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재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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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벽이 요란하게 울렸다. 우리 집 두 층 아랫집이 인테리어를 새로 하는 탓이었다. 최근 집 인테리어로 골머리를 앓던 팀 동료가 떠올라 참았다. 사실 참지 않는다고 해도 딱히 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아주 기꺼이 참았달까. 그래, 집 고치는데 일이 주 걸리는 것도 아니고, 토요일 아침 열시면 사실 다들 일어나는 시간이니까... 나도 언젠가 집을 고치는 가해자가 될지도 모를 일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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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서 물을 한 잔 마시고 빈 집에 누워 있으니 엄마의 밥 먹으라는 카톡이 날아왔다. 냉장고에 가지와 오이무침이 있으니 밥 먹어. 라는 카톡은 일부러 너 좋아하는 반찬을 했으니 안 먹으면 엄마는 속상해, 라는 말로 치환해서 들린다. 나는 요즘 엄마의 마음을 위해서 밥을 먹는다. 언젠가도 식탁에 가지런히 줄 맞춰 누워있는 유부초밥을 보고 억지로 몇 알 입에 구겨 넣고 갔었다. 정말 먹고 싶지 않다, 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가지런한 자태를 보니 먹지 않을 수 없었다. 유부초밥의 정렬도 역시, 안 먹으면 엄마 속상해, 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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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밥을 먹지 않고 침대에서 오전과 오후의 상당 시간을 보냈다. 다시 까무룩 잠이 들었다가, 다시 눈을 뜨자마자 머리맡의 시집을 펼쳐 읽었다. 슬픔과 별, 추위와 가난에 대한 정호승의 시들이 이어졌다. 눈을 뜨자마자 시집을 들어서 읽을 수 있다니. 아 휴일은 정말 소중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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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두 시가 되어서야 침대를 딛고 나왔다. 주스가 따라진 컵을 들고 거실을 산책했다. 집에 있는 구피가 새끼를 잔뜩 낳아서 엄마가 어항에 새끼 물고기들을 격리시켜 놓았다. 너무 새끼가 많아서 한 무더기는 어항에, 한 무더기는 전자렌지에 찌개 돌리는 그릇에 들어있었다. 뭐야 이 그릇에 든 올챙이들은... 전자렌지에 돌리면 되나, 하는 망상... 그나저나 얘네가 다 자라면 어항에 다 들어갈 데는 있나. 엄마는 정말 뭘 키워도 다 잘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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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다 각기 다른 재능을 갖고 태어났다면, 우리 엄마의 재능은 무언가를 키우는 것인 것 같다. 엄마가 키우는 구피들은 화려한 지느러미를 뽐내고 헤엄쳤다. 시도 때도 없이 새끼를 배고 엄청 많이 낳았다. 이모들 집에 가면 우리집 태생 구피들이 다들 어항 하나씩을 꿰차고 있었다. 그렇게 구피가 많은데도 엄마는 가끔 물고기가 죽으면 불쌍하다고 여러 번 반복해서 말하곤 했다. 내가 보기에는 너무 많아서 한 마리쯤 죽어도 될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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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뿐만 아니라 식물도 잘 큰다. 7-8년에 한 번 정도나 꽃이 핀다는 행운목도 우리집에서는 단 기간에 꽃을 피워냈다. 난도 그렇고 이름 모를 모든 식물들이 집에 와서 화려한 모습을 자랑했다. 식물이 다 때 되면 꽃 피우고 그런 거지. 대수롭지 않은 나와 달리 엄마는 매주 나에게 이거봐 예쁘지? 하며 함께 감탄하기를 요구했다. 이미 엄마가 그렇게 말해서 지난주에도 응 정말 예쁘다, 하고 동조해주었는데, 그걸 그 다음주에도 또 똑같이 반복하는 것이었다. 은하야, 이거봐 너무 예쁘지 않니? 이거 봐바. 내가 보기엔 지난주와 다를 것이 없는 상태였다. 뭐지 난 또 예쁘다고 해야하나. 응 예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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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을 준다는 게 그런 건가보다. 오늘도 예쁘고 내일도 예쁘고, 매일 봐도 예쁜 것. 그리고 좋지 않은 상태로 변했을 때 그 개체 하나하나를 걱정해주는 것. 새끼를 낳고 죽은 어미 물고기가 불쌍하다며 왜 죽었을까, 그 미물의 심리상태를 추측하는 엄마를 보면 어째서 구피들이 우리집에서 왕성하게 번식하는 지를 알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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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내가 이렇게 다 커서 엄마 무시하고 대들고 그러면 다시 시간을 되돌리고 싶지 않아? 어려서 말 잘 듣던 때로 돌이키고 싶다거나, 뱃속에 집어넣고 싶다거나. 그때 엄마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했다. 그래도 예쁘다고 했었다. 지금 내가 엄마보다 더 키가 큰데. 그렇게 자신보다 더 거대하게 자라도 예쁘구나. 날이 더워지자 엄마는 알록달록한 무늬가 그려져 있는 물통을 두 개 더 사왔다. 물통을 주면 들고 갔다가 가방에 그대로 넣어놓고 자버리는 귀차니즘 딸 때문에 매일매일 새 물을 챙겨주려고 물통을 더 사온 거다. 일찍 운동가는 엄마는 요즘 매일 식탁 위에 물이 담긴 물통과 갈아놓은 주스를 나란히 세워두고 간다. 두 개의 세워진 실루엣이 엄마 목소리로 밥 먹고 가, 물 가지고가, 하고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