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솔아 <최선의 삶> 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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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년만에 김시인을 만났다. 추위를 피해 가게에 들어가 있다 문을 열고 나오는 김시인을 보자 자동으로 오른손이 높게 올라갔다. 들어 올린 손을 내려 김시인의 손을 와락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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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무력함을 극복해가고 있는 나와 다르게 김시인은 한창 무력한 중이었다. 하지만 본 중 최악의 상태는 아니라서 마음을 놓았다. 요즘 사는 이야기들을 한참 하다가 막판엔 이런저런 소설 이야기를 했다.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매년 고장난 로봇처럼 같은 말만 반복하는 내게 그는 참 열심히도 소설 큐레이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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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인이 읽어보길 권한 소설이 있어서 함께 교보문고에 갔다. 책을 사러 서점 한바퀴를 돌다 수필 코너에서 어느 일러스트레이터의 책을 발견했다. 카톡 이모티콘에서 종종 보았던 캐릭터를 그리는 작가의 책이었다. 그는 귀가 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귀가 커다란 토끼 캐릭터를 그리는데, 최근엔 시력을 잃는 병에 걸렸다고 소개되어 있었다. 소리도 빛도 없지만 행복할 수 있다는 글귀가 겉면에 적혀 있었다. 나와 김시인은 그 커버문구를 읽고 말문을 잃었다. 그 코너를 떠나면서 김시인은 역시 서점에 오길 잘했어, 갑자기 모든 게 감사하다, 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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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산 책은 두께에 비해 무게가 가벼웠다. 봉투 필요하냐고 묻는 계산원에게 괜찮다고 대답하자 책에 초록띠를 둘러 주었다. 계산이 된 표시라고 했다. 한 손에 책을 휘적휘적 들고 서점을 나섰다. 강남역으로 향하는 중간쯤 김시인은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몇 분 후에 카톡이 날아왔다. 김시인은 시처럼 행바꿈이 잧은 기다란 메시지를 보내왔다. 특이한 놈, 누가 작가 아니랄까봐, 피식 웃으면서 또 보자는 답장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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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솔아의 <최선의 삶>은 반전 없는 반전소설이었다. 표지의 접혀 들어간 귀퉁이에 작가소개가 한 줄 적혀있었다. "내가 쓴 글들이 대신 말해줄 것이다." 에이 이게 무슨 허세람, 했는데 웬걸. 그 말 그대로였다. 어둡고 불안하고 뒤로 갈수록 더 기대할 것이 없는 주인공의 이야기, 그리고 그 이야기를 쓰고나서야 악몽을 꾸지 않게 되었다는 작가의 수상소감까지, 그 모든 것이 그녀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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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단했던 김시인을 보면서 나는 시가 고통의 산물이라고 생각했었다. 문학을 한다는 건 희노애락에 대한 해부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 면에서 나는 시인이 행복하지 않은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고통스럽게 슬픔의 모든 페이지를 정독하지 않고도 살 수 있는데, 시를 쓴다는 건 인생을 고달프게 사는 방법이지 않은가 하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소설을 읽으면서 이미 고통은 어디에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를 쓰려고 하지 않아도 사실 괴로운 이야기는 이미 넘쳐나지. 그리고 그 이야기의 모든 마디를 정성들여 갖추어 내는 것도 치유의 과정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탈고를 하고 나서 더 이상 악몽을 꾸지 않는다는, 그렇게 자신의 악몽을 보내주어서 행복하다는 작가의 소감은 희망적으로 들렸다. 그게 이 책에 있는 단 하나의 밝은 조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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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소설읽는 사람이 정말 드물다고 김시인이 말했다. 나는 요즘 사람들이 성장이라는 단어에 미친 자기계발 중독자들인 것 같다고 호응했다. 대부분의 자기계발서들이 나에게 무언가를 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소설은 나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대신 수 많은 질문들을 나에게 주었다. 그래서 나는 소설을 읽는 것이 좋다. 오랫동안 눌러놓은 일시정지 버튼이 풀린 것처럼 갑자기 뇌가 움직인다. 월요일이 오는 것이 별로 나쁘게 느껴지지 않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