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24
1
올림픽이 시작되는 건 별로 감흥이 없었다. 올림픽 경기를 직접 볼 수 있다는 흥분도 잠시였다. 회사 콘도 예약을 해보고 당첨이 된 날짜에 있는 경기를 봐야지, 생각했는데. 올림픽 기간 동안은 예약 가능한 날짜에서 모두 제외되었다. 뉴스에서는 해당 기간의 숙박 가격이 천정부지로 솟는다는 기사가 나왔다. 더 이상 경기를 보러 가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그냥 집에서 보지 뭐, 생각했다.
2
개막식이 진행되는 시간에 나는 퇴근하는 중이었다. 올림픽이 시작된다는 감흥이 별로 없었다. 팔십팔년에 올림픽이 개최되는 때에도 이랬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나는 팔십칠년에 태어났다. 팔팔 올림픽의 감흥을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그때 굴렁쇠 소년이 어떻게 자랐다던가, 방생한 비둘기들이 골칫덩이가 되었다던가 하는 이야기들을 잔뜩 들으며 자라났다. 어느 집에나 호돌이가 그러진 아이템도 한 두 개쯤 있었다. 뭔가 팔팔 올림픽만큼 흥겨운 느낌이 없는 듯해서 실감이 잘 나지 않았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림픽은 올림픽이었다. 집에 와서 넋 놓고 개막식 영상을 감상했다. 드론으로 택배도 보내고 낚시도 한다고 들었는데, 드론쇼가 이렇게 어마어마하게 멋있는 줄은 몰랐다. 당연히 CG일거라고 생각했던 장면이 실제상황임을 알게 되자 감탄이 터져 나왔다. 천 개가 넘는 드론을 천 명의 사람이 조종하지는 않았을 것 같고, 프로그래밍을 한 게 아닐까 싶다. 이 쇼 만드신 분 누군지 모르지만 정말 리스펙!
4
낮에는 컬링을 봤다. 단순히 컬링은 원 안에 스톤을 넣는 경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전략이 무척 중요한 스포츠였다. 남편은 컬링이 체스에 비유된다고 알려주었다. 중간에 러시아 선수가 스톤 하나를 날려서 한국 스톤 세 개를 원 밖으로 밀어냈다. 따악, 따다닥 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차례로 돌이 원 밖으로 밀려 나갔다. 상대 선수지만 이 플레이는 정말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해설자가 말했다. 컬링 문외한인 나도 감탄했다. 멋진 경기였다.
5
저녁에는 쇼트트랙을 봤다. 두 말이 필요 없었다. 여자 계주에서 경기 초반 우리나라 선수가 넘어졌다. 천 분의 일초를 다투는 스포츠인만큼 순식간에 차이가 벌어졌다. 해설자가 아직 초반이니까 충분히 극복 가능하다고 했지만 정말일까 의심스러웠다. 반 바퀴 이상 벌어진 차이 때문에 카메라에 잡히지도 않게 되었다. 그런데 그 차이가 점점 좁아져 카메라 앵글 내로 들어왔다. 그리고 한 명씩 제치더니 결국 일등 자리를 차지했다. 함성소리가 경기장에 가득했다. 여자 계주는 올림픽 레코드를 달성했다. 넘어지고도, 기록을 경신한 것이다.
6
이렇게 멋있기 있기 없기. 한국 쇼트트랙 너무 잘해서 이만큼 잘하는 거 보여주려고 넘어진 거 아닐까요. 와 정말 너무너무 잘한다! 남편과 함께 소리를 지르면서 경기를 봤다. 직접 가서 봤으면 훨씬 더 재밌었겠지만, 집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꿀잼이었다. 남편에게 세상에는 재밌고 신나는 게 너무 많아서 즐겁다고 저녁에만 두 번이나 이야기했다.
7
심장이 쫄깃쫄깃한 경기 관람을 마치고 까무룩 잠이 들었다. 잠들기 직전에 한국 선수가 루지를 타는 것을 보았다. 해설하는 분은 스켈레톤 선수를 했던 분이라고 하는데, 해설위원 같지 않은 투박한 말투가 인상적이었다. 아프리카 국가 중에서는 아직 루지 선수가 한 명도 없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러게 열대의 나라에서는 얼음 위를 달리는 스포츠는 아무래도 여건상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림픽은 사람들에게 전 세계를 상기시켜준다는 점에서도 재미가 있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나라와 또 기후와 환경이 다른 나라들을 생각하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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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올림픽 기간에는 또 어떤 인간 드라마들이 완성될까. 무척 기대된다. 올림픽 기간 동안은 평소보다 더 재밌고 신나는 시간을 보내게 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