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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승희 Feb 12. 2017

어려움을 극복하는 방법

첫번째 스웨덴 정책 이야기


노벨 상의 나라, 눈의 나라 하지만 우리에게 복지국가로 더 잘 알려진 스웨덴.


스웨덴에 온지 어느덧 6개월이 넘어서고 있다.

그 동안 무슨 이야기를 할지 고민이 많았다.

하고 싶은 이야기들은 많았다.

이곳의 복지 시스템, 교육, 보육 정책, 노동시장 정책 등등

 

그런데 이상하게도 선뜻 이야기를 내 놓을 수가 없었다.

왜 그랬을까....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선뜻 내 놓을 수 없었던 이유는

나의 자괴감 때문이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잘 짜여진 이 나라의 정책이 부러웠다.

그리고 이 국가에 대한 부러움은 자연스럽게 왜 우리 나라에서는 이게 안될까라는 의문으로 이어졌다.

나의 고민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러던 중 한국에서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가 전해져 왔다.

현직 대통령과 대통령 측근의 비리 사건은 현재 우리 나라의 국가 운영 모습을 여실하게 보여 주었으며, 더 나아가 3년전 세월호에서 억울하게 죽은 우리 아이들에 대한 우리의 무책임한 모습을 다시 한번 각인 시켜주었다.

그런 우리의 모습을 보고, 선진 복지국가 모형을 예를 들며, 우리도 이렇게 해 보자고, 할 수 있다고 말할 자신이 없었다.


나는 나약하고 비겁한 사람이다. 

광화문 앞의 촛불 시위를 보며, 그들에게 박수와 응원을 보내면서

동시에 저러다 또 사그러들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도 숨길 수가 없다.  


정책을 통해 희망을 이야기 하고 싶어지만, 내 스스로가 그 희망에 대해 자신 할 수 없었다.

그런 내가 희망을 이야기 하는 글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거짓되고 비겁한 것인가?


그런데 내가 다시 글을 쓴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스웨덴에 와서 만난 친구가 있다.
올해 70세를 넘기신 요나손 할아버지이다. 사실 친구라 부르기에는 연세가 많으시다.  
70세를 넘기신 요나손 할아버지는 여전히 아침에 달리기로 하루를 여신다. 주머니에 항상 초콜렛을 넣어 다니시는 요나손 할아버지의 큰 자랑은  손자가 동네 야구단에서 선수로 뛰는 것이다.
요새 요나손 할아버지의 고민거리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손주에게 새로 사준 강아지가 도통 말을 안듣는 것(할아버지의 추측으로는 이 강아지가 이탈리아 개이기 때문이란다)과 새로 사귄 프랑스계 할머니가 데이트 할 때 전혀 돈을 안 내는 것이다.
그날도 요나손 할아버지와 나는 할아버지의 초콜렛을 사이좋게 나누어 먹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다 이야기의 주제가 요새 스웨덴 정치 이야기로 흘렀다.


잠시 스웨덴 정치 이야기를 하자면, 요새 스웨덴 정책의 가장 큰 이슈는 극우정당의 성장이다.

원래 극우정당은 정부 구성에 영향을 주지 못할 정도로 미약한 정당이었지만, 2016년 선거에서는 극우정당의 득표율이 높게 나왔다. 물론 여전히 작은 정당이긴 하지만, 우파가 내년 2018년 선거에서 이기고 정부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극우정당의 힘이 필요한 상황이다. 극우정당은 항상 반 이민 정책을 강하게 주장 해왔기 때문에 다른 정당들의 비판을 받는 정당이었으며, 심지어 우파 안에서도 비판을 받는 그런 존재였다.


하지만 이 정당의 득표율이 성장함에 따라 우파 안에서도 이 정당과 손을 잡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고, 우파 정당들 중 일부 정당들은 극우 정당과 손을 잡을 수 있음을 시사한 상태이다. 하지만 다른 우파 정당들은 극우정당과 손을 잡을 수 없다고 강하게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우파 안에 과연 어떠한 지형 변화가 있을지는 더 두고 볼 일이다.


아무튼 요새 우파 정당들간 극우파와 연합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이슈는 큰 파장을 불러 오고 있고, 이것은 현재 스웨덴에서 이민자와 난민에 대한 이들의 우려와 고민을 엿볼 수 있는 지점이다.


스웨덴은 인구 수 대비 가장 많은 난민을 받아들인 국가이다.

 이 수치는 독일보다 훨씬 높다. 독일보다 인구도 적고 영토도 작은 국가에서 상당히 많은 난민을 받아 들인 셈이다. 또한 난민에 대한 처우가 다른 유럽 국가들 보다 좋기 때문에 스웨덴으로 들어오고 싶어하는 난민들은 더욱 증가하고 있다.


난민을 받아들인 다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다. 더군다나 스웨덴으로 들어오는 난민들의 인구학적 통계를 보면, 초등 교육도 못마친 저학력 그리고 아동 있는 가족 단위의 난민들이 스웨덴에 많이 들어온다. 이것은 이들에 대한 주거, 의료, 교육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스웨덴 정부는 이들에 대한 주거와 교육에 대한 대대적인 지원을 하고 있는 상태이다. 현재 스웨덴 언어를 배워주는 시설인 SFI(Swedish for Immigrants) 어학원들은 시리아 난민들로 넘쳐나고 있는 상황이다.


