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tIO 2023을 준비하면서
남편은 직업이 개발자인데 취미 중에 하나도 개발이다. 휴일에도 종종 노트북을 들고 카페에 코딩하러 간다. 그런 남편이 좋아하는 것이 함수형 프로그래밍이다. 대다수의 개발자들이 사용하는 프로그래밍 방식과 차이가 있어서 국내 대기업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다. 비주류 기술로 여겨지는데, 남편은 다른 사람 시선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마이웨이로 살아서 인지 국내 대기업을 다닐 때도 함수형 프로그래밍으로 업무를 했었다.
몇 년 전 유럽으로 안식휴가를 떠났을 때도 두 개의 기술 컨퍼런스에 참석했는데 하나는 스칼라, 하나는 하스켈 컨퍼런스였다. 스칼라는 기존 개발자들이 함수형 프로그래밍으로 진입할 때 많이 사용하는 언어인데 그렇기 때문에 컨퍼런스 규모도 꽤 컸다. 스위스 로잔에서 열렸는데 네이버에서도 참석한 사람들이 있었고, 온라인에서 남편과 교류가 있는 해외에서 개발하는 한국분들도 만날 수 있었다. 아시아에서 함수형 프로그래밍 생태계는 정말 작아서 파워 내향인인 남편이 일본 개발자를 만나서 잘 안 되는 영어로 파워 수다를 떤다거나 하는 희한한 일들도 있었다.
하스켈 컨퍼런스에서는 더 희한한 광경을 볼 수 있었다. 하스켈은 스칼라와 달리 함수형 세계에서도 더 마이너한 언어라 개발자 중에서 하스켈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 없다는 사람들도 많을 정도다. 당시 취리히에서 열린 하스켈 컨퍼런스는 무료라서 개발자가 아닌 나도 일단 등록을 했었다. 가보니 취리히 외곽에 있는 대학에서 열리는 행사라 장소도 외지고, 스칼라 컨퍼런스처럼 화려한 행사가 아니었는데 앞에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와있었다. 페이스북 같은 큰 회사에서 온 사람들도 있었고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마지막 세션에도 청중이 대강의장을 그득 채웠다는 사실이다. 공짜 컨퍼런스인데 끝날 때까지 아무도 집엘 안 갔다니?!
게다가 세션마다 질문하는 사람도 많았다. 아마 질의응답이 한국어였더라도 나는 아무것도 알아들을 수 없었겠지만, 그 사람들의 열정이 대단해서 굉장히 흥미롭게 구경했다. 이렇게 비유하면 좀 그렇지만, 열정적인 종교 집단에 온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페이스북 같은 대기업에서 온 사람들도 있었는데 어차피 페북에서도 하스켈로 개발 못할 것 같은데, 다들 열정이 대단하구나 싶었다. 이 정도면 프로그래밍 덕후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 회사는 2년 전부터 함수형 개발자 컨퍼런스를 열고 있다. 나는 사람들을 돕는 일을 좋아하는데, 함수형 개발자 컨퍼런스는 내 성향에 참 잘 맞는 일 중 하나다. 일단 거기에 오는 사람들은 프로그래밍을 좋아한다. 자기가 하는 일을 좋아하고 그걸 더 잘하기 위해서 궁리하는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에너지가 나를 충전시킨다. 올해도 가을이 되자 마자 컨퍼런스가 언제 열리냐는 질문으로 등떠 밀려서(?) 컨퍼런스 준비를 시작했다. 발표자를 찾는다는 공고를 올리자 하루 만에 두 명이나 발표 신청이 들어왔다. 다들 미리부터 컨퍼런스에서 무슨 이야기를 할지 고민해 두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에는 마법의 주문이 깃들어 있다. 누가 돈을 주는 것도 아니고 칭찬해 주는 것도 아닌데도 내 마음이 먼저 가는 곳. 그곳에서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는 것. 그것이 덕질이 주는 순수한 힘이 아닐까. 함수형 프로그래밍에서 중요한 개념 중에 하나가 '순수 함수'인데 영어로는 'pure function'이라고 한다. 함수형 프로그래밍 세상에 가면 'pure'라는 단어가 등장한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물론 부수효과나 사이드 이펙트가 없다는 측면에서 다분히 공학적으로 등장하는 용어지만, 구경꾼 문과생 입장에서 좋아하는 것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의 '순수'한 열정을 느끼고 있노라면 우연히 겹친 말이지만 잘 들어맞는 것 같아서 즐겁달까.
올해도 퓨어한 에너지를 쬘 수 있는 liftIO 현장에서 많은 분들을 만나기를 고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