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나무 학교의 추억

day-81

by Luc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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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동아리 총 동문회가 있는 날이었다. 친선 토론이라는 이벤트가 있어서 졸업생 대표로 토론을 해야 했다. 같은 팀인 후배랑 열두 시에 만나서 점심을 먹고 가기로 했다. 그런데 이제 학교 근처 식당을 거의 모른다는 걸 알았다. 가끔 가던 쌀국수 집을 가려고 했는데 없어졌다. 다행히 근처에 다른 쌀국수집이 있어서 거기서 밥을 먹었다. 대학로의 흥망성쇠란 엄청났다. 그 와중에 애쵸티 떡볶이집 만은 망하지 않고 그 자리 그대로 있었다. 자리만 그대로가 아니라 사람이 바글바글한 것도 그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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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에서 셔틀버스를 탔다. 나는 명륜당의 커다란 은행나무를 보면서 감탄하고 있었는데 재학생인 후배는 가차 없이 지나가려는 셔틀을 잡았다. 몇 년만에 보는 학교 단풍은 매일 보는 사람에겐 감흥 없는 풍경인 것이다. 나는 명륜당 은행나무를 좀 구경해보고 가고 싶었는데. 토론 시작까지 두 시간밖에 남지 않았다며 후배는 급했다. 셔틀버스 가격은 그대로였는데 이제 카드결제가 가능하게 바뀌었다. 내가 학교 다닐 때는 회수권이나 현금을 내야 했는데. 후배가 내 몫까지 카드를 찍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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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관은 이제 3층까지 교수 연구실이었다. 경영관은 다섯층짜리 건물인데 오래된 교수들은 여전히 5층에 머물고 있었다. 예전엔 4층까지만 연구실이 있었는데 그 사이 교수가 더 많이 늘어난 모양이었다. 내가 조교를 하던 교수님 연구실은 5층에 있었다. 밤이면 동대문의 반짝이는 불빛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던 곳이었다. 교수님이 퇴근하고 나서도 이런저런 이유로 연구실이 많이 남아있을 때가 있었다. 불을 끄고 가만히 밖을 내려다보면 퍽 운치가 좋은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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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회가 끝나고 다 같이 우르르 학교를 내려가는데 옛날 생각이 참 많이 났다. 옛날 생각난다고 외치자 누군가 이렇게 해지고 학교 내려갈 일이 거의 없지 않나, 하고 말했다. 아 어떤 사람들은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나는 학교를 다니는 동안 교정에 오래 머물렀다. 어떤 겨울날에는 혼자 학교를 내려가다 뭔가 허한 마음에 동아리방에 들러 드럼을 치기도 했었다. 나는 드럼을 참 못 쳤다. 누가 있을 때는 드럼치가가 뭐해서, 아무도 없을만한 늦은 시간 혼자 동방에 가서 파카를 입은 채로 앉아서 쳤었다. 그렇게 치다 싫증이 나면 다시 동방 문을 닫고 집으로 갔다. 아무도 없는 학생회관 복도에 나서면 문이 덜컥, 닫히고 띠리릭 잠기는 소리가 났다. 그 시절 학관의 온도와 냄새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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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1기로 가입한 토론 동아리는 이제 학교 중앙 동아리가 되었다. 이제는 학생회관에 동방도 있다. 동방 구경을 위해서 학생회관에 들어갔는데 학생회관의 냄새가 그대로였다. 와, 이 냄새는 지금도 똑같네. 이 냄새를 맡으며 동방을 기웃거리고, 옆 동방에서 재즈 댄스 동아리가 춤추는 것도 보고, 앞 동방에서 랩 하는 친구를 좋아하기도 했었다. 참 오랜 시절의 기억을 불러오는 공간의 향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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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를 질러야 앞사람 목소리가 들리는 분위기에서 뒤풀이를 했다. 거기서 소리 지르며 오래간만에 보는 얼굴들과 소회를 풀었다. 십 년도 더 된 옛날이야기들을 하면서 깔깔대고 나서야 발길이 떨어져 집에 올 수 있었다. 지방이 대부분인 삼겹살이 나오는, 인테리어가 엉망인 가게였다. 이제는 더 이상 이런 가게 올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하면서 우리는 웃었다. 저질의 음식도 가게도 모든 것이 추억이라는 양념으로 버무려지는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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