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벅이 엄마랑 제주한달
해장이 필요한 아침. 곽지 아침 맛집, 애월 조식 등등 검색을 시작했다. 먹음직스러운 사진에 혹해 오픈 시간을 찾아보면 9시 아니면 10시. 여유의 제주에서 새벽부터 아등바등 살아야 할 이유가 없겠지. 8시에 아침을 먹어야겠다는 우리의 목표를 충족시키는 집을 찾기는 정말 어려웠다. 겨우 찾은 해물라면집으로 향했지만 아직 컴컴한 가게. 정보가 틀린 것인지 주인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것인지.
아침부터 강렬한 햇볕. 차창 밖으로 보이는 바다를 보며 하이디는 노래를 부른다. 바다에 들어가고 싶다고. 아직은 사람이 없는 바다. 너무 이른 시간. 시간을 때워야 했다. 아이의 흥미를 맞춰주면서. 아침을 먹자마자 주스와 케이크로 유혹해 스타벅스로 아이를 인도했다. 제주까지 와서 무슨 스타벅스! 할지 모르나 제주 애월DT점은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제주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스타벅스! 반드시 들려야만 했다.
무엇에 홀린 듯 제주 텀블러까지 구매. 부서 주간업무회의 시간에 제주 바다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어느 누구도 부럽지 않았다. 바로 옆 테이블. 다음에 어디 갈까 이야기 소리에 티는 내지 못했지만 마음은 으쓱했다. 한 달 여행자. 굳이 어디갈지 정하지 않아도 되는 여유가 뿌듯했다.
오늘까지는 아빠가 있는 날. 아이의 소원을 들어줄 요정 지니는 아빠 몫. 홀로 수영복을 갈아입지 않는 꼿꼿함으로 나의 의지를 표출하고 아이는 아빠와 바다에 들어갔다. 한 여름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의 강렬한 햇볕. 하지만 8월의 끝자락이기에 차가운 바닷물. 해수욕을 하기는 완벽한 조합이었다. 게다가 제법 용감해진 아이는 튜브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다음에 또 오자. 아니, 내일 또 오자. 앞으로 많은 날이 있다. 이제 그만 가자고 설득했지만 뾰로통한 아이는 쉽게 삐친 마음을 풀지 않았다. 왜 다른 친구들은 아직도 놀고 있는데 자기만 가야 하느냐의 항변에 당당한 엄마의 답변. 저 친구들은 오늘 서울에 가야 한다고. 너는 한 달을 있을 거라고.
점심을 먹고, 아빠가 없는 동안 먹고 살 장을 보고 드디어 한달살이 집으로 향했다. 3시가 정식 입주 시간. 2시에 도착하며 살짝 마음 졸였는데 마음 급한 사람은 나뿐이 아니었다. 이미 분주하게 입주가 시작되고 있었다. 에어컨을 틀어도 땀이 뻘뻘 났다. 짐을 옮기고 정리하고. 처음 정리할 때 제대로 해야 한 달이 편하겠다는 생각에 부지런을 떨며 착착착 정리를 끝냈다.
보통의 숙소들은 사진에서 봤던 것보다 더 못하다. 어제의 숙소도 그랬다. 하지만 한 달을 살아야 한다는 마음 때문인지 나의 한달살이 집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아늑하고 구조 역시 좋았다. 게다가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창 밖으로 보이는 바다라니. 마음을 더욱 설레게 했다. 남편 역시 걱정했던 것보다는 좋다며 안심을 했고.
남편도 나도 처음 겪는 일. 처음 겪는 긴 이별. 공항으로 가는 남편을 배웅하는데 마음이 울컥했다. 회사 일은 척척 잘만 결정하면서 집안일은 작은 것 하나까지 남편에게 물어보는데 과연 그 빈자리를 내가 잘 채울 수 있을지. 아이와 단 둘이 침대에 누워 뒹굴거리는데 아이가 말한다. "아빠가 생각난다." 그래서 아이와 난 약속했다. 오늘 밤은 아빠 꿈을 꾸자고.
<일곱살 하이디의 일기>
그림설명: 아빠와 하이디가 바닷가 물놀이를 하는 모습 (안경 쓴 사람이 아빠)
일기설명: 오늘은 수영장에 갔다. 수영장에서 노래 불르고 역할놀이도 하고 선유튜브 놀이하고 아빠랑 엄마랑 신나게 놀았다. 더 놀고 싶었는데 아쉬웠다. 더 놀고 싶다. 다음 또 와야겠다.
아빠: 수영장이 아니라 해수욕장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