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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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으면 바로 끊는 전화. 바로 뭔가를 판매하는 광고 전화다. 나는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와도 꼭꼭 받는 편인데, 받는 전화의 절반은 이런 전화인 것 같다. 그래도 나는 끊기 전에 꼭 대답을 하고 끊는다. 아, 괜찮습니다. 필요 없습니다. 이유는 내가 이런 전화를 걸어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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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여름방학 때 학교에서 가까운 알바 자리가 있어 한 번 나가봤다. 엘지텔레콤의 휴대전화를 판촉 하는 업체였다. 독서실 같이 칸막이가 켜진 자리에 앉아서 전화를 걸었다. 시급도 주고 실적이 좋으면 인센티브를 더 줬다. 그때만 해도 011 번호를 쓰던 시절이었다. 011은 대부분 sk텔레콤이었기 때문에 나는 011로 시작하는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걸어서 통신사를 바꾸면 휴대폰을 싸게 살 수 있다고 광고하는 것이다. 번호는 빙고판처럼 생긴 곳에 숫자를 바꿔 적어서 무작위로 만든다. 그리고 전화를 걸어서 말한다. 고객님 엘지텔레콤으로 바꾸시고 휴대폰 싸게 바꾸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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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를 받는 사람들의 반응은 천차만별이다. 그중 내 번호를 어떻게 알았냐며 정색을 하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그게 퍽 웃겼다. 나는 당신이 누군지 몰라... 그냥 무작위로 걸었단 말이다. 그렇게 대답을 해도 사람들은 그러니까 내 번호 어떻게 아셨냐니까요? 라며 반복해서 물었다. 무작위로 전화번호 만드는 방법에 대해서 차근차근 설명해준 적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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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로 판매를 하는 곳에 가면 그 일을 하는 사람도 참 다양하다. 저녁에는 나이트에서 일한다는 오빠도 있었고, 태권도 국가대표를 하다 그만둬서 급격하게 살이 쪘다는 언니도 있었고, 쑥스러움을 많이 타는 복학생도 있었다. 우리는 다 같이 노래방에 가서 놀면서 스트레스를 풀기도 했는데, 학교 친구들이랑 노는 거랑은 차원이 다른 놀음판이 벌어졌다. 다들 술도 많이 마시고 노래도 잘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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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을 하고 나서도 그런 전화 판매 대행사에 갈 일이 종종 있었다. 키워드 광고는 대부분 전화로 판다. 대행사에 광고 상품 설명을 나가면 거기에는 평소에 회사에서 보기 힘든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다. 전화로 일하는 사람들에게 멋있는 외모는 필요 없기 때문에 거기에 가면 키가 매우 작거나, 살이 많이 쪘거나, 혹은 옷도 신경 써서 입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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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콜센터에서 영업한 내용도 들을 일이 있었다. 한 번은 어떤 대행사의 직원이 광고 해지 전화를 받은 사례를 들어보았는데 내용이 너무 드라마틱하고 웃겨서 한참을 듣고 앉아 있었다. 쇼핑몰을 운영하는 여자와 광고를 판매하는 남자 직원의 통화였는데, 얼핏 모르고 들으면 둘이 사귀는 것 같은 스토리이다. 여자는 힘없는 목소리로 저... 광고를 해지하고 싶은데요,라고 말한다. 남자는 한숨을 쉰다. 하... 고객님, 저희 정말... 어렵게 시작했는데, 그렇게 어렵게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잖아요. 남자의 목소리는 깊은 실망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다 남자는 결심했다는 듯 말한다. 그래요, 해지하세요. 그만해요. 저도 이제 더 하고 싶지 않네요. 그러자 여자가 울기 시작한다. 정말 죄송해요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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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센터에서 일하는 것은 감정 노동이다. 본부장의 지시로 일주일간 콜센터에 나가 있기도 했는데, 네이버와 네이트를 구분하지 못하는 광고주도 있었다. 해지 처리를 하면서 온라인 광고를 용케도 이해하고 사셨네,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작은 칸막이 안에서 노트북 앞에 앉아 사람을 귀로 만나는 일. 그런 일들을 해봤던 추억이 떠올라서 오늘 한 번 적어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