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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승희 Feb 14. 2017

기본에 충실하기

스웨덴 정책 이야기 둘, 정책의 기본은 무엇인가?

스웨덴에 살고 있는 나에게 지인들은 종종 스웨덴에 살면 무엇이 가장 좋냐고 묻곤한다.

아마도 유럽에 산다고 하면 고풍스럽고 여유로운 그런 풍경을 떠올리는 거 같다.

중세 건물들을 배경으로 야외 커피숍에서 여유롭게 커피 한잔을 하고 있는 모습을 상상할지 모른다.

(솔직히 이건 내가 이전에 했던 상상들이다.)

물론 내가 살고 있는 스톡홀름 시내는 중세 건물들이 많다.

우리 동네에도  18세기 19세기에 지어진 건물들이 많다. 그리고 그곳에 사람들이 살고 있다.

1960년대 지어진 우리 아파트는 우리 동네에서 상당히 신식(?) 아파트에 속한다.

물론 스톡홀름 외곽으로 나가면 근래에 지어진 아파트들도 많다.

여하튼 한국에 있는 지인들은 자주 나에게 이곳에 살면서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 물어본다.

이러한 질문에 나는 망설임 없이 이렇게 대답한다.


 공기와 물이 가장 좋아!!


하지만 나의 이러한 대답에 지인들은 못 믿거나 실망하는 눈치다.

' 뭐? 그 좋은 스웨덴에 살면서 고작 물과 공기가 좋다고?' 

상대방의 실망을 뒤늦게 눈치챈 나는 서둘러 우리 동네에 즐비한 오래된 건물 이야기도 하고, 

저렴한 비행기표를 구해 다녔왔던 유럽 여행 이야기를 한다. 

그러면 다들 '우와 좋겠다, 역시 유럽은 다르구나' 하고 맞장구를 쳐준다.

맞다. 스웨덴에 살면 좋은 점들이 참 많다. 무엇보다 가까운 유럽 여러 나라들을 저렴하게 여행 다닐 수 있다는 것은 여기 살면서 누릴 수 있는 호사면 호사이다. 


하지만 정말 나는 여기 살면서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것은 "공기와 물"이다. 


여기 하늘은 참 맑고 높다. 그리고 나처럼 시력이 나쁜 사람도 저 멀리 지평선을 볼 수 있다.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면, 상쾌한 공기가 내 몸에 생기를 불어 넣어주는 것 같다.

물 맛은 또 얼마나 좋은가!

한국에서 수돗물을 끓여 먹었는데, 주변에서 수돗물을 끓여 먹는 집은 그리 많지 않았다.

주로 다들 정수기를 놓고 정수된 물을 먹거나 아니면 생수를 사다 먹는 집이 대다수였다.

보리차를 좋아하는 나는 주로 주전자에 보리를 넣고 끓여 먹었다.

하지만 여름에는 이것도 귀찮아 생수를 사다 먹곤 했다.

생수통을 매주 재활용 쓰레기장에 버리는 것도 일이라면 일이었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냥 수돗물을 마신다.유럽이라고 다 수돗물을 그냥 마시지는 않는다.

유럽은 다 수돗물을 그냥 마시는지 알았는데 여행을 다녀보니 그렇지 않는 국가들도 많았다.

아무튼 여기 물맛은 참 좋다.



여기 사람들에게 스웨덴 공기와 물맛이 참 좋다고 하면 대수롭지 않게 웃는다.

'무슨 공기와 물맛에 저렇게 감동을 받나' 하며 의아해 할지도 모른다.

하긴 여기 사람들은 이렇게 살아왔고, 여름이 되면 주변의 호수와 강에서 아이들이 모여 수영을 하고 그러니까 말이다.


하지만 미세 먼지로 창문을 열지도 못하고, 미세 먼지 마스크를 착용하고, 마트에서 세일하는 생수통을 낑낑대며 사오던 나에게 여기의 물과 공기는 선물이다.



공기와 물은 우리가 사는데 기본이다.

정책에도 기본이 있다.


스웨덴은 집권 정당 혹은 의회에서도 마음대로 바꾸지 못하는 것이 있다.

