격히 적어 일반실의 공간도 넉넉하고, 매점, 식당, 야외 테이블 등 사람이 붐비지 않았다. 자리 맡기 전쟁이 벌어지지 않아 조바심 내지 않고, 영역 싸움하지 않고 편히 배 안에 머무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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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항 도착 15분 전. 안내방송에 따라 우리는 차에 먼저 탑승해 우리의 순서를 기다렸다. 2시12분. 우리가 제주항을 빠져나간 시간이다. 승객이 다 빠져나간 다음에야 나갈 수 있는 차량의 순서. 그리고 배가 정박한 뒤 고정시켰던 바퀴의 밧줄을 풀여야 하는 시간. 작년 여름, 여수항에서 배를 타고 제주로 왔을 때 생각했었다. 오는 시간은 알고도 감내했지만 내리는데 시간이 이렇게 오래 걸리는 것은 참기 힘들다고. 배를 타고 오지 말아야겠다고.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기에 같은 생각을 되풀이한다.


오늘 바로 제주 한달살이 집으로 가는 것은 아니다. 내가 예약한 숙소는 여섯 집이 같은 날 한달살이를 시작해서 같은 날 한달살이를 끝낸다. 내 편의대로 시작 날짜를 정할 수 없는 거다. 그렇게 나의 시작일은 8월28일, 월요일. 하루밖에 휴가를 쓸 수 없는 남편에게 월요일 제주에 와서 짐을 내려주고 바로 서울로 돌아가라고 하는 것은 너무 잔인하기에 전날 제주에 도착한 거다.


제주로 오는 배 안에서 남편은 페이스북을 통해 친한 선배가 제주에 여행 온 것을 알게 됐다. 우리도 제주에 간다며 안부 인사를 나누는 사이 휘리릭 저녁 약속이 정해졌다. 선배 와이프의 고등학교 동창이 운영하는 펜션. 우리가 저녁 초대를 받아 찾아간 곳이었다. 선배 부부와 함께할 것이라 생각한 조촐한 저녁은 선배 가족과 펜션 주인 가족과 함께인 파티가 되었다.


남편은 선배네 부부와 친한 사이였지만 나는 이야기로만 들었던 사람들. 거기에 한 다리를 건넌 인연들까지 함께 한 상황. 어쩌면 굉장히 어색할 수 있는 자리였지만 그렇지 않았다. 제주라는 공간의 특수성. 우연히 맺어진 인연의 반가움. 거기에 평소 궁금했던 외지인의 제주 정착 이야기가 더해진 상황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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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션 주인 부부에게는 다섯살 아들이 있었다. 자연을 만끽하며 자라는 아이. 부러웠다. 어떤 결심과 선택들이 모여 이 가족은 제주에 살게 되었을까. 늘 동경했던 제주의 삶을 텍스트가 아닌 실제 육성으로 들을 수 있는 기회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의 가치를 포기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욕심을 내려놓으면 더 큰 행복을 만날 수 있다는 펜션 주인의 생각은 단호했다. 입도 10년 차라고 했다. 특히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보면 확신이 든단다. 단순하지만 생각은 깊어지는 삶. 펜션 주인 이야기 한 마디 한 마디가 내 마음에 남았다. 무엇보다 그 용기가 부러웠다.


더 깊은 이야기가 궁금했다. 처음 제주도에 오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는지. 후회한 적은 없는지, 아이를 앞으로 어떻게 키우고 싶은지. 사소한 많은 것이 궁금했다. 이런 내 마음을 읽었는지 앞으로 지내는 한 달 동안 놀러 오라며 펜션 주인은 반가운 초대를 건넸다. 인사치레가 아님을 알려주듯 내 핸드폰 번호까지 저장했다.


우연한 만남이 반가운 인연이 되는 것이 여행의 매력이 아닐까. 늘 비슷한 사람들 사이에서 비슷한 시선으로 삶을 바라보다 조금은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조금은 다른 시선을 만났다. 제주도에 머물며 어쩌면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깊이 제주의 삶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생겼다. 그렇게 한달살기의 첫날이 근사하게 저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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