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어서 보는 세계

문학동네 계간지 2014년 겨울호를 읽고

by Lucie

1.

은희경 소설에는 마음을 후비는 문장들이 나온다. - 터진 울음을 참을 수 없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울음의 주도권은 울음이 쥐고 있었다. - 별거 아니지만 온 마음을 다해 공감할 수 있는 문장들. 은희경의 '새의 선물'을 읽고 이상하게 마음의 위안을 얻은 것은 그런 문장들 때문이다. 내 시대의 이야기도 아니고, 나와 비슷한 사람들 이야기도 아닌데 그 사람들의 감정들이 이 시대의 내 주변 사람들의 것과 다르지 않다. 나에게 닥친 불행과 내 주변의 고만고만한 불행들을 대하는 태도. 같은 대문을 이고 서로 다른 채에 살아가는 가족같지만 남인 사람들의 이야기. 은희경은 시간과 대상을 넘어서는 관찰력을 담은 문장들을 들려준다.


2

반면에 김영하에게는 그런 문장이 없다. 아, 바로 이거야, 하는 문장이 하나도 없는데 그의 이야기는 더없이 탁월하다. 짧은 문장과 건조한 단어선택. 그 문장들이 잇는 그의 이야기는 눈을 뗄 수가 없다. 문학동네 계간지에 실린 '아이를 찾습니다'는 첫 페이지부터 불길한 느낌으로 가득 차있다. 그 불길한 느낌들은 지속되고 느낌대로 불행한 사건들이 줄을 이으며, 심지어 이야기가 끝났는데도 섬뜩한 불길함을 남긴다. 이 사람은 정말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옥수수와 나' 다음으로 속도감을 느낀 작품이었다. 이렇게 홀랑 이야기의 맨홀에 쑥 빠지는 느낌을 주는 작가는 별로 없다. 소설이 끝나면 현실로 텔레포트타고 다시 훅, 이동한 느낌이다.


3

미친 스케일의 장황한 이야기의 연결을 보여줬던 천명관은 '퇴근'에서 그 다운 미지의 세계를 만들어냈다. 천명관은 수십개의 바늘을 한 큐에 꿰뚫은 것 같은 이야기인 '고래'를 쓴 작가다. 이런 신선하고 복잡한 세계관은 어떻게 머릿속에서 만들어내는 걸까 궁금했는데. 단편에서도 그런 실력을 여지없이 발휘한 느낌이었다. 평생을 동경한 세계, 내 아이 한 명 살릴 약도 구할 수 없는 처절한 현실이 소설 내내 펼쳐진다. 하지만 동경했던 세계와 처절한 세계가 완전 전복되는 마지막 한 문장으로 소설이 끝난다. 대략 멘붕.


4.

역시 박민규는 박민규만의 스타일이 있었다. 말도 안되는 걸 진지하게 쓰는 능력. '카스테라'에서 서로의 똥이 굵다고 싸우질 않나, '용용용용'에서는 전설의 무림고수에게 제자가 이거 배우면 삼성 들어갈 수 있냐고 반항하는데 정말 너무 웃음기가 없어서 너털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박민규의 개성은 이상문학상 최우수상을 탔던 해 수상집에 자신의 대표작을 실은 대목에서 여지없이 드러났다. '딜도가 우리 가정을 지켜줬어요'라는 단편을 실은 것이다. 2010년에 실린 작품인데, 박민규 덕분에 딜도가 무슨 뜻인지 알게 되어 어휘가 +1 되었던 유익한 기억이다. 자동차를 외계인에게 딜도로 팔았다는 세일즈맨의 이야기이다. 세일즈맨은 차가 너무 안팔려서 차를 몰고 화성에 간다. 너무 진지해서 읽다가 깜짝 놀랐다. 그런 진지함이 '대면'이라는 작품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난다. 리먼 브라더스 같은 이름을 종교 구절에 꾸겨넣는데 너무 진지해서 할말을 상실했다. 태어나는 것을 '고용'이라고 하고 죽는 것을 '해고'라고 부르는 자본사회 이후의 지구. 박민규는 나같은 마니아를 키우기 위해서 이런 말도 안되는 것을 진지하게 쓰는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마음에 드는 작품이었다.


