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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cie Feb 11. 2023

법인카드 사용내역은 전체 공개

스타트업 일기 16편

많은 스타트업이 그렇듯이 우리 회사도 식대나 업무에 필요한 도서, 소모품 구매 등을 회사에서 지원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여느 회사들처럼 구성원들이 개인별 법인카드를 갖고 있다. 회사에서 많은 법인카드가 사용되면 생각보다 관리에 시간이 든다. 보통 대기업에서는 별도의 지출 정산 시스템을 갖고 있다. 구성원 각자가 법인카드 사용 내역을 매월 시스템에서 불러와서, 어디에 썼는지 항목들을 선택하고 결제를 올리면 그 금액만큼 회사에서 지급해 주는 구조를 갖고 있다. 하지만 스타트업은 그런 시스템이 없는 경우가 많다. 또 월단위로 지출을 확인해서 일일이 계좌이체 해주는 것도 모두 내가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우리 회사는 그냥 회사 계좌에서 바로 지출되는 구조로 되어 있다. 


우리 회사는 대부분 재택근무를 하다 보니 점심을 배달시켜 먹는 경우도 꽤 있다. 보통 배달 앱의 결제가 이전에 결제했던 카드 정보를 저장하고 있는 구조다 보니, 어쩌다 실수로 결제되지 않아야 하는 경우에 회사 카드가 쓰이는 일도 발견되었다. 팀원과 회사도 정산해야 하고 부가세 신고에서도 제외해야 해서 잔잔하게 번거로운 작업이었다. 지금은 회사가 작으니까 내가 내역을 보다가 발견할 수 있는데 앞으로도 이렇게 운에 기대서는 안될 것 같아서 이번달부터는 모두가 매월 지출 내역을 한 번씩 확인하기로 방식을 바꿨다.


대부분 회사들이 명시적인 제도 없이 법인카드를 사용하다가 사람이 많아지면 구체적인 정책을 만들게 된다. 원래는 적당히 회식을 했었지만 이제 월에 인당 7만 원까지만 쓸 수 있다거나, 이런 식의 상한선이 생기는 경우를 종종 봤다. 상한선이 있으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정하기가 쉬워진다. 가이드가 없으면 혹시 소고기를 먹어도 될까, 고민할 수도 있지만 예산이 7만 원이라면 소고기는 못 먹는다. 고민할 시간이 줄어든다. 대신에 금액 상한선으로 비용이 수렴한다. 보통 7만 원까지 쓸 수 있다고 하면 5만 원 정도 먹고 끝날 수 있는 상황에서도 나머지 2만 원을 잃어버리는 듯한 아쉬운 마음에 상한선을 채워서 쓰게 된다는 의미다. 또 6개월 만에 회식을 하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어쨌거나 쓸 수 있는 돈이 7만 원이라면 사람들은 매달 회식을 하는 방향으로 행동한다.


가장 좋은 것은 상한선 없이 필요할 때 사용하면서도 다른 구성원들이 어떻게 비용을 쓰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있어서 스스로 적정선을 정할 수 있는 상황이다. 근데 이게 말이 쉽지, 실제로 달성하기는 정말 어렵다. 일단 법인카드 사용 내역이 투명하게 공개되는 회사도 많지 않다. 설령 되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미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지고 비용을 쓰는 부서들이 존재한다면 부서별 데이터 제시가 곧 공개처형하는 것 같은 상황이 된다. 그래서 회사가 작고 제도가 단단하게 굳어지기 전에 이런 시도들을 충분히 해보는 것이 좋다. 그냥 상한선을 정하면 효율적인데 왜 이런 고민을 구성원에게 전가하느냐는 반론도 있을 수 있다. 이것은 회사의 전체적인 문화에 따라서 맞을 수도 틀릴 수도 있다. 만약 구성원의 능동성이 요구되는 업무 문화를 갖고 있다면 비용 사용에 대한 가이드도 결을 맞춰서 능동적으로 행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능동성은 근육과도 같다. 회사에서 수동적인 제도를 많이 운영할수록 구성원의 능동성도 약화된다.


다행히 우리 회사는 작기 때문에 팀원들 뿐만 아니라 대표도 법인카드 사용 내역을 공개하는데 거리낌이 없어서, 모두가 볼 수 있는 데이터로 취급하기로 했다. 지금이야 사용 항목이 단순하지만 앞으로는 간단한 통계들을 제공해 나갈 생각이다. 조직이 작을 때는 데이터를 공개형으로 취급해 나가기가 쉬운데, 반대로는 결국 데이터 정리와 보기 좋게 만드는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 한 명이기 때문에 여력이 없어서 못하는 경우가 많다. 슬랙이나 노션의 자동화 기능들을 더 많이 뒤지면서 조금이라도 데이터 가공에 시간을 적게 쓰기 위해서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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