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에서는 병원 가는 것이 즐겁다.
여기 있는 동안 절대 병원에 가지 않으리라 생각을 했었다.
스웨덴 의료제도가 국가가 전액 보조해주는 제도(물론 개인 부담금이 있지만, 상한선이 정해져있음)라고는 하지만, 여기와서 만난 한국인들에게 스웨덴 병원에 대한 불만을 너무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알기로 스웨덴 의료제도는 OECD 국가들 중 의료 서비스의 정책의 만족도가 높은 국가였다.
특히, 1차 진료와 전문 진료간의 분담도 철저하기 때문에 진료에 대한 만족도가 높은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집에서 톱질을 하다 그만 손가락을 베어, 달랑달랑 거리는 손가락을 들고 정신 없이 응급실에 갔지만 진료를 기다리다 약간 삐뚤어진 채 손가락이 붙어 버리고 말았다던 이야기부터 응급실에 가서도 번호표를 들고 순서를 기다려야 한다는 이야기, 장염이나 홍역에 걸리면 전염성 질병이기 때문에 절대 병원에 오지 못하게 한다는 이야기 등 정말 한국 병원과 달라도 너무 다른 여기 병원의 이야기는 거의 괴담 수준에 가까웠다.
실제, 아는 언니네 아이가 내리막길에서 넘어져 턱이 찢어진 일이 있었다. 저녁때 쯤 응급실에 간 언니는 다음날 아침 7시가 다 되어서 병원에서 나올 수 있었다. 그런데 더 기가막힌 사실은 병원에서 아이에게 해준 처방이라고는 찢어진 부위를 소독하고 밴드(일반 약국에서 흔히 살 수 있는)하나만 떡 하니 붙여 줬다는 것이다.
고작 이 밴드 하나 붙이려고 꼬박 하루 밤을 우는 아이 달래며, 병원에서 지샜워나 생각하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
뭐지, 스웨덴 의료 모델을 치켜 세우기에는 뭐가 미심쩍은 부분이 있었다.
스웨덴와서 집을 구하고 주소를 등록하자, 아이 치과 검진 통지서가 날라 왔다.
(스웨덴에서 치과는 일반 의료 제도에 포함되어 있지 않지만, 19세 미만에게는 치과 진료가 무료이다 )
병원도 바로 집 앞이기도 하고 당시 아이의 이 하나가 흔들리기도 해서, 가는 김에 흔들리는 이도 좀 빼야겠다는 심산으로 병원에 갔다.
엑스레이도 찍어주고, 아주 꼼꼼하게 아이 이를 살펴보면서 의사는 이 관리가 잘되고 있다고 칭찬을 해줬다.
그리고 '흠...이가 하나가 흔들리는구나' 하고 아이를 바라 보는 것이 아닌가. 옳거니 그럼 저 이를 빼주겠구나 하고 내심 생각하고 있는데, 아이에게 한다는 말이 " 당근을 많이 먹어야 겠네~" 였다.
처음에는 의사분이 농담을 하는 거라고 생각 했다.
그래서 웃으며, 이를 오늘 뺄 수 있는지 물어봤다.
그랬더니 의사는 다시 웃으며, 당근을 많이 먹으란다.
'뭐? 당근? 딱딱한 당근을 먹다 이를 빼라는 거야?'
의사의 표정을 보니, 농담이 아니라 진담인 거 같았다.
물론 당황하기는 아이도 마찬가지였다. 이를 뺄 수 있다고 긴장하며 병원에 갔는데, 당근을 먹으라고 하니 내심 좋기도 하지만, 이런 의사를 처음 만나보니 아이도 어리둥절한 모양이다.
" 엄마, 저 선생님이 지금 나보고 당근 먹으라고 한거 맞죠?"
병원을 나서면서 아이가 재차 확인을 한다.
치과 의사한테 이를 빼러 갔더니 당근을 먹으라는 처방이나 하고 말이야!!
친절하고 웃기는 잘하지만, 뭔가 석연찮았다.
절대 여기 병원을 가면 안되겠군. 나는 다시 한번 다짐을 했다.
나 같은 환자가 여기 있었다면, 진작 죽었겠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2013년 머리 수술을 했었다.
