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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cius Aug 13. 2018

은산분리 규제 완화의 의미

인터넷전문은행과 현행 은행 규제의 충돌

2018년 8월 7일 문재인 대통령은 인터넷전문은행 규제혁신 현장방문 행사에서 인터넷전문은행에 한해 은산분리 규제를 완화할 것을 시사하였습니다. 이후 이에 대해 뜨거운 찬반양론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특히, 당선 전 은산분리 원칙을 지킬 것이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을 들어,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은산분리가 무엇이고, 왜 필요한지, 한편 인터넷전문은행의 경우는 왜 은산분리 규제를 완화해주기를 원하는지를 종합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은산분리(separation of banking and commerce)는 은행업과 다른 산업을 분리하는 원칙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 제조업 회사는 은행을 소유할 수 없고, 반대로 은행 또한 금융 외의 다른 생산업 또는 서비스업에 진출할 수 없도록 막아두는 것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삼성이나 LG는 은행을 가질 수 없고, 반대로 우리은행이나 국민은행이 반도체를 만들거나 음식을 팔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조금 의아함을 느끼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삼성그룹의 경우, 생명보험을 판매하는 삼성생명과 카드회사인 삼성생명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보험회사나 카드회사 또한 금융회사인 것은 마찬가지인데, 왜 굳이 은행의 경우는 콕 집어서 안된다고 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은행이 가지는 특수한 성격 때문입니다.


은행업의 핵심은 예금, 적금, 입출금계좌 등의 금융서비스를 소비자에게 제공하여 자금을 조달하고, 조달된 자금을 활용하여 기업에 대출하여 투자 성과를 내는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은행은 한 나라의 경제가 순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됩니다. 기업들이 투자를 해야 하는데 자금이 필요하면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은행에서 대출을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은행산업이 활성화될수록 투자가 촉진되어 경제가 성장할 수 있게 됩니다. 반대로, 일반 소비자가 여유 자금이 생겼을 때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행동이 자신의 은행 계좌에 저축을 하는 것입니다. 그 덕분에 소비자들은 미래의 소비 생활을 위한 자금을 준비하고 이자를 받아 늘려갈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만약 어떤 기업, 예를 들어 대한항공이 한 은행의 지분을 많이 확보하여 대주주가 되면 어떻게 될까요? 주주(shareholder)라는 것은 기업의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주인이라는 뜻입니다. 즉, 경영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특히 보유하고 있는 지분의 비율대로 의결권, 다시 말해 투표권이 생기는 주식회사의 특징상, 기업은 대주주의 뜻대로 운영될 수밖에 없습니다. 당연히 대주주의 입장에서는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은행을 경영하고자 할 것입니다.


만약 대한항공이 은행을 보유한 상태에서 새로운 비행기를 보잉이나 에어버스로부터 구매해야 하는데 자금이 모자라면 어떻게 할까요? 은행의 자금을 활용하여 비행기를 구매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원래는 은행에서 자금을 빌릴 때, 충분히 돈을 갚을 여력이 있는지 대출심사를 엄격하게 받아야 합니다. 은행의 자금은 은행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소비자들에게서 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경우, 대주주의 자격으로 대한항공은 은행에 압력을 넣어 대출을 승인받을 가능성이 커지게 됩니다.


