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숨 <왼손잡이 여인>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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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 갔다. 입구의 자기계발서 매대에서 '토론승리의 기술'이라는 책을 발견했다. 나는 꼴랑 A4용지 15장 분량의 책을 썼지만, 그래도 주제가 토론이라 시중에 나와있는 대부분의 토론책을 살펴봤었다. 내가 아직 못본 토론책이라니, 나도 모르게 손이 갔다. 10분정도 들여 책을 한 장 한 장 넘겨보니 꽤 괜찮은 책이었다. 이정도를 쓰려면 이 사람이 어느 정도 고민을 해서 정리를 했을지 약간 감이 와 닿았다. 나의 지식을 동원해 글을 쓰고 출판을 해보는 것은 책을 보는 나의 시선을 업그레이드해 주는 일이었다는 걸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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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이 한참 흘렀는데 서점 진열장에 2015년 이상문학상 수상집이 걸려있었다. 올해는 김숨이 수상을 했다. 여러해 이상문학상 수상집을 읽으니 매해 수상하는 소설가의 이름이 익숙하다. 그도 그럴 것이 공든탑은 무너지지 않는다고, 매해 단편을 기고해나가는 소설가들이 언젠가 그 상을 타지 않겠는가. 또 이상문학상은 소설에서는 권위있는 상이라 아무나 타기도 힘들고. 그런데 김숨의 수상작인 '뿌리이야기'는 어쩐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쌍비읍이 너무 많이 나와서 시각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림도 아닌데 왜 저게 마음에 안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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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김숨의 대표작으로 실린 '왼손잡이 여인'은 시선을 확 끌어당겼다. 자기의 왼손이 멀쩡히 붙어있는데도 왼손이 사라졌다고 믿는 여자. 그리고 쓰지 않아 야위고 거칠어진 그녀의 왼손에 집착하게 되는 남편의 이야기. 뭔지 말도 안되는데 말이 되는 것 같은 그런 이야기. 보이지 않는 것은 믿지 않는 남편은 여자의 왼손을 세게 쥐어 골절상을 입힌다. 너무 세게 쥐어 여자의 손톱이 남편 손을 찔러 피가 난다. 하지만 믿는대로 보는 여자에게는 자신의 왼손이 보이지 않는다. 당연히 아프지도 않다. 병원에서 깁스를 해주었지만 깁스에 곰팡이가 슬고 악취가 나도 깁스를 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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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어쩐지 한강의 '채식주의자' 후속편인 것 같다. 한강의 소설에는 멀쩡한 여자가 갑자기 채식주의자가 되는데, 나중에는 물과 햇볕만으로도 살 수 있다고 믿어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 제발 뭔가를 먹어달라는 가족의 애원도 귀가 없는 것처럼 반응한다. 신념의 현실화. 한강은 '내 여자의 열매'로 정점을 찍는다. 한강이 서술한 소설에서 여자주인공은 자식의 몸이 식물로 변한다고 믿고, 결국 식물이 되어 화분에 묻힌다. 그리고 열매가 맺혔다는 내용이다. 한동안 나는 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는데, 한강이 사람이 식물이 되어가는 과정의 심리적 묘사를 너무 상세하게 했기 때문이다. 이런걸 어떻게 쓸 수가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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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손잡이 여인'에서 여자는 오른손잡이의 십대를 보내고 왼손잡이가 되겠다 결심한다. 그리고 완벽한 왼손잡이가 되었다. 그리고 어느날 왼손이 없어졌다, 라고 믿고 왼손을 전혀 쓰지 않게 되었다. 그녀의 강한 믿음 때문에 남편은 여자의 손이 보이는데도 그 손이 정말 사라진 것 같아 자꾸만 손을 확인한다. 만져보고 부러뜨려보고 자신의 신체를 해치게도 한다. 어떤 사실을 믿는 것, 그건 한 편 무서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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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사는 김군이 서울에 출장을 와서 나에게 일주일간 모든 것을 예스해보라는 제안을 했다. 아침에 반차쓰고 늦잠 자고 싶지만 나는 성실한 사람이니까 회사에 가야지, 이런 프레이밍을 버려보라고. 그래서 나는 지난 금요일에 날씨가 좋다는 이유로 반차를 썼다. 직장생활 6년차에 처음으로 써본 충동적 휴가였다. 그냥 쓰면 되는 거였는데 괜히 마음에 걸려하고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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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에게 갖고 있는 신념들 중에도 스스로에게 독이 되는 것이 있겠지. 왼손잡이 여자는 왼손이 없어 일을 할 수 없다고 직장을 그만두었다. 나에게도 그렇게 생각한 것들이 있지 않을까. 나는 영어를 못하니까, 유학은 절대 못갈거야. 날 때부터 글 잘 쓰는 글쟁이들이 많아서 기자 시험은 아무래도 통과할 수 없을 것 같아. 나는 공부를 잘 못하니까 서울대연고대는 합격 못할거야. 나보다 한참 끼 많은 사람들이 많아서 연극영화과에 가면 힘들거야. 제대로 부딪히기 전에 했던 수많은 가정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겠지. 왼손이 없다고 믿는 여자랑 별로 다를 게 없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