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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cie Mar 19. 2023

투자 혹한기를 느낄 때

스타트업 일기 19편

회사에 다닐 때도 위기니 겨울이니 하는 말을 자주 들었다. 처음 회사원이 된 이듬해 상여금이 '위로금' 명목으로 나왔으니 나의 위기로운(?) 회사 생활의 역사도 길다. 회사를 다녀온 이래로 경제가 더 좋아졌다는 이야기도 거의 들어본 적이 없었다. 라떼도 취업이 어려웠지만 오늘날의 취업은 더 혁신적으로 어려워졌고, 오죽하면 서울대연고대생도 의대로 전향하는 경우가 많다는 기사도 봤다. 좋은 대학을 나와도 취업이 쉽지 않은 탓이겠지.


이번주에는 사업을 10년 넘게 하고 있는 선배가 급전이 필요하다는 카톡을 보내왔다. 몇 년 만에 온 카톡이었는데 그런 내용이었으니 상황이 급해 광역으로 뿌린 모양이었다. 나도 스타트업을 한다는 근황을 전하고 오래간만에 이야기를 나눴는데, 선배는 십 년 넘게 사업하면서 지금이 제일 어렵다고 했다. 하필 이렇게 어려울 때 나는 사업을 시작했는가, 하는 생각과 동시에 그래도 사업이 초반이라 회사가 작아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지난주에는 실리콘밸리은행이 파산을 했다. 우리 회사는 다행히 미국 계좌가 다른 은행에 있어서 별일은 없었지만, 지인 중에서 자기 회사의 미국 계좌가 실리콘밸리 은행이라는 사람도 있었다. 미국 연준에서 예금은 모두 반환해 주겠다고 해서 정말 다행이었다. 투자 라운드를 준비하면서는 VC가 사정이 어려운 곳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경제라는 것이 다 연결된 구조이다 보니 스타트업만 어려운 것이 아니라 투자사도 어렵고, 그러다 보니 은행도 망하고, 이렇게 다 같이 어려워지는 것 같다. 


올초에 클로즈하려고 준비해 온 투자 라운드가 끝나지 않고 봄을 맞이하고 있다. 조달하려고 했던 현금이 생각보다 늦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아직은 작은 회사라서 몇 달 더 운영을 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지만 이 기간 동안 대표이사의 모든 에너지가 투자금 조달에만 쓰이고 있는 점이 안타깝다. 마케팅도 하고, 서비스 확장도 해나가야 하는 시점인데 대부분의 계획이 투자받고 나서로 밀린다. 못하고 있어서 안타까운 일 중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있나? 계속해서 반문하는데, 진짜로 못하는 일인지 내가 에너지가 없어서 주저하는 것인지 헷갈릴 때가 많다.


현금이 떨어져 갈 때도, 투자금 조달이 늦어질 때도 사업하다 보면 이럴 때도 있는 거지 싶었다. 그런데 내가 이 상황 때문에 기분이 심드렁해질 때, 주변 사람들과의 약속을 이유 없이 뒤로 미룰 때, 현재 회사 방향에 대해 회의감이 들 때 진짜 혹한기가 왔구나 실감이 든다. 마음이 가난할 때가 가장 가난하다.


그런 마음을 위로라도 하는 듯이 봄이 오고 있다. 움츠러들지 말고 더 많은 사람을 만나야지, 하는 다짐을 해보게 된다. 창업을 해보니 뭐든지 사업화를 할 수 있는 자유가 생기는데, 그러다 보니 최근엔 스타트업 인사 컨설팅이 나의 새로운 직업이 되어가고 있다. 조직 진단을 위해서 임원 인터뷰를 하던 것이 임원 코칭으로 이어지게 되었고, 임원코칭을 하다 보니 궁금한 점이 생겨 코칭 기관에 임원 코칭 파트너로 지원을 하게 되었다. 만약 합격한다면 임원 코칭에 대해서 좀 더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아 기대가 된다. 가난해진 마음은 새로운 배움과 기대로 채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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