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벅이 엄마랑 제주한달
남편이 떠나고 단 둘이 남은 첫날. 쉬엄쉬엄 머물려고 했다. 세탁기도 한 번 돌리고, 책도 좀 읽고 그러다 지겨우면 마을 산책 좀 하고. 느긋한 하루를 상상했었다. 하지만 엄마만의 생각. 하이디는 달랐다. 제주항공우주박물관에 가고 싶단다. 올해 1월에 다녀왔던 곳. 재미있었던 모양이다. 날 흐릴 때 다시 한번 가면 좋겠다는 아빠 말을 잊지 않고, 날은 흐리지도 않은데 다시 가겠단다. 9시에 집을 나서도록 서두르면서.
이번 제주한달에서 여행지 선택권을 아이에게 많이 위임하리라 생각했다. 뚜벅이기 때문에 많이 걸어야 하는 여행. 하이디 스스로 택한 여행지라면 조금 덜 지치지 않을까, 지치더라도 다시 한번 힘내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미리 여행지 그림카드도 준비해왔다. 아이가 그림카드를 보고 직접 고를 수 있도록. 제주항공우주박물관도 그 그림 속의 한 곳이었다.
옹포리에서 환승을 한 번 하면 1시간 16분이 걸리는 거리. 자신 있게 길을 나섰다. 옹포리까지는 무사 도착. 784-1이나 784-2번 버스를 타야 하는데 카카오 맵에서는 정보를 알 수 없다고 하고, 정류장에 붙은 안내를 보니 배차간격이 무려 1시간이었다. 게다가 10분 전에 출발해버린 버스. 기다릴 수는 없었다. 간선버스와 지선버스의 차이를 실감하면서 카카오 택시를 불렀다.
지난번 방문 때 프로시온 체험을 너무 재미있게 했던 아이는 이번에도 프로시온 체험을 먼저 찾았다. 방학이 끝난 평일. 1회에 10명만이 할 수 있는 프로시온도 바로 들어갈 수 있었다. 자신만의 외계인 캐릭터를 만들어 대형 스크린으로 직접 볼 수 있는 체험. 자음과 모음이 분리된 키보드가 익숙하지 않아 외계인 이름을 이상하게 만들며 하이디는 그것조차 재밌다고 낄낄낄 웃는다.
넉넉한 시간. 아이가 하자는 대로 하고 싶다는 대로 따라가 줬다. 엄마는 뒤 따라갈 테니 앞장서서 안내를 하라고 하면서. 사실 지난번처럼 관람보다는 블록 쌓기에 매진하면 어쩌나 생각했었는데 1월과 8월의 간격. 아이는 또 자라 이번에는 관람이 우선이었다. 설명들을 차근차근 읽는 것도 전시물 하나하나를 들여다보는 것도 아니었지만 자신만의 기준으로 마음에 드는 설명은 읽고 관심이 가는 전시물은 살펴보며 꽤 오랜 시간을 머물렀다.
테마시설 2곳과 천문우주관을 둘러보는데 두 시간이 훌쩍 지났다. 점심을 먹고 이번에는 1층의 항공역사관을 갔다. 사실 처음에는 기념품 샵을 구경하자고 했다. 지난번에 와서 산 유리 토끼를 아빠가 깨뜨렸다는 이야기까지 덧붙이면서 말이다. 같은 토끼가 있으면 사야 하나, 무엇이든 하나 사겠다고 고집을 부리면 어쩌나. 매 관광지마다 그럴 수는 없으니 마음 독하게 먹자고 굳게 결심했는데 이것도 엄마 생각. 아이는 생각보다 쉽게 기념품 샵을 떠났다.
항공역사관의 백미는 'How Things Fly'의 ZONE 5였다. 비행원리 체험관으로 다양한 실험들을 직접 해보며 비행의 원리를 익힐 수 있는 공간이었다. 물론 일곱살이 비행원리를 이해한 것은 아니었지만 직접 실험을 하고 달라진 결과들이 눈에 보이니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흥미로워했다. 다음은 아까 미처 보지 못한 테마시설의 폴라리스였다. 5D 입체영상을 상영하는 곳으로 두 종류의 영상이 있었는데 한 편의 영상을 보고 너무 재미있다며 다른 영상도 보겠다고 해서 보고, 또 먼저 본 영상을 다시 보고 싶다고 해서 도돌이표처럼 나오고 들어가고 세 번을 반복했다.
9시에 집을 나서, 10시에 도착한 박물관. 박물관을 나선 시간은 16시였다. 볼 것 많고 할 것 많은 제주에서 무슨 박물관에 그렇게 오래 머무느냐고 할지 모르겠다. 그냥 아이의 선택을 존중해주고 싶었다. 박물관으로 가는 택시에서 기사님이 그러더라. 박물관에서 점심 먹고, 걸어서 오설록 가서 차 한 잔 하면 아이도 힐링하고 엄마도 힐링하겠다고. 글쎄. 아이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것도 힐링이었다. 어쩌면 늘 바빴던 엄마, 그동안은 그렇게 마냥 아이를 기다려줄 수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이도 엄마의 이런 마음을 느낀다. 자신이 좋아하는 초코맛 구슬 아이스크림도 선뜻 같이 먹자며 나눠준다. "같이 먹으니까 더 맛있다."고 하면서. 뒤를 졸졸 따라다니던 내가 에스컬레이터를 타며 아이 손을 잡으니 또 아이는 말한다. "손 잡으니까 참 좋다. 그치?". 돌아오는 길, 두 번의 환승에도 아이는 짜증을 내지 않았다. 같이 끝말잇기도 하고, 역할놀이도 하고 때로는 혼자 노래도 부르며 졸지 않고 집까지 기분 좋게 도착했다.
혹시나 틀릴까 봐 버스에 오를 때 행선지를 말하면 좋겠다고 하이디에게 부탁을 했었는데 부끄럽다고 못하겠다더니 큰 소리로 인사를 한다. "우리 옹포리 정류장 가요.". 내릴 때도 잊지 않는 인사, "감사합니다.". 기사님도 답을 하신다. "대견하네. 잘 가.". 일곱살 하이디. 마냥 어리게만 봤었는데 어쩌면 오롯한 내 여행 친구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챙겨줘야만 하는 대상이 아닌 의지할 수 있는 대상. 제주한달, 새로운 여행친구가 생겼다.
<일곱살 하이디의 일기>
그림설명: 1층 비행원리 체험, 2층 외계인(괴물) 캐릭터 만들기, 3층 식당, 4층 전망대
일기설명: 오늘은 제주항공우주박물관 갔다. 괴물 만들기가 재미있었다. 전망대에서 봤다. 오늘도 재미있게 놀거다. 아주아주 신난다~
<뚜벅이 이동 경로>
1) 곽지모물 > 202-1(배차간격 15~20분) > 옹포리 > 택시 > 제주항공우주박물관
2) 제주항공우주박물관 > 관광지 순환버스 820-1(배차간격 30분) > 동광환승센터 > 784-1(1시간) >
한림여자중학교 > 202-1(15~20분) > 곽지모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