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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승희 Jan 27. 2016

내 삶의 시작

내 삶의 시작은 언제 부터일까? 

우리는 흔히 태어나는 순간, 삶은 시작되었다고생각한다.

하지만 그 누구도 본인의 삶이 시작되는 그 순간을 기억하지 못한다.

(물론 요새는 아이를 낳을 때 동영상이나 사진을 찍어 간직 하지만 이 역시 타자에 의한 기억이 아니던가?)

삶이 시작되는 아주 중요한 순간임에도 불구하고,  이 중요한 순간은 거의 대부분 타자의 기억력에 의존되고 이야기 되어진다.


 나 역시 내 삶의 시작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기 때문에 주로 엄마에게 내 삶의 시작을 묻곤 한다.
"엄마 나 태어날 때 어땠어?"
"말도 마라, 너 낳을때 너무 힘들어서 몇 번이나 까무려쳤는지 몰라."
우리  엄마는 나를 낳던 도중에 너무 힘들어 기절을 몇번이나 하셨고, 그래서 집게 같은 것으로 나를 빼어 냈다는 것이다. 집게로 잡아 뺀 나의 머리는, 엄마의 표현에 의하면 무 마냥 길쭉했단다. 
길쭉한 내 머리를 보고 엄마는 여자아이 얼굴이 이렇게 길어서 어찌하며, 시집을 어떻게 보낼까 하는 걱정을 하셨단다. 하지만 엄마의 표현에 의하면 신통한 의사선생님은 엄마의 걱정을 대번 알아차리시고, 웃으시면 걱정말라고 아이들의 머리는 말랑거려 잘 다듬으면 이뻐진다며, 내 머리를 토닥토닥 두드려서 이렇게 동그랗게 만든거란다.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의심 반 신기함 반이다. 

특히 내 얼굴을 의사선생님이 토닥여서 이렇게 동그랗게 만들었다는 대목은 여간 의심스럽지 않다.

물론 나는 거의 믿지는 않지만 그래도 가끔 내 동그란 얼굴을 볼 때마다 그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이 내 얼굴을 다듬는 김에 이렇게 동그랗게 말고 좀 갸름한 달걀형으로 다듬어 주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물론 아주 가끔이지만.

따지고 보면, 나는 성형인인 셈이다.


아무튼 믿거나 말거나 우리 엄마가 말해주는 나의 삶의 시작은 이러하다.


내가 기억하지도 못하는 내 삶의 시작이라니....

그렇다면 내가 기억하기 시작한 내 삶의 시작은 과연 언제일까?



이것에 대해 고민하다. 금방 단념 해버렸다. 

그렇다. 

나는 기억력이 그다지 좋지 못하다. 

암기도 잘 못하고, 무엇보다 나의 기억력은 종종 다른 사람들과 다른 기억을 하는 경우가 있다. 

요새는 할 말이 있어 지인들에게 전화를 하고 내가 왜 전화를 했는지 잊어버리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이럴때는 내가 머리 수술을 했다는 사실이 아주 유용한 변명 거리가 되기도 한다. 

"원래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수술 후 부쩍 심하네..." 

이렇게 이야기 하면, 이웃의 아픔을 공감할 줄 아는 나의 지인들은 허둥지둥 나의 아픔을 위로하며, 본인들은 수술을 하지 않았음에도 기억력이 나쁘다는 이야기를 하며 본인이 더욱 걱정이라며고 나의 걱정을 덜어준다.

뿐만 아니라 나는 졸지에 예전에는 아주 총명했던 사람이었으나, 수술 때문에 현재 약간 건망증이 심한 사람으로 둔갑되고, 위로와 동정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솔직하게 나의 건망증 이력은 아주 오래된 것이다. 


자신 없는 기억력에 의존 하지 말고, 질문을 바꾸어 생각하기로 했다.


 내가 내 삶을 인식한 최초의 순간은 언제였을까?



내 삶이 끝날 수 있다는 사실을 직시한 그 순간, 
역설적이게도 나는 내가 살아있는 존재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었다.
그렇다. 2013년 6월. 내가 죽을 거라는 선고를 받은 그 순간, 나는 내가 살아 있는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2013년 6월 1일, 나는 내 삶을 인식하기 시작했고, 그 날은 공교롭게도 내 남편의 생일이었다. 
물론 나는 살았다. 그리고 현재 아주 잘 살고 있다.
평생 약을 먹고 살아야 하지만 나는 이것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나도 약을 매일 먹지만, 주변을 보면 약을 매일 먹는 사람들은 참 많다. 물론 그들이 먹는 약은 주로 비타민 A,B,C,D나 오메가, 철분제 등등의 영양제이지만, 나도 내가 먹는 약을 영양제라 생각하며 먹고 있다. 


내 질병으로 인한 수술과 병원의 경험은 나의 많은 것을 변화 시켰다. 


그 변화 중 가장 큰 것은 바로 내가 내 삶의 존재를 인식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순간이 바로 내 삶의 시작이라 말하고 싶다. 

내가 나의 삶을 맞닥뜨린 그 순간, 

그리고 미치도록 그 삶을 부여 잡고 싶었던 그 순간,

내 삶은 시작된 것이다.


내 삶은 그렇게 시작되었으며, 나는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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