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과 노오오력

day-99

by Luc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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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한테 노력하지 않고 살았다는 말을 많이 했었다. 원하던 대학을 수시전형으로 합격했다. 무슨 사업을 하는지도 모르는 회사에 합격했다. 하지만 정말 노력을 안 했나,라고 물어본다면 단칼에 그렇다고 대답하긴 어렵다. 바닥을 치는 외국어 영역 점수 때문에 여름방학에 문제집 일곱 권을 풀었다. 추석 연휴에도 학교에서 자율학습을 하는 애는 반에 다섯 명도 되지 않았다. 나는 그중 하나였다. 취업 자소서는 오십 개도 넘게 썼다. 기자가 되고 싶었지만 떨어질까 겁이 나서 공기업, 사기업 넣을 수 있는 곳은 닥치는 대로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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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도 그렇다. 친구가 글쓰기 수업을 하겠다고 했다. 회사에서 칼퇴하고 종로로 달려가서 수업을 들었다. 출석과 숙제 모두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 덕분에 지금도 글을 쓸 때 친구의 가르침이 귀 언저리에 들린다. 글은 구체적으로 써야 합니다. 문장은 짧게 쓰는 것이 좋습니다. 짧은 글이더라도 완결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친구는 숙제를 페이스북에 전체 공개로 쓰도록 했다. 우리는 서로의 글을 보고 첨삭을 해주었다. 지금처럼 문단으로 글을 쓰게 된 것은 그때 생긴 습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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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십구 일 동안, 매일 일기를 쓸 수 있었던 것도 몇 년 동안 계속 글을 써온 결과라고 생각한다. 머릿속의 생각들을 문장으로 적어 내려 가는 연습, 그게 쌓여있었기 때문에 별다른 내용이 아니더라도 줄글로 적어나갈 수 있었던 것 같다. 언젠가 글을 새로 쓰는 것이 힘들어서 몇 년 전 썼던 일기를 재활용하려고 한 적이 있었다. 글쓰기 수업의 숙제로 작성한 글이었다. 당시 첨삭해주던 수강생들 반응이 좋은 글이었다. 오래간만에 그 글을 찾아서 봤는데, 생각처럼 잘 쓴 글이 아니었다. 읽히는 것도 부드럽지 않고 어색한 곳도 많았다. 그 사이 내가 스스로 좀 더 나아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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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내가 무엇에 노력하고 있는가를 돌이켜 보게 된다. 어떤 것이든 시간을 들여 꾸준히 하면 잘하는 것이 될 것이다. 남들보다 잘하는지 못하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더 멋있다는 점이 중요한 것 같다. 앞으로 내가 가진 것들 중에 무엇을 더 잘하게 만들면 재밌는 생활을 할 수 있을까. 그런 것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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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하면 여자들은 누구나 그런 고민을 한다. 출산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한다면 언제 할 것인가. 나도 그런 고민을 했다. 서른다섯에 출산을 한다면 나에게 신체적으로 자유로운 시간이 서너 해 남아있다. 그 시간 동안 뭘 해보면 재밌을까. 이런 생각을 많이 해보게 되는 연말이다. 그래도 멀리 희미한 노선은 이미 결정되어 있다. 나는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 슈퍼 오지라퍼이니까. 사람을 많이 만나는 방법을 선택할 것이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보고 싶으니까 일단 영어를 잘하는 아줌마가 되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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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노력이라는 말 자체가, 노오오오력 등으로 비하되곤 했다.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것이 많아진 상황에서 아주 적은 가능성을 놓고 노력을 하라고 하니, 그렇게 들릴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나에게도 마찬가지다. 나는 끈기 있게 한 가지를 오래 하지 못한 역사를 살아왔다. 그저 좋아하는 것을 해나갈 뿐이다. 그냥 내가 시간을 보내는 스타일인 거지, 노력인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바라는 방향으로 행동의 결을 맞춰 놓으면 저절로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겠지, 하는 속 편한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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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에 대학생 대상으로 직무 강의를 한 적이 있었다. 학생들이 물었다. 강사님의 커리어 플랜은 어떻게 되세요? 학생들에게 밝고 희망찬 이야기를 해 줄 수 있었다면 좋으련만. 나는 팩트폭력배니까. 요즘은 세상이 빨리 변해서 직장을 가지게 된다고 해도 더 먼 미래를 단계적으로 그리는 게 쉽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서른 살쯤 되면 이제 앞으로 어떻게 살면 될지 정해져 있을 것 같으세요? 생각보다 그렇지 않답니다. 무엇을 하면서 살아야 할지는 앞으로도 계속 고민하시게 될 거예요. 학생들은 무슨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 미리 고민할 필요는 없다. 사람마다 그때그때 할 수 있는 고민의 총량이 정해져있기 마련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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