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

by Lucie

누군가 아침부터 우리 집 벨을 계속 누르고 있다. 영하 11도인 아침에 고운 뜨개모자를 눌러쓴 할머니가 인터폰에 보인다. 누구세요? 해도 대답하지 않고, 옆에는 딸처럼 보이는 사람이 왜 남의 집에서 이러냐면서 할머니를 말리고 있다. 문을 열어드리는 것이 도움이 될까, 아닐까 하다가 그냥 벨소리를 들으면서 앉아 있기로 했다. "여기 모과가 있대, 모과가." 왜 엄한 곳에서 모과를 찾으시는지 모르겠지만 할머니는 이 말과 함께 몇 번 더 벨을 눌렀다.


연말에 갑작스럽게 친구가 세상을 떠났다. 알 수 없는 모과타령을 들으면서 나는 또 친구를 생각했다. 힘들다는 이야기도 웃으면서 하던 친구였다. 어려움이 있어서 새벽에 지인 집에 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음에 그러면 우리 집에 오라고 했는데, 안 오고 가버렸다. 책꽂이에 친구가 사준 다이어리가, 필통엔 하나씩 나눠 쓰자며 향을 골랐던 핸드크림, 냉장고에는 친구가 준 배도라지즙이 들었다. 자기는 안 쓴다며 주고 간 미스트도 아직 거의 안 쓴 새 물건이다. 건네진 물건들이 주변에 이렇게나 많아서 아직도 친구가 떠났다는 게 믿기지가 않는다.


어제는 가만히 앉아서 나는 무엇이 슬픈 걸까 생각해 봤다. 친구와 즐거웠던 추억은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고, 그의 세상이 힘들어서 숨을 거둔 것이니 그것도 그가 바랐던 것이라면 한 편 수긍해 줄 수 있을 텐데, 그렇다면 나는 앞으로 그와 함께 쌓을 수 있었을 즐거운 시간이 오지 않게 되어서 슬픈 것일까? 그가 그렇게 힘든 줄 몰라서 미안한 것일까? 이미 와버린 슬픈 사실을 과거에 바꾸지 못해서 애석한 걸까? 존재의 영원한 부재는 원래 슬픔을 주는 것일까?


언젠가 귀신을 무서워하던 지인이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부터 귀신을 무서워하지 않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귀신이 할머니와 같다고 생각하니까 무섭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어떤 죽음은 두려움을 극복하게 해주는 계기가 되기도 하는구나.


어제는 꿈에서 친구의 가족들에게 이런저런 궁금한 것을 물어보는 꿈을 꾸었다. 실제 장례식장에서 나는 유족에게 한 마디도 건네지 못했다. 그저 마주 보고 눈물을 흘리다가 돌아 나왔는데, 아마도 이것저것 궁금한 게 있었던 모양이다. 지금에 와서 그것이 다 무슨 소용이겠나 싶어 마음속에 간직하기로 한다. 늘 말이 많은 편이라 마음에 말을 담아두는 공간이 거의 없는데 조금 넓어지려나보다.


할머니에게 모과는 어떤 의미였을까. 모과 하나만으로도 영하의 날씨에 누군가의 집을 찾아 나설 정도로 삶의 이유가 되기도 하는데, 어떤 순간 모과 한 톨만큼도 너에게 남아있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그랬을 친구의 세상이 슬퍼서 눈물이 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나는 내가 마음에 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