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토론배틀을 하게 되다니

day-69

by Luc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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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에게 다짜고짜 부탁이 있다는 카톡을 받았다. 주말 늦게까지 회사에서 일하는 친구다. 이 와중에 후배들을 위해서 동문회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동문회를 준비하는 친구는 두 명인데 한 명은 나와 같은 회사를 다니고 있다. 이 녀석은 맞벌이에 애도 있다. 점심시간에 지하철을 타고 나가서 둘이 중간에서 만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부탁 내용은 동문회에 졸업생 토론자로 참여해달라는 것이었다. 나보다 더 없는 시간을 쪼개서 준비하는 친구들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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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30분 남짓의 짧은 토론이니까 적당히 하면 되겠지, 생각했다. 주제는 핵무장이었다. 무작위로 찬성 반대를 정했는데 찬성 측이 되었다. 개인적인 생각이 아직 완전히 정리되지는 않았지만 썩 하고 싶었던 입장은 아니었다. 토론을 하는 사람들 말고 강연자들도 있었다. 강연자들 리스트가 공유되었는데 다들 같이 동아리 활동을 했던 아는 사람이었다. 아는 사람들이 내가 토론하는 것을 볼 거라고 생각하니 또 은근히 신경이 쓰였다. 말을 못해서 제대로 망신당하면 어떡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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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토론대회를 준비할 때 가장 재밌는 활동은 입론쓰기였다. 자료를 읽고 정리하는 일은 무척 지겨웠지만 입론을 쓰는 것만은 재미가 있었다. 내가 사람들 앞에서 이 말을 할 장면을 그리면서, 뭐라고 훅을 넣어야 사람들이 넘어올까, 근거 중에 제일 좋아 보이는 것을 골라 넣는 일. 그걸 참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지금은 입론쓰는 것 때문에 끙끙 대고 있다. 서른한 살에 내가 토론 입론을 쓰느라 고민할 줄이야. 이런 미래가 나에게 올 줄 상상도 못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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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니 토론에 대한 주제로 책을 쓴 것이 한편 우습기도 했다. 대학 토론 몇 번 우승했다고 거기다 이렇게 하세요, 저렇게 하세요 적었는데 나야말로 어찌할 줄 모르고 있지 않은가. 내가 뭐라고 거기다 그렇게 꼰대질을 했을까 싶다. 대회 나간 지가 벌써 십 년 전이다. 감각을 완전히 잃었다. 토론대회하다가 이상한 소리를 할까봐 걱정이 된다. 방금 말한 사실은 어디서 확인할 수 있는 거죠?라고 물어보면 아 저희 오빠가 군인이라서 오빠한테 들었어요, 이런 말도 안되는 대답을 내놓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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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다시 토론을 하면 기분이 어떨까 궁금하기도 하다. 지금도 예전처럼 그렇게 떨릴까. 그러다가 중간부터는 재밌어서 논쟁에 불붙게 될까. 열 살은 어린 후배와 날 세워서 토론을 할 수 있을까. 아니면 팩트도 다 공부하지 못해서 탈탈 털리게 되려나. 전혀 예상이 되지 않는 토론 배틀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폭망이든 꿀잼이든 상관없이 기대가 된다. 재밌는 동문회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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