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깡패의 고민

by Lucie

1.

루시는 더 좋은 대학을 갈 수 있었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았어요? 회사 동료에게 이런 질문을 받았다. 질문을 듣자마자 대답했다. 아니요? 저는 고3 때 가장 가고 싶었던 학교에 합격했는데요? 입학하기 전에 저는 제가 대학 가면 꼴등할 줄 알았어요.


2.

그런 대답을 하기 때문에 루시가 특이하다는 거예요. 설령 그게 사실이더라도 그렇게 대답을 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어요. 나는 왜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면 특이한 사람이 되는 것인지 약간 신기해지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거기서 네 저는 더 좋은 학교를 갈 수 있었는데요, 재수가 없어서 그렇게 되었어요, 라고 한다면 나는 무엇을 얻을 수가 있는 걸까. 세상에는 명백한 동기가 없는데도 거짓말을 일삼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거짓말이라고 하면 너무 윤리적으로 나빠 보이네. 대신 허풍이나 허세, 혹은 다소 작위적인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3.

토요일 밤에 노래방에 갔었다. 다음 예약곡이 없어서 리모콘을 일행 하나에게 건네며 말했다. "노래해, 노래해." 일행이 대답했다. "나 노래 잘 못해." 내가 말했다. "누가 잘 하래?" 내가 이 말을 하는 순간 가운데 껴있던 친구가 폭소를 터뜨렸다. 나도 완전 싸이코패스는 아니라서 이 대화가 왜 웃긴지 짐작은 된다. 노래를 잘 못한다는 친구의 말에 일반적으로 적절한 대답은 에이, 그래도 한 곡해~ 혹은 괜찮아, 나도 노래 잘 못해~ 이런 류의 문장일 것이다. 노래를 하라는데, 왜 잘 못 부른다는 말이 나오지, 너 지금 내 텍스트를 잘못 해석했는데? 라는 나의 반응은... 그래 지금 생각해보니 토요일 밤 11시에 3차로 간 노래방에서 나오기에는 좀 예상 밖이었는지도 모르겠다.


4.

연애는 인생을 즐겁게 살기 위한 수단이죠. 이 말에 왜 사람들이 사랑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타잔의 여자친구 같다고 했는지 알 것도 같다. 예를 들어 '연애'는 나에게 하나의 명사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좋아했던 사람들과 함께 보낸 시간은 각기 다른 사건과 감정으로 남아있다. 그 각기 다른 시간과 감정을 한 단어인 '연애'로 묶는다면 광활한 의미들의 교집합인 아주 일부로 남는다. 그 일부가 주는 의미가 나에게 무엇인지를 해석하면 나애게 연애란, 인생을 즐겁게 해 주는 수단으로 정의되는 것이다. 왜냐면 내가 어떤 한 사람을 좋아한 시간은 그렇지 않은 시간보다 나를 행복하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5.

가끔 그럴 때마다 정이 뚝뚝 떨어져요. 이번주에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그것이 관계의 단절을 위한 이야기가 아니라 관계 개선을 위해서 한 이야기였기 때문에 나는 반가웠다. 내가 항상 기준대로만 하려고 하고, 칼 같이 잘라 말해서 정이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결과가 다르지 않다고, 또는 그렇게 안 하는 것이 더 나을 때도 있다고 사람들은 말했다. 나는 경험의 세계를 존중한다.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나는 그 이야기를 존중하기로 했다.


6.

결혼해서 제주에서 살고 있는 친구가 나에게 이야기했었다. 자기는 서랍을 잘 닫지 않아서 와이프에게 혼이 나는데, 와이프는 가스레인지 속 같은 구석진 곳 청소를 잘 못한다는 것이다. 그럴 때 서로가 너는 왜 서랍을 안 닫니? 그러는 너는 왜 가스레인지 청소를 안 하니? 하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해의 영역이 아니라 존중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이해는 영원히 안될 것이지만, 그것의 공존을 허락하는 것. 그게 존중이고 그렇게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이다. 여자는 열린 서랍을 닫고, 남자는 가스레인지를 닦아 서로가 서로를 그대로 존재하게 하는 것.


7.

오늘 연소는 이런 나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열등한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아, 어쩐지 이것만큼은 부정하고 싶다. 명백한 근거는 없지만 지푸라기라도 잡아보자면, 나는 스물한 살 때부터 연소의 화법이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너보단 나은 것 같으니까, 나는 일단 열등함으로부터 조금만 벗어나면 안되겠니. 안 그래도 열등한 게 너무 많아서 약간 초조해졌단 말이다.


8.

어쨌거나 내가 그 사람의 텍스트를 더 많이 이해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든다. 나 노래를 잘 못 불러서 부끄러운데, 부르기 좀 망설여지는데, 이런 말이였던 거다. 역시 못 불러도 괜찮아, 불러 불러, 이렇게 했어야 했다. 원래부터 이렇지는 않았는데 너무 한쪽으로 매몰되어서 건조해진 것 같다. 일을 좀 못하더라도 잠을 좀 덜 자더라도 문학을 더 읽어야겠다. 내일은 팔이 좀 아프더라도 책을 가지고 출근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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