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딸아이도 뭐를 잘 잃어버리는데 나를 닮아 그런가 싶을 때가 있어 혼내다가도 이런 것도 유전이 되나 싶기도 하다.
내 기억력은 그리 신통한 것이 되지 못하지만 특이하게 나는 냄새를 통한 기억은 참 세밀하게 기억을 한다는 것이다. 내가 남보다 특출 나게 후각이 발달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냄새로 기억이 되는 것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선명하다는 것이다. 사람마다 기억하는 방법이 다르겠지만 나는 냄새로 기억을 저장한다고 말해야 할 거 같다.
내가 좋아하는 냄새가 있다. 칼칼한 고추가 들어간 된장찌개 냄새, 두툼한 돼지고기가 들어간 묵은지 김치찌개 냄새, 빵 가게 빵 굽는 냄새, 커피 볶는 냄새, 친정 집에 들어서면 나는 냄새, 잘 말린 빨래에서 나는 냄새... 이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냄새는 하나는 물기를 머금은 촉촉한 대지의 냄새이고 다른 하나는 추수하고 널어놓은 짚단 냄새 그리고 열심히 밖에서 놀다 들어온 우리 딸아이 머리카락 냄새이다. 농사를 아니 조금만 텃밭이라도 가꾸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촉촉하게 물기를 머금은 흙냄새가 얼마나 좋은지 말이다. 그리고 나는 볏짚에서 나는 그 내음, 바로 햇살을 머금은 햇살의 냄새를 좋아한다.
나는 흙냄새와 햇볕의 냄새로 내 유년 시절을 기억한다.
내 유년시절을 꽉 채운 것은 바로 외할머니의 이야기라 해도 과언이 아닐 거 같다. 나는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전까지 외할머니댁에서 자랐다. 당시 집안 사정으로 인해 삼 형제 중 가장 맏이인 내가 외할머니댁에서 자랐는데, 내 또래에 비해 한글을 늦게 깨친 것 외에는 더없이 좋은 유년시절이었다.
내 또래 아이들이 유치원을 다닐 때 나는 할아버지 자전거 뒤에 타고 논에 나가서 놀았다. 모내기의 흥겨움을 아는지 모르겠다. 물론 요새는 기계로 반나절이면 금방 끝나버리는 모내기지만, 우리 할아버지 논의 모내기는 온 동네 사람들이 품앗이를 해서 하는 그러한 일이었다. 모내기 내내 노래가 끊이질 않았고, 우스개 소래와 웃음은 덤이었다. 어른들이 모내기를 하고 있을 때 나는 논두렁을 깡충깡충 뛰어다니며 놀았다. 물론 미끄러운 논두렁을 뛰어다다 자빠지거나 논에 빠지는 일은 허다했다. 논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으면, 언제든 막내 외삼촌이 와서 나를 거뜬히 안아 올려 주셨다. 모내기에서 빠질 수 없는 새참이 오면, 얼마나 흥이 겨운가. 할머니와 동네 아주머니들이 갖고 오신 새참에 둘러앉아 있는 어르신들 주변을 맴돌며 나던 그 땀 냄새와 흙냄새 그리고 알싸한 막걸리 냄새를 잊을 수가 없다.
추수할 때는 어떤 한가.... 역시 온 동네 사람들이 서로서로 품앗이를 해가면 추수를 하곤 했었는데, 추수할 때는 모내기와 달리 내가 할 일이 다소 있었다. 떨어진 이삭 주워 장작불에 구워 먹기도 하고, 메뚜기를 잡아 구워 먹기도 했다.
우리 딸에게 엄마가 어렸을 때 메뚜기랑 개구리를 구워 먹었다고 이야기를 하면 눈이 휘둥그레지며 믿지 않는 눈치다. 밖에도 놀다 오면 손부터 씻으라고 난리고, 놀이터 흙을 보면 질색을 하면 청소기를 돌려대는 엄마이니 우리 아이가 내 말을 믿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가을 추수의 기억을 잊지 못하는 것은 자연이 주는 넉넉함의 기억 때문일 것이다. 쌓아놓은 볏단 위에 누워 쳐다보는 가을 하늘은 속이 확트일 만큼 깨끗했다. 유유히 흘러가는 뭉개 구름이라도 보고 있으면 잠이 스르르 오곤 했다. 물론 볏짚 사이에 가끔 메뚜기가 뛰어올라 단잠을 깨우곤 했지만 말이다.
햇살의 냄새를 아는가? 나는 햇살의 냄새를 안다. 바로 잘 익은 벼에서는 부드러운 햇살의 냄새가 난다.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넉넉한 햇살의 냄새가 난다. 나는 그 냄새를 좋아했다. 추수를 마치고 돌아오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게도 햇살의 냄새가 났다.
유년 이후 나는 햇살의 냄새를 잊고 살았다. 가끔 햇볕에 잘 말려진 이불에서 아련하게나마 햇살의 냄새를 추억하곤 했지만 말이다.
그러다 내가 다시 햇살 냄새를 추억하게 된 것은 아이를 키우면서부터이다.
놀이터에서 반나절 잘 놀다 들어온 아이의 정수리에서 햇살 냄새가 났다.
그랬구나... 내가 좋아했던 햇살의 냄새는 바로 햇살을 뜸뿍 받고 자란 생명의 냄새였던 것이다. 아무리 햇볕에 잘 말린 빨래가 아니라 햇볕을 듬뿍 받고 자란 벼처럼 햇볕을 뜸뿍 받고 신나게 뛰어놀던 우리 아이에게 햇볕의 넉넉함과 그 온기가 느껴지는 것이었다.
따로 욕실이 없었던 외할머니댁에서 할머니는 가마솥에 물을 데워 나를 씻겨 주셨다. 큰 대야에 찬물과 뜨거운 물을 적절하게 섞어 놓고 그 대야 안에 나를 앉혀 놓고 씻겨주셨다. 면 수건을 돌돌 말아 비누를 묻혀 싹싹 씻겨 주셨는데, 겨드랑이와 발바닥을 닦을 땐 자지러지게 웃곤 했었다. 물이 다 튀겨서 할머니 옷이 다 젖을 정도로 말이다. 처음에는 가만히 좀 있으라고 성을 내시던 할머니도 어느덧 나와 같이 웃으시며, 간지럼을 많이 타면 겁도 많다고 걱정을 하셨다. 간지럼과 겁이 많다는 것의 상관관계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간지럼을 많이 타는 나는 겁도 은근히 많다.
고향 집, 고향의 산, 들, 바다, 가족들..... 외할머니랑 누워 잘 때면 나는 항상 할머니가 해주시던 고향 이야기를 들으며 잠을 잘 수 있었다. 할머니 어렸을 때 뛰놀던 고향의 산천, 개구쟁이 소꿉친구들, 고향에서 해 먹던 음식 이야기, 외할머니네 동네 산에 산다던 호랑이 이야기, 유난히 방귀를 많이 뀌고 다녔다던 보다리 장수 아저씨 이야기... 그 어떤 전래동화보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우리 할머니는 정말 실감 나게 해 주셨다. 호랑이 이야기를 들으면 가끔 꿈에서도 호랑이를 만나곤 했지만 무섭다기보다는 오히려 친근감이 드는 호랑이었다.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할머니 품에서 나는 넉넉한 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는 아이로 자랐다.
아련한 그리움의 기억, 그리고 편안함의 기억, 자연이 주는 넉넉함의 기억... 어쩌면 유년시절 나는 그것이 주는 행복감을 잊고 싶지 않아 그곳의 냄새까지 놓치고 싶지 않았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