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사람의 물건

박완서의 <기나긴 하루>를 읽고

by Lucie

1.
신경숙 작가가 돌아가신 박완서 선생을 그리며 쓴 글을 보다가 눈물이 났다. 박완서 선생은 팔순이 넘어서도 새 작품을 쓰고 마지막 병석에서도 젊은 작가들의 작품 열 다섯 개를 읽었다고 한다. 죽는 날까지 현역작가이고 싶다고 했던 그녀는 마지막까지도 쓰고, 읽다 떠났다. 단단하고 멋진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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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겪고 살아온 그녀의 삶에 가족을 잃은 아픔이 있어서 인지, 그녀의 작품에는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상실감과 아픔을 그녀는 정말 상세하게 잘 그린다. 그건 겪어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생때같은 목숨도 하루아침에 간데없는 세상에 물건들의 목숨은 왜 그렇게 질긴지. 물건들이 미운 건 아마 그 질김 때문일 거에요. 생각만 해도 타지도 썩지도 않을 물건들한테 치여 죽을 것처럼 숨이 답답해지네요. 죽는 건 하나도 안 무서운데 죽을 것 같은 느낌은 왜 그렇게 싫은지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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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언니를 잃은 친구가 언니 책상 서랍 속 토익 성적표를 보고 오열했다고 한 게 떠올랐다. 그녀의 언니는 생전에 토익 점수를 절대 말해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중에 언니의 유품을 정리하다 토익성적표의 점수를 보고 오열한 뒤로 그녀는 토익 공부도 할 수 없게 되었다고 이야기했다. 죽은 사람의 물건이라는 건 어쩐지 엄청난 무게로 다가온다. 언젠가 친구의 모친상에 갔다가, 친구가 정리해야 할 어머니의 물건들은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어 나까지 눈물이 날 것 같았던 적이 있다. 사람은 죽어서 무엇을 남기는가, 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생각보다 1차원적으로 남는 게 무척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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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내가 죽는다고 해도 내 앞으로 날아올 고지서들이 있을거고, 내가 죽고도 이번달 쓴 카드값이 다음달에 청구되겠지. 온라인 상에 남아있는 ID와 소셜네트워크의 이미지와 텍스트들. 내 피씨에 남아있는 일기며 문서, 그리고 내 방에서 쓰고 있던 모든 물건들과 재산. 언젠가 유서를 쓰라는 수업시간에서 교수는 유서에 그런 것들을 어떻게 처리해야할지를 분명하게 쓰라고 가이드를 해주었다. 대학생인 나만해도 아주 실무적(?)으로 지시해야할 것이 많아서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예를 들어 내가 어느 은행들을 이용하고 있는지 말을 안해주면 엄마가 그걸 다 알리가 없잖아? 하는 생각에 거래 은행 목록을 나열해야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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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를 쓰면서 가장 안타까운 점은 살아서의 나의 일상이 죽은 뒤 다른 사람에게 특별한 무게로 남는다는 것이었다. 죽는 입장에서 유서를 쓸 때 가장 걱정되는 것이 남는 사람들의 감정이다. 이걸 너무 슬프게 써서는 안되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꼭 쓰긴 해야했다. 그러니까 죽을 때 남겨야할 유품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유서인 것 같다. 더이상 입을 열 수 없는 나를 대신해줄 물건. 어쩌면 내가 태어나서 말을 배우고 내 생각을 문장으로 잘 표현하기 위해서 글을 써온 건, 유서를 쓰기 위해서가 아닐까, 생각할 정도로. 그건 중요한 물건이다.

6
문득 박완서 선생은 마지막에 어떤 문장을 남겼는지 궁금해졌다. 박완서 선생은 산 동안도 많은 좋은 작품을 남겼으니 그런 건 없었어도 되었을까. 아니면 죽기 전 남기려던 많은 문장들이 이미 작품들의 이곳저곳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이미 나의 많은 이야기들이 여기저기에 있으니, 나의 유서는 그 이야기들로 갈음한다. 이런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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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가 생전 신경숙 작가에게 '신경숙씨 보셔요'라는 제목의 글을 남겨서 신경숙도 '박완서 선생님 보셔요'라는 답글을 실었다. 돌아가신 박완서 선생의 단편을 담은 문집에 그를 기억하는, 닿지 않는 편지를 쓰는 건 어떤 느낌일까. 해외에 1년간 나가니, 돌아오면 자주 뵙게 해주세요 선생님, 하고 말한 자신이 정말 얼마나 한치 앞도 모르고 있었던지, 라는 회한이 담긴 편지를 쓰며 신경숙 작가는 어떤 기분이 었을까. 언젠가 90살이 넘은 노교수가 이미 돌아가신 역사 속 인물들의 개인사를 이야기해주던 강의가 생각났다. 노인이 다 된 손기정 선수가 어디서 조그마한 표창과 상금을 받았는데 그 상금의 세금을 내기 위해서 세무사를 찾아서 왜 세금이 이것밖에 되지않냐며 더 많이 낼 수 있게 해달라고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복잡한 기분이 들었었다. 내가 오래 살게 된다면 내 아름다웠던 친구들의 이야기를 저렇게 하게 될까. 그러면 어떤 기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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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그리워한다는 것은 그래도 좋은 일이다. 지하철을 타고 오늘 업데이트 된 웹툰을 다 보고 고개를 들어서 멍 때릴 때. 보고 싶은 사람이 하나도 없다면 그건 분명 불행한 일일 것이다. 그러니까 간데없이 사라져 버린 사람들을 그리워하는 일도 마음 아프지만 나의 사랑을 확인하는 일일 것이고, 완전히 못 견뎌서 죽어버리고 싶은 그런 류의 아픔은 아닐 것 같다.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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