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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cie Feb 05. 2023

미래를 알았다면 사람 그렇게 뽑았을까

스타트업 일기 15편

최근 IT 업계에 감원 바람이 불었다. 처음에는 투자 업계가 얼어붙는다는 창업자들을 향한 경고들이 먼저 들렸다. 주변에 스타트업 하시는 분들도 당장 어렵지 않더라도 열어두었던 공고들을 닫는다고 했다. 혹시나 하여 미리 대비하는 차원이기도 하고, 당장 투자자들은 지금 있는 인원도 줄이라는 식의 이야기를 해온다고 했다. 


그다음에는 지인 중에 근무시간을 줄이고 연봉을 줄이는 방식으로 조정을 하는 경우도 생겼다. 그쯤에는 트위터도 대량 감원에 들어갔다. 일론 머스크가 과격한 방식으로 경영을 한다고 생각했었지만 이제는 메타, 구글, 마이크로소프트까지 인력 감축을 하는 대열에 모두 합류했다. 최근에는 작년에 시리즈 C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이 고강도 구조조정을 한다는 기사까지 보게 되었다. 시리즈 C 투자면 천억이 넘는 규모다. 


요즘은 매일 물가가 오른다는 뉴스를 본다. 처음엔 에너지 요금이 오르고, 그다음에는 식자재 가격이 오르고, 그 제품을 사용해서 만드는 음식 값까지 오른다는 것이다. 나는 그 어쩔 수 없는 고리 속에 은근히 합류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느껴진다. 석유파동으로 값이 올라갈 때는 빠르고, 파동이 끝나서 시장이 안정되어도 주유소 기름 가격은 천천히 내려가는 것처럼. 원래 내가 파는 제품 가격을 올리고 싶었던 경영자라면 누구라도 이 대열에 합류하는 것이 쉬울 것이다. 아무도 안 올릴 때 나만 올리는 것보다는 다들 올릴 때 함께 가면 부정적 시선을 다소 피할 수 있으니까. 


인원을 감축하는 것도 그렇다. 불과 서너 해 전까지만 해도 리쿠르팅 인센티브며, 화려한 복지를 내세워가며 불같이 사람을 뽑던 시기가 있었다. 재벌집 막내아들처럼 미래를 알 수 있다면 그때 그런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알아도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런 시기가 지나고 침체기가 왔을 때 투자자 압박을 피하고 저실적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 인원을 줄이는 방법을 택하는 회사들이 있는 것 같다. 물론 정말로 사정이 어렵고 인원 감축이 아니면 도저히 버틸 수 없는 회사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회사도 조금 있다는 생각이 든다. 또 인원감축을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은근히 근로자에게 불리한 것을 강요하는 경우도 생겨나는 듯 하다. 경영진은 항상 회사가 어렵다고 말한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물론 경영자가 위기감을 갖고 회사를 운영하는 것은 영속적인 사업을 가능케 하는 좋은 점이다. 하지만 그런 메시지의 전달이 메시징에서 끝나지 않고, 근로자를 더 을로 만들고 일하기 좋은 환경을 파괴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경우가 있어서 우려스럽다. 


링크드인에서 구글에서 퇴사하는 개발자들이 자신은 어떤 일의 전문가이니 이런 포지션이 있으면 저에게 연락 주세요,라고 쓴 장문의 글들을 보게 된다. 미국은 근로기준법이 유연해서 해고가 쉽다. 간밤에 자신이 해고되었다는 메일을 미처 확인하지 못하고 출근했다가 사원증을 대도 문이 안 열렸다는 에피소드도 들린다. 전날 해고되지는 않았지만, 나도 희망퇴직을 해본 적이 있어서 이런 사연을 들으면 마음이 쓰리다. 인생에 굳이 안 해도 될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회사가 계속 성장한다면 언젠가 나도 겪게 될지 모를 일이다. 혹여나 닥쳐올 위기에 누군가를 해고하는 일이 없도록 팀원을 새로 영입하는 의사결정을 할 때 더 신중해져야겠다는 다짐을 해보게 된다. 나는 재벌집 막내아들이 아니라 미래를 모르니, 그게 다짐한다고 잘될까 싶기는 하지만. 그래도 작고 노련한 팀을 만드는 데 집중하는 한 해를 보내야겠다. 지금도 어려운 상황에서 어떻게든 구성원을 해고하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는 경영진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또 올리는 게 쉬운 시국에 어떻게든 가격을 올리지 않고 제품을 만들어내는 회사들에게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본다. 이 시기가 지나갔을 때 어려운 결정을 한 이들에게 그에 응당한 결과가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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