5

역시 작가에 대한 애정도가 문단의 길이와 비례하고 있다. 나는 문학동네 계간지 하나로 서로 다른 작가들의 세계에 풍덩풍덩 빠지며 지독하게 행복한 중이다. 더 많은 책을 읽고 그 세계를 알아가고 싶다. 오랜 지인인 김시인은 문학은 가볍게 소비되지 않는 것, 어떤 지속가능한 세계를 갖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는 에이, 나도 잘몰라 평론가가 아니잖아, 하고 얼버무렸다. 나는 그말이 뭔지 알 것 같았지만 그의 세계가 얼마나 완고한지 보고 싶어서 말 끝마다 토를 달았다.


6

언젠가 할 말이 있다면 뭔가가 써질 것이다. 지난 주에는 세수하다 세면대에 떨어진 거미를 손으로 눌러 죽인 일이 있었다. 밤 늦은 시간 퇴근해서 새벽이었는데도 그 사건에 대해서 반드시 기록을 해놓고 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6-1

세수를 하다 눈을 뜨니 희미하게 실거미가 보였다. 별 생각없이 검지로 꾹 눌렀다. 그리고 얼굴을 한 번 물로 쓸어내리니 개수대로 쓸려 내려가는 거미의 오그라든 모습이 보였다. 그는 죽었다. 나는 왜 거미를 죽였을까. 사실 거미는 별로 해로운 벌레가 아니다. 경기도로 이사 오고나서 나는 평소 볼 수 없었던 거미를 종종 볼 수 있었다. 엄마는 벌레만 보면 기겁을 하는 내게 거미는 환경오염이 없는 깨끗한 곳에 산다고 알려줬다. 거미는 나의 건강을 해치지 않는다. 그리고 거미줄을 쳐서 내가 싫어하는 벌레를 잡지. 그런데도 사람들은 스산한 곳에는 거미줄이 쳐진 이미지를 떠올린다. 그러니까 마녀가 사는 혹은 사람이 살 것 같지 않은 곳엔 늘 거미줄이 있었던 것이다. 거미줄이 그러한 스산한 이미지를 떠오르게 한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거미를 불길한 것으로 인식했다. 그리고 아무 이유 없이 죽여버렸던 것이다. 어쩌면 사람들이 거미를 싫어하는 이유는 거미 발이 8개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메뚜기도 방아깨비도 잘 살려주면서 거미를 싫어하는 건 그저 다리가 6개인 쪽보다 다리가 8개인 쪽이 소수였기 때문은 아닐까. 지렁이도 뱀도 그냥 다리가 없는 쪽이 소수여서 싫어하는 것일지도 모르지. 그저 소수이기 때문에 싫어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자 나는 거미를 아무 생각없이 압사시킨 것이 퍽 미안해졌다. 어쩐지 시간이 지날 수록 너무 미안해졌다. 그리고 세상사람들 사이에서 소수쪽으로 갈라지는 나의 특성들이 무엇이 있는지를 세수하며 잠깐 나열해 보았다. 그리고는 얼굴을 닦았다. 로션을 바르면서 이 생각은 얼른 일기로 남겨야 겠다고 생각했다. 이 글을 쓰는데는 2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7

소설을 쓰고 싶지만 쓸 이야기가 없어서 고민이었다. 그런 나에게 지키고 싶은 세계가 있는 김시인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김시인은 방 벽지를 엉킨 단어들로 까맣게 메우고 학창 시절 등단을 했다. 회사를 다니는 것이 자기 세계에 영향을 줘서 그 세계를 온전히 그대로 남길 것인지를 고민하는 그가 오늘도 부럽긴 했다. 하지만 나의 세계는 그 세계대로 여물어갈 것이라고 생각하고 나니, 그건 우열이라기 보다는 다름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래서 오늘은 그의 고민이 시기의 대상이 아니라 고스란히 고민거리로 들렸다. 어떤 가치들은 멀어질수록 세상을 명징하게 볼 수 있게 해준다.

작가의 이전글힘든 유월을 보낸 친구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