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야근 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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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올해 맨 마지막 날이라 출근한 이들이 적었다. 여섯 명인 우리팀도 절반이 휴가를 썼다. 출근한 셋은 차를 타고 좀 멀리 점심을 먹으러 갔다. 찬 국물에 말아진 메밀면을 후룩후룩 들이키며 누군가 말했다. 루씨가 내년에 서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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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게도 오늘 밥 먹는 셋은 내일부터 나이 앞자리가 바뀌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서른, 다른 한 명은 마흔, 또 한 명은 쉰. 나는 서른이 돼서 더 신난다고 했으며, 마흔을 맞으신 분은 별다른 감흥이 없다고 했고, 쉰이 되신 분은 이제 더 이상 물러날 데가 없는 느낌이라고 했다. 40대까지만 해도 아직 청년이네, 장년이네하며 버텼는데 50대는 꼼짝없이 늙은 축으로 넘어가는 느낌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한참을 나이 이야기를 하다가 회사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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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니 20대에는 코앞만 보고 살았다. 눈 앞에 당근을 매달아 놓고 그 당근을 쫓아 달리는 말 같은 생활이었다. 내 대학생활은 동창들도 인정할 정도로 빠듯했다. 놀기도 엄청 놀고 공부도 열심히 했다. 직장을 다니면서도 정신없는 생활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어제는 지인에게 내년에 아들이 학교 들어가나요? 하고 물었다가 2학년이 된다는 소리를 들었다. 오늘은 다른 분에게 이제 2학년 되는 거죠? 했더니 3학년이 된단다. 최근 1년을 잃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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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코 앞만 보고 살았는데도 잘 지낼 수 있었던 건 주변 사람들 덕분이었다. 나의 가장 구질구질한 면까지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사람들은 나보다 나를 더 걱정해주었다. 어떤 때에는 나보다 나를 더 잘 알아주기도 했다. 내 20대는 가히 인복으로 가득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렇게 하도 주변 덕을 보고 살아서 나도 누군가를 도와주는 일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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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해는 8년만에 호주에 다시 가보았던 의미있는 해였다. 또 회사 합병 후 첫 해를 보내면서 새로운 일들도 많이 겪었다. 힘들다고 필름 끊어질 때까지 술 마시면서 울기도 했었다. 그래도 운 날보다 웃은 날이 훨씬 많았다. 맺힌 마음들도 결국엔 다 풀어졌다. 엉킨 매듭이 그렇게 단단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미우니 고우니해도 내가 다니고 싶은 회사인 걸 확인한 한 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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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근을 할까하다 일기나 쓰자, 하고 퇴근한 날이었다. 한남동에 있는 카페에 와서 케이크 한 조각과 레몬민트티를 주문했다. 메뉴판에 있는 사진과 똑같은 레몬민트티가 나왔다. 민트가 한 줌 들어있었는데, 시간이 지나자 약간 쓴 맛을 냈다. 문득 30대를 이 차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향긋한 쓴맛, 그리고 레몬향이 나는 10년을 살고 싶다. 따그닥따그닥 달리지 않고, 차분히 우러나올 수 있는 그런 10년을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