물론 대한항공이 쉽게 망할 회사도 아니고 빌려준 돈은 제 때에 잘 갚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나 만약 대한항공이 아니라 경영 위기에 있는 기업을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이는 상당히 큰 위험이 될 수 있습니다. 그 기업이 은행의 자금을 토대로 회생한다면 서로에게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겠지만, 혹시라도 파산하고 만다면 은행 소비자들의 귀중한 자금을 날려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부적절한 자금의 이동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우리나라와 미국 등의 국가에서는 은산분리 원칙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은산분리는 은행법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우선, 은행법 제15조 제1항에서 한 사람이 은행의 지분 10% 이상을 보유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어떤 특수한 사람이 은행을 독점하여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은행이 건전하지 못한 투자를 하도록 만드는 것을 방지하고자 한 것입니다. 다음으로 제16조의 2에서는 그중에서도 비금융주력자의 경우에 대해 더욱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비금융주력자란, 비금융회사, 그러니까 금융업이 아닌 다른 업종을 주력으로 하고 있는 회사를 의미합니다. 제16조의 2 제1항에서는 비금융주력자의 경우는 앞의 15조 1항보다 더욱 엄격하게, 은행의 지분 4% 이상을 보유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어떤 사정으로 더 많은 지분을 보유하고자 할 때는 금융위원회의 승인을 받아 앞에서 나왔던 10%까지 보유할 수 있으나, 단 이 경우에는 4% 이상의 의결권은 포기하기로 약속해야만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인터넷전문은행이 나타나게 됩니다. 인터넷전문은행이란, 실제 지점은 하나도 없이 온라인 전자상거래만으로 운영되는 은행을 의미합니다. 인터넷전문은행은 은행산업의 경쟁을 촉진하고 혁신하기 위해 도입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은행산업은 굉장히 제한적인 경쟁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인터넷전문은행이 도입되기 전, 우리나라 전국에서 영업하는 상업은행은 국민은행, 신한은행, 우리은행, KEB 하나은행의 단 넷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지역에서만 영업하고 있는 6개의 지역은행이 있습니다. 이러다 보니 소비자들의 은행 서비스에 대한 불만이 매우 컸습니다. 달리 이용할 대체자가 없기 때문에 이자율 등의 혜택이 많이 주어지지 않는다고 느낀 것입니다. 또한, 기존 은행들도 위축된 조직 문화, 상당한 입지를 지니고 있는 노조, 지나치게 많은 지점들과 경영 조직 등으로 인해 국제적인 수준의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고 스스로 우려하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는 은행산업을 발전시켜 소비자들에게 더욱 질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외부에서의 충격이 필요했습니다. 그에 따라 미국 등의 사례를 본받아 인터넷전문은행을 도입하게 된 것입니다. 인터넷전문은행은 명확한 장점들을 지니고 있습니다. 첫째, 오프라인 지점을 운영하지 않기 때문에 인건비와 불필요한 관리비를 줄일 수 있고 절감된 비용만큼 소비자에게는 높은 저축 이자, 기업들에게는 낮은 대출 이자를 제공하여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둘째, 온라인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이체와 같은 단순 업무는 소비자에게 더욱 빠르고 편리하게 제공할 수 있고 언제 어디서나 은행 서비스를 활용할 수 있게 해줍니다. 셋째, 최근 발전하고 있는 인터넷 모바일 관련 기술을 접목하여 기존에 없던 생활 밀착형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우위를 지닐 수 있습니다.


인터넷전문은행을 설립하고 운영할 수 있도록 현재 국회에는 '인터넷전문은행 설립 및 운영에 관한 특례법안'이 계류 중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처음 해보는 것이기 때문에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으므로, 우선은 기존의 은행법의 규정에 어긋나지 않는 자격을 갖춘 경우에만 금융위원회의 승인을 받아 특별히 영업을 시작하도록 하였습니다. 바로 국내 최초 인터넷전문은행이라는 타이틀을 지니고 있는 케이뱅크와 모바일 메신저로 유명한 카카오 계열의 카카오뱅크입니다.


케이뱅크의 경우, 여러 사업자가 협력적으로 참여하여 구성하였습니다. 대표적인 주주로 기존의 은행인 우리은행이 10%의 지분, 편의점업을 하는 GS25가 10%, 생명보험 회사인 한화생명이 10%, 결제 서비스를 제공하는 다날이 10%, 통신사업을 하는 KT가 8%의 지분을 출자하여 설립되었습니다. 기존 은행법의 규정을 벗어나지 않기 위해 최대 10%의 지분만을 보유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카카오뱅크의 경우, 예상 가능한 대로 카카오그룹이 주도하였습니다. 그러나 케이뱅크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기존 은행법에 맞추느라 정작 대주주는 카카오가 아닙니다. 카카오는 마찬가지로 10%만의 지분만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기존의 금융회사인 한국투자금융이 50%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단, 이때 앞으로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이 도입되어 규제가 완화되면 한국투자금융의 지분을 카카오에게 넘겨주기로 합의하였다고 합니다. 카카오가 10% 이상의 지분을 가질 수 없는 현실적 문제로 인해, 법에 저촉되지 않는 금융회사인 한국투자금융이 임시로 주인을 맡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두 인터넷전문은행은 출범과 함께 폭발적인 성장을 기록하게 됩니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인터넷전문은행은 기존 은행들보다 매력적인 예적금 및 대출 이자율을 제시하였고, 또한 모바일 환경을 활용하여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하였으며, 다른 기업들과의 협업을 통해 매력적인 상품들을 내놓았습니다. 이에 따라 저를 포함하여 많은 소비자들이 기존의 은행과 병행하여 이용하거나 또는 아예 인터넷전문은행으로 주거래은행을 바꾸었습니다. 편리하게 대출할 수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대출도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됩니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대출량이 지나치게 많아지게 된 것입니다.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 영업하는 은행들은 균등한 수준의 자율적 규제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 규제를 바젤 협약(Basel Accord)라고 합니다. 바젤 협약은 스위스 바젤에 위치한 국제결제은행(Bank for International Settlements)의 산하 바젤은행감독위원회(Basel Committee on Banking Supervison)에 의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 위원회에는 우리나라의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을 포함한 전 세계 20개 선진국들의 중앙은행이 회원 자격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 바젤 협약은 현재 3단계(Basel III)까지 나와있는데, 가장 중요한 부분은 바로 자본 규제(capital requirements)입니다.


