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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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월에 시작한 글쓰기가 어느새 십일월로 접어들었다. 월간 통계를 보니 한 달에 천오백 이상의 브런치 유입이 있다. 구독자도 조금 늘었다. 의외의 키워드가 흥하기도 했다. '멘큐냐 뜻'이라는 키워드 검색이 대박 나서 그 단어가 포함된 글의 조회수도 높았다. 내 브런치에는 130개 정도의 글이 있는데, 이중 백 개가 최근 석 달에 써진 것들이다. 나는 최근 백 일 동안 꽤 놀라운 것을 해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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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나 지금이나 회사 다니는 것이 퍽 고됐다. 야근도 안 했고 나를 직접 괴롭히는 사람은 없었지만 무튼 괴로웠다. 형체 없는 것으로부터 매일 고문당하며 회사를 다녔다. 막연히 그만두고 싶었지만, 백수로 경험자로써 그건 좋은 선택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처음 주제는 회사 이야기로 시작했다. 세 개의 회사를 다녔으니 그 이야기들만 써도 삼분의 일 정도는 날짜가 지나가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그건 안 써본 사람의 말도 안 되는 어림짐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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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입사부터 세 번째 회사까지, 시작과 끝이 정해진 이야기는 생각보다 속도감이 있었다. 삼일째 일기에 첫회사 퇴사가 이루어졌으며, 두 번째 회사 이야기는 입사와 퇴사로 이틀 만에 끝났다. 결국 일기 쓴 지 칠일만에 현재에 도달했으며 어찌어찌 꿈 타령으로 하루 더 써봤지만 고작 팔 일째일 뿐이었다. 맙소사. 나머지 구십 일 동안 뭘 쓴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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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쓰기 모임을 만든 사람이 백일 글쓰기 노하우가 있는 분이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프로젝트를 담당한 로리는 우리에게 당번을 정해서 매일 글감 추천을 하게 했다. 그래서 당번이 그날의 글감을 올려주면 그걸 보고 떠오른 생각을 적어보곤 했다. 매일 새로 올라오는 글감들을 보면서 사람은 정말 모두 다 다른 생각을 하고 사는구나, 하는 당연한 사실도 상기할 수 있었다. 왜 사람들이 다 나같이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는가 탄식하다가, 정신을 차렸다. 다른 건 당연한 거야. 불가능한 걸 바라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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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 동안 우리 집에는 일정한 패턴이 생겼다. 저녁을 먹고 집안을 정리한 뒤, 열한 시 언저리에는 둘 다 거실 테이블에 각자 노트북을 잡고 앉아 각자의 일을 한다. 보통 일기를 쓰는 데는 삽십 분 정도가 걸린다. 내 것을 다 쓰고 나면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읽는다. 자기 전까지도 읽고 아침에 출근하면서도 읽는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텔레비전이나 웹툰을 보는데 주로 쓰던 시간이었다. 똑같이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는 일이지만 남이 만든 콘텐츠를 보는 게 아니라 내가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이 되었다는 점이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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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거룩한 백 일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 나는 내일부터 웹툰보며 거실을 굴러다닐 생각에 신나 있다. 오늘도 앞자리에 앉은 동료에게 내일부터는 웹툰보면서 뒹굴뒹굴할 거예요!라고 말하면서 와하하 웃었다. 며칠이나 뒹굴다가 다시 글을 쓰게 될지는 나도 모를 일이다. 평소 방식대로, 쓰고 싶으면 쓸 것이고 말고 싶으면 말 것이다. 다만 매일 글쓰기에 쓰던 끈기를 새롭게 투자해보고 싶은 곳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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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히 운동하는 것이다. 이것은 내가 올해 내내 입에 달고만 살면서 실천하지 못한 것이기도 하다. 내일은 회사 바로 앞 건물의 요가학원에 등록을 할 예정이다. 거기보다 좀 덜 빡세다는 요가학원이 있는데 신호등을 하나 건너야 한다. 나의 습자지 같은 끈기를 알기에 다 필요 없고 제일 가까운 데로 가겠다고 마음먹었다. 지난 백일 중에서 글쓰기가 가장 힘들었던 날은 회식이 있던 날도, 해외여행을 간 날도 아니었다. 바로 아팠던 날이었다.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에너지는 내 몸에서 나온다. 꾸준히 운동해서 언젠가 브런치에 운동이야기도 쓰고, 운동하는 내 사진도 올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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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백일 글쓰기 프로젝트 끝, 이 매거진도 종료. 그리고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이다. 내일은 올해 마지막 달의 첫날이다. 내일부터 새로운 목표들을 세우면서 살면 2018년을 열두 달이 아닌 열세 달처럼 살 수 있을 것 같다. 내 머릿속의 끈기세포들도 다시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