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차, 버스 두 번 환승쯤이야 - 제주항공우주박물관

뚜벅이 엄마랑 제주한달

by 여유수집가

남편이 떠나고 단 둘이 남은 첫날. 쉬엄쉬엄 머물려고 했다. 세탁기도 한 번 돌리고, 책도 좀 읽고 그러다 지겨우면 마을 산책 좀 하고. 느긋한 하루를 상상했었다. 하지만 엄마만의 생각. 하이디는 달랐다. 제주항공우주박물관에 가고 싶단다. 올해 1월에 다녀왔던 곳. 재미있었던 모양이다. 날 흐릴 때 다시 한번 가면 좋겠다는 아빠 말을 잊지 않고, 날은 흐리지도 않은데 다시 가겠단다. 9시에 집을 나서도록 서두르면서.


20170829_223631_11.jpg 여행지 그림카드 중 한 장

이번 제주한달에서 여행지 선택권을 아이에게 많이 위임하리라 생각했다. 뚜벅이기 때문에 많이 걸어야 하는 여행. 하이디 스스로 택한 여행지라면 조금 덜 지치지 않을까, 지치더라도 다시 한번 힘내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미리 여행지 그림카드도 준비해왔다. 아이가 그림카드를 보고 직접 고를 수 있도록. 제주항공우주박물관도 그 그림 속의 한 곳이었다.


옹포리에서 환승을 한 번 하면 1시간 16분이 걸리는 거리. 자신 있게 길을 나섰다. 옹포리까지는 무사 도착. 784-1이나 784-2번 버스를 타야 하는데 카카오 맵에서는 정보를 알 수 없다고 하고, 정류장에 붙은 안내를 보니 배차간격이 무려 1시간이었다. 게다가 10분 전에 출발해버린 버스. 기다릴 수는 없었다. 간선버스와 지선버스의 차이를 실감하면서 카카오 택시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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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29_105808.jpg 하이디의 외계인 캐릭터 이름, 슷뤃직

지난번 방문 때 프로시온 체험을 너무 재미있게 했던 아이는 이번에도 프로시온 체험을 먼저 찾았다. 방학이 끝난 평일. 1회에 10명만이 할 수 있는 프로시온도 바로 들어갈 수 있었다. 자신만의 외계인 캐릭터를 만들어 대형 스크린으로 직접 볼 수 있는 체험. 자음과 모음이 분리된 키보드가 익숙하지 않아 외계인 이름을 이상하게 만들며 하이디는 그것조차 재밌다고 낄낄낄 웃는다.


넉넉한 시간. 아이가 하자는 대로 하고 싶다는 대로 따라가 줬다. 엄마는 뒤 따라갈 테니 앞장서서 안내를 하라고 하면서. 사실 지난번처럼 관람보다는 블록 쌓기에 매진하면 어쩌나 생각했었는데 1월과 8월의 간격. 아이는 또 자라 이번에는 관람이 우선이었다. 설명들을 차근차근 읽는 것도 전시물 하나하나를 들여다보는 것도 아니었지만 자신만의 기준으로 마음에 드는 설명은 읽고 관심이 가는 전시물은 살펴보며 꽤 오랜 시간을 머물렀다.


테마시설 2곳과 천문우주관을 둘러보는데 두 시간이 훌쩍 지났다. 점심을 먹고 이번에는 1층의 항공역사관을 갔다. 사실 처음에는 기념품 샵을 구경하자고 했다. 지난번에 와서 산 유리 토끼를 아빠가 깨뜨렸다는 이야기까지 덧붙이면서 말이다. 같은 토끼가 있으면 사야 하나, 무엇이든 하나 사겠다고 고집을 부리면 어쩌나. 매 관광지마다 그럴 수는 없으니 마음 독하게 먹자고 굳게 결심했는데 이것도 엄마 생각. 아이는 생각보다 쉽게 기념품 샵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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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역사관의 백미는 'How Things Fly'의 ZONE 5였다. 비행원리 체험관으로 다양한 실험들을 직접 해보며 비행의 원리를 익힐 수 있는 공간이었다. 물론 일곱살이 비행원리를 이해한 것은 아니었지만 직접 실험을 하고 달라진 결과들이 눈에 보이니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흥미로워했다. 다음은 아까 미처 보지 못한 테마시설의 폴라리스였다. 5D 입체영상을 상영하는 곳으로 두 종류의 영상이 있었는데 한 편의 영상을 보고 너무 재미있다며 다른 영상도 보겠다고 해서 보고, 또 먼저 본 영상을 다시 보고 싶다고 해서 도돌이표처럼 나오고 들어가고 세 번을 반복했다.


9시에 집을 나서, 10시에 도착한 박물관. 박물관을 나선 시간은 16시였다. 볼 것 많고 할 것 많은 제주에서 무슨 박물관에 그렇게 오래 머무느냐고 할지 모르겠다. 그냥 아이의 선택을 존중해주고 싶었다. 박물관으로 가는 택시에서 기사님이 그러더라. 박물관에서 점심 먹고, 걸어서 오설록 가서 차 한 잔 하면 아이도 힐링하고 엄마도 힐링하겠다고. 글쎄. 아이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것도 힐링이었다. 어쩌면 늘 바빴던 엄마, 그동안은 그렇게 마냥 아이를 기다려줄 수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이도 엄마의 이런 마음을 느낀다. 자신이 좋아하는 초코맛 구슬 아이스크림도 선뜻 같이 먹자며 나눠준다. "같이 먹으니까 더 맛있다."고 하면서. 뒤를 졸졸 따라다니던 내가 에스컬레이터를 타며 아이 손을 잡으니 또 아이는 말한다. "손 잡으니까 참 좋다. 그치?". 돌아오는 길, 두 번의 환승에도 아이는 짜증을 내지 않았다. 같이 끝말잇기도 하고, 역할놀이도 하고 때로는 혼자 노래도 부르며 졸지 않고 집까지 기분 좋게 도착했다.


혹시나 틀릴까 봐 버스에 오를 때 행선지를 말하면 좋겠다고 하이디에게 부탁을 했었는데 부끄럽다고 못하겠다더니 큰 소리로 인사를 한다. "우리 옹포리 정류장 가요.". 내릴 때도 잊지 않는 인사, "감사합니다.". 기사님도 답을 하신다. "대견하네. 잘 가.". 일곱살 하이디. 마냥 어리게만 봤었는데 어쩌면 오롯한 내 여행 친구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챙겨줘야만 하는 대상이 아닌 의지할 수 있는 대상. 제주한달, 새로운 여행친구가 생겼다.



<일곱살 하이디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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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설명: 1층 비행원리 체험, 2층 외계인(괴물) 캐릭터 만들기, 3층 식당, 4층 전망대

일기설명: 오늘은 제주항공우주박물관 갔다. 괴물 만들기가 재미있었다. 전망대에서 봤다. 오늘도 재미있게 놀거다. 아주아주 신난다~




<뚜벅이 이동 경로>

1) 곽지모물 > 202-1(배차간격 15~20분) > 옹포리 > 택시 > 제주항공우주박물관

2) 제주항공우주박물관 > 관광지 순환버스 820-1(배차간격 30분) > 동광환승센터 > 784-1(1시간) >

한림여자중학교 > 202-1(15~20분) > 곽지모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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