바로 연금, 국방, 에너지이다.

이 세 영역에 대한 정책을 도입하거나 기존의 방향을 수정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국민 투표를 거쳐야만 한다.

절대로 집권 여당 단독 혹은 의회에서 결정을 내릴 수 없는 사안이다.


그렇다면 왜 꼭 이 세 영역에만 이렇게 국민투표의 단서를 달았을까?

이 세 영역이 아주 중요하다고 판단해서이다.

물론 국가 운영에 있어 어느 하나 소홀히 다룰 수 있는 영역은 없다.

하지만 스웨덴 사람들은 이 세 영역은 국가의 미래와 직결된 것으로 보았다.


연금은 현재 국민들의 노후 안정, 국방은 국가의 안보와 안전 그리고 에너지는 환경과 직결된 것으로 이 세 영역은 모두 미래와 직결된 정책 영역이다.


어찌 보면 국가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대한 문제이기 때문에 정치인들은 이 분야에 대해서는 장기간 토론과 논의를 거치며, 결국에는 모아진 대안을 갖고 국민투표를 하는 것이다.


무엇이든 급하고 빠르게 진행되는 것을 원하는 우리에게는 속터지는 광경이 연출될 수도 있다.

무슨 토론을 저렇게 오래하나, 무슨 논의 과정이 이렇게 기나(몇년에 걸쳐 하는 논의도 많다.)하면서 불평등 할지 모르겠다. 지만 이들은 그렇게 해왔고 그렇게 하고 있다.

물론 스웨덴 사람들 중 나처럼 성미가 급한 사람은 속터진다고 이야기도 한다.

하지만 다들 중요한 사안에 섣불리 결정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특히 이 세 영역은 국가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더더욱 신중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연금 , 국방, 에너지는 상당히 중요한 국가 정책이다.

그리고 이 중요한 정책 분야를 국민 투표로 결정한다는 것은 여러 의미가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국가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신중하고자 하는 의미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런 중대한 사안이 정쟁에 휘말리게 하는 것을 막겠다는 의지도 포함된다.

즉, 집권 정당의 단독으로 혹은 정치적 논리에 의한 정쟁의 결과로 중요한 정책을 좌지우지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또한 이것은 나라의 중대사안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선택이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국민의 선택'

상당히 민주적인 말처럼 들린다. 맞는 말이다.

이것은 국가의 중대사안에 대한 국민들의 알 권리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말은 동시에 국민으로써 올바른 선택을 해야하는 의무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렇다.

연금, 국방, 에너지는 중요한 정책 영역이면서 동시에 복잡한 정책 영역이기도 하다.

이러한 분야를 국민들에게 공개하고 결정하겠다는 말은 국민들이 이 정책 영역에 대해 잘 이해하고 본인들의 생각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말 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안그러겠는가?

현재 우리 나라 국민연금의 운영방식과 연기금 운용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는가?

국방 문제에도 큰 이슈가 터지기 전에 우리는 과연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는가? 더욱이 우리나라는 휴전 중인 분단 국가 아닌가? 마지막으로 우리는 원자력 에너지에 대한 생각과 혹은 그것을 대체할 수 있는 신재생 에너지에 대해 얼마나 고민하고 알고 있는가?


스웨덴의 정책 결정 과정은 상당한 논의 과정과 토론 그리고 정당 간 타협의 과정이라 일컫는다.

하지만 스웨덴 정책 결정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바로 '국민'이다.


스웨덴은 국가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정책을 '국민의 선택'에 맞긴다.

국민이 바로 정책의 방향을 결정짓는 미래이자 기본이기 때문이다.

국민이 바로 정치의 혹은 정책의 기본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는 기본에 충실한가?




나는 스웨덴 공기와 물이 참 좋다.

오늘도 일어나자 마자 창문을 활짝 열고 크게 공기를 들어마신 뒤,

수돗물을 콸콸 틀고 물을 한잔 들이켰다.


나는 공기와 물이 우리 삶의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우리 나라가 기본에 충실한 나라가 되기를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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