난민을 받아들이는 것은 인도적인 측면을 떠나서 현실적인 여러가지 어려움에 직면해야 함을 의미한다.

스웨덴은 복지 수준이 상당히 지만, 이러한 복지 시스템을 난민이라고 해서 접근을 지한하지는 않는다. 이들이 지향하는 복지국가는 바로 평등하고 보편적인 복지국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바로 재정이다.

다들 알고 있겠지만 스웨덴은 여느 어느 나라보다 세금을 많이 낸다. 물론 현재 다수의 국민들은 이러한 높은 세금에 불만이 없다. 매년 하는 조사만 보더라도 세금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은 긍정적이고, 이 제도를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난민들처럼 이 사회에 기여 하지 않은 사람들에 대해서도 계속 이러한 복지 헤택을 준다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스웨덴 사회가 깊은 고민을 하고 있다.

그들이 만들어 온 보편적이고 평등한 사회가 누구에게 열려있는 것인가 아니면 스웨덴 사람만에게 적용되는 것인가.


다시 요나손 할아버지 이야기로 되돌아 가겠다.
정치 이야기를 하다 나는 문득 이민자 난민들에 대한 할아버지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특히 본인들이 내는 세금의 대부분이 난민들에게 쓰여질 수 있다는 우려가 들지는 않는지, 난민들이 복지사회라는 기차에 무임승차 하고 있다는 억울함이 들지 않는지 궁금해졌다.
솔직히 나라면 그럴거 같기도 했다.
" 요나손, 당신들은 이렇게 세금도 많이 내잖아요. 지금 받고 있는 연금에서도 세금이 꼬박꼬박 나가는데, 사회에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는 난민들에게 교육, 주거, 의료도 무료로 해주는 것이 억울하지 않나요?"
내 질문에 요나손 할아버지는 잠시 고민을 하셨다.
"맞아 지금 스웨덴에 들어오는 난민 문제는 힘들고 어려워 문제야.
하지만 그래서 우리가 세금을 내는 거야. 힘들고 어려운 사람을 도우라고 우리가 다 같이 세금을 내는 거야"
 요나손 할아버지의 대답에 나는 잠시 당황을 했었다. 세금을 그래서 내는 거라는 대답은 전혀 예상 외였기 때문이다.

당황한 나의 어깨를 요나손 할아버지는 가볍게 안아주셨다.


할아버지와 대화 이후에 나는 정책에 대한 나의 생각을 다시금 생각했다.

나는 정책을 통해 왜 희망을 이야기 하고자 했는가

정책 안에 희망이 있다는 나의 생각은 틀린 생각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나는 희망을 이야기 하기 전에

어려움과 그 어려움을 이겨내야 하는 의지에 대해 더 관심을 가졌어야 했다.  


우리에게 복지국가로 잘 알려진 스웨덴은 1940년대 까지 경제적으로 어려운 국가였다.

당시 많은 스웨덴 사람들이 생계를 위해 일거리를 찾아 미국으로 떠났으며, 극심한 배고픔으로 고통받는 아동의 수가 많아 영국의 구호까지 스웨덴이 받았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사실이다.

스웨덴은 영국과 프랑스 독일과 다르게 강대국이 아니었다. 인구수도 적고, 나라도 척박한 기후를 갖고 있다. 하지만 이제 스웨덴은 유럽 안에서도 복지국가의 대명사이며, 스웨덴 사람들은 이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우리는 현재의 스웨덴만을 생각하지만, 이들에게도 힘든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그 어려움을 이들은 극복했고 그 결과물이 바로 현재의 복지국가 스웨덴이다. 그들은 그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복지 정책을 사용 했다.


물론 복지국가가 되었다고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현재 스웨덴은 난민 문제로 고민이 많다. 하지만 대다수의 국민들은 여전히 난민에 대한 차별적인 대우를 원하지 않는다. 이유는 분명하다. 지금은 힘들지만, 이들은 이후에 스웨덴시민이 될 것이며, 이들과 이들의 자녀들이 이 사회에 기여를 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들에 대한 지원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세금을 내는 것이다.

국가가 어려운 사람을 도와 줘야 하며, 이것은 사회 모두의 책임이기 때문에.


나는 다시 이야기를 시작하기로 했다.

물론 나는 여전히 나약하고 고민이 많다.


하지만, 나는 안다.

정책은 자체만으로 희망이 될 수 없다.

정책만 있다고 희망을 이야기 할 수 없다.


정책이 희망이 되려면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할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을 때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려움을 극복 하지 못하는 정책은 희망이 될 수 없다.


나는 다시 이야기를 시작하기로 했다.

다시 나는 정책 이야기를 할 것이다.

그리고 정책을 통해 희망을 이야기 할 것이다. 정책을 통해 희망을 이야기 하는 것은 어려움을 현명하게 극복하고자 하는 것이며, 나눔을 이야기 하는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 사회는 여러 힘든 상황에 직면해 있다.

하지만 이 어려움 안에 희망도 동시에 존재한다고 나는 믿는다.

우리가 희망을 이야기 하고 싶다면, 현재의 어려움을 이겨 낼 수 있어야 한다.

시간이 흘러서 저절로 해결되는 어려움은 없다.

그냥 그것은 잊혀지는 것이고, 고통에 무뎌지는 것이다.


정책이 보여주는 희망의 메세지는 바로 현재의 어려움을 우리가 극복할 수 있다는 의지에서 나온다.


이 어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을 나는 스웨덴 여기서 찾아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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