앞서 설명드렸듯이 은행업의 핵심은 소비자에게서 자금을 조달받는 것입니다. 이는 한편으로, 은행들의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를 일으킬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 자기 돈으로 사업하는 것이 아니고 소비자들에게서 빌린 돈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함부로 다루게 된다는 것입니다. 대출해준 자금이 회수되면 물론 좋겠지만, 내 돈이 아니므로 못 돌려받아도 그만이기 때문에 부실한 기업에도 대출을 해주려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바젤 협약에서는 기업 대출을 포함한 위험 자산의 양이 늘어날 때마다 그에 비례하여 자기의 돈, 즉 자기자본의 양도 늘이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필요한 자기자본의 양을 계산하는 방법은 매우 복잡하지만, 간단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2단계 바젤 협약(Basel II)에서는 기업대출의 양 100% 중 4%에 해당하는 만큼의 자금을 보통주(common stock)로 발행하여 마련해야 합니다.


다시 인터넷전문은행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출범과 동시에 인터넷전문은행의 대출은 눈에 띄게 증가하였습니다. 이는 바젤 협약에 따라 인터넷전문은행의 자기자본 또한 늘어나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주식으로 자본을 조달하는 것을 증자라고 합니다. 그런데 자본을 조달하려고 하니 은행법의 규정으로 인해 더 이상 자본을 조달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만약 은행법의 10% 규정이 없었더라면, 카카오뱅크가 새로 주식을 발행한 후에 이를 카카오가 매수하는 방식으로 자금을 조달하고, 그 결과 카카오의 지분이 10%에서 그 이상으로 올라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은행법상 이는 불가능하므로, 자본을 더 이상 조달할 수 없는 문제점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자본을 조달할 수 없게 된 인터넷전문은행이 바젤 협약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은 더 이상 대출을 늘리지 않는 것입니다. 결국, 현재 상황에서 인터넷전문은행이 더 성장할 수 있는 기회는 제약될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을 하루라도 빨리 제정하여 인터넷전문은행들이 자본을 조달할 수 있는 숨통을 열어주어야 한다는 의견이 금융위원회와 금융업계에서 제시되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은산분리 규제 완화 언급은 이에 호응하는 발언이었던 것입니다.




인터넷전문은행의 도입은 우리나라 은행산업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왔습니다. 새로운 서비스들이 도입되었고, 이에 따라 기존 은행들도 긴장하여 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혁신을 이루기 위해 노력할 수 있도록 유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법적인 부분에서 제약사항이 많아 인터넷전문은행들의 성장이 더딘 상태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최소한의 보호 장치를 유지한다는 측면에서 은산분리의 원칙은 앞으로도 지켜지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러나 적절한 수준에서 규제를 완화한다면 우리나라 금융산업, 더 나아가 경제 발전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예를 들어, 보유할 수 있는 지분을 20%로 두배 늘려주되 여전히 4% 이상의 의결권은 포기하여 경영에 제한적으로만 참여할 수 있도록 견제하고, 이와 동시에 대주주에게 대출을 금지하는 조항은 더욱 강화하여 바람직하지 못한 자금의 흐름은 막는 등, 은산분리의 원래 취지가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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