당시 나의 상황은 절망스러웠고, 위급했다.
하지만 이틀에 걸친 큰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나는 이렇게 잘 살고 있다.
만약 내가 이런 곳에서 아팠다면, 십중팔구는 죽었겠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여기가 다 좋아도, 병원들이 이 모양이니 여기서 살라고 해도 나는 못살겠다고 남편에게 이야기를 했다. 물론 누가 나 보고 여기 살라는 사람도 없었지만, 그 정도로 스웨덴 병원과 의료 시스템에 불신감이 생겼다.
물론 걸핏하면, 작은 질병과 감기 증상에도 병원을 찾는 것도 문제지만, 응급해서 응급실에 간 사람들에게도
'줄을 서시오~'하는 것은 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매일 복용해야 하는 약이 점점 떨어져가고 있다는 것이 었다.
본인이 아니면 약 처방이 어렵기 때문에 약 처방을 받기 위해 한국을 다녀 와야 하는 상황이었다.
약도 물론 중요하지만, 약 때문에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다녀와야 한다는 것은 여러모로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점점 약이 떨어져가고 있을 무렵,
바박 아저씨를 만났다.
'요새 잘 지내고 있어'라고 안부를 묻는 아저씨에게 나는 내 고민을 털어 놓았다. 그냥 지나치며, 인사나 건넸던 아저씨는 졸지에 나에게 발목이 잡힌 꼴이 되었다.
내 고민을 듣던 아저씨는 뭐가 문제가 되냐며, 병원에 가서 약 처방을 받으라고 했다.
그러면서 나의 지정 병원을 물어봤다.
스웨덴은 병원(담당 의사) 지정을 당사자 본인이 할 수있는데, 가족 전체가 한 의사에게 진료를 받아도 되고, 따로 의사를 정해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물론 내 진료를 해주는 의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도중에 다시 바꿀 수도 있다.
스웨덴 온지 얼마 되지 않아 집으로 병원을 지정하라는 통지서가 날아왔고, 그 통지서 안에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병원들의 목록이 있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동네 병원 중 하나를 선택한 상태였다. 물론 선택만 하고 단 한번도 그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은 적은 없었다.
**스웨덴에서 일반 진료는 가정의 ( 주치의 , 산부인과 외래 정신 건강 등),구급 의료,선정 의료, 입원 의료,외래 의료, 전문 의료,치과의의 7 가지로 분류 되고 있고, 1차 진료의의 90 %는 공공 의사(국가에서 운영하는 의료기관)가 제공하고 있다. 대부분의 스웨덴 의료시설은 국가에 의해 운영되고 있는 공공 시설이다. 물론 민간 시설도 소수 존재한다.
바박 아저씨는 나에게 다른 병원을 추천해 주셨다.
그래도 여기에서 30여년을 넘게 산 아저씨의 말을 듣는 것이 낫겠다 싶어 당장 병원 홈페이지에 들어가 지정 병원을 변경 했다. 그리고 별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아저씨 말대로 병원 예약을 했다. 내 예약이 성립 되었다는 메일이 왔고, 예약 날짜에 나는 병원에 갔다.
집에서 걸어서 한 10분쯤 거리에 병원이 있었다. 'To care' 내가 예약한 병원이다.
병원은 작았지만, 안락하고 깔끔했다. 예약 시간보다 한 20분 먼저 도착한 나는 병원 입구 리셉션에서 예약 확인을 했다. 병원 직원처럼 보인는 두 명의 여성은 병원 유니폼이 아닌 사복을 입고 있었다. 물론 본인 명찰은 차고 있었다. 내 이름을 확인하고는 한 분이 나와 남편을 대기하는 곳으로 안내했다.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란다.
그렇게 기다리고 있으니, 회색 트레이닝 복에 운동화를 신은 키가 훤칠한 한 여성분이 내 이름을 부른다.
우선 옷차림새에 이 사람이 간호사인지 누구인지 알 수가 없어 당황을 했었다. 간호사인가? 직원인가?
어리둥절하며, 일어나니 그 여성 분이 성큼성큼 나에게 다가온다.
본인 이름을 소개하며, 간단한 인사를 건넨다.
"다리아 에릭슨"
웃음마저 시원 시원한 이 여성은 나의 주치의다.
다리아의 진료실은 아늑하고 좋은 향기가 났다.
소독약 냄새로 기억되는 그리고 항상 북적이고 비좁던 한국의 진료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나에 대한 기본 정보를 본인이 직접 입력하고, 왜 내가 왔는지 물어보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2013년 어떠한 수술을 했고, 그 후 계속 약을 복용하는 상황에 대해 설명을 했다.
나의 이야기에 다리아는 경청을 해 주었다. '아주 큰 수술을 했구나', '너는 엄청난 행운아'다 이런 말들을 하며, 그녀는 정말 내 말을 귀담아 들어줬다.
순간 나는 내가 그토록 오래 병원을 다녔지만, 이렇게 내 이야기를 들어 준 의사가 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내가 찾아 간 의사들은 시간에 쫒기고 있었다. 나를 수술해 주신 의사 선생님은 빽빽한 진료 스케줄로 인해 점심 조차 거르며 진료를 하고 계셨다.
하지만 다리아는 내가 만나 왔던 의사들과 전혀 달랐다. 그날 나는 내 약을 다 처방 받았다(그것도 1년치를 받았다. 물론 약은 내가 필요한 때, 주변 가까운 약국에서 언제든 사올 수 있다).
**처방약은 역시 환자의 연간 본인 부담 상한액이 정해져 있어 초과분은 국가에서 부담을 한다. 약국은 모두 병원과 네트워크에 연결되어 있으며, 스웨덴 어느 약국에서도 처방을 받을 수 있다. 처방 데이터가 약국 정보 네트워크로 전송되기 때문에 전자 약력을 참조하고 필요한 약만 처방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비되어 있다.
그리고 간다한 피 검사와 일반적인 검사를 받았다. 그리고 다리아는 내가 한국에서 가지고 온 내 진단서를 보고, 내가 이제 곧 MRI를 찍어야 한다는 사실도 놓치지 않았다. 솔직히 나는 약 처방을 받았다는 것만으로도 대만족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에게 MRI 검사 예약을 잡아 주겠다고 하는게 아닌가?
MRI는 상당히 부담이 되는 검진이었다. 한국에서 수술 전후로 MRI를 찍었고, 수술 후 1년 후에도 경과를 보기 위해 찍었었다. 필수적인 검사이므로 MRI를 찍기는 했지만, 그 비용이 비싸기 때문에 적잖게 부담이 되었다. 검사 비용을 내면서 이렇게 평생을 어떻게 지내나 그런 생각에 우울해지기도 했었다. 그런데 그런 MRI 검진을 여기서 받으란다. 고작 200kr를 내고 말이다.
** 보통 스웨덴에서 의료비의 본인 부담 상한액이 설정되어 있으며, 외래 진료는 연간 900 크로네 , 입원은 하루 80 크로네, 약제비는 연간 1800 크로네 전후이다. 물론 치과 진료를 포함한 모든 병원 진료에서 19 세 미만의 어린이는 무료 이다.(현재 1크로네=135원 정도이다)
물론 우리나라 건강 보험에도 의료비 상한제가 있다. 하지만 그 상한선의 기준이 스웨덴 보다 훨씬 높다. 하지만 무엇보다 더 큰 문제는 건강보험에 포함되지 않는 비급여 부분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MRI 역시 비급여 항목으로 환자가 100% 자분담으로 검진료를 내야 했다. 내가 처방 받은 약 중에도 비급여인 약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약 값 역시 만만치 않았다.
MRI 예약을 잡고, 우리나라로 치면, 영상의학과만 있는 병원으로 가서 MRI를 찍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고, 다리아에게 편지 한 통이 날아 왔다.
내가 찍은 MRI 결과(스웨덴어로 적혀 있었다)와 이 것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위해 나를 카롤린스카 대학 병원 신경외과 의사와 상담 날짜를 잡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며칠 후 카롤린스카 대학 병원의 피터라는 의사로 부터, 나의 진료 날짜와 그 날 진료비(350kr, 종합 대학 병원이기 때문에 진료비가 높았다)그리고 어떻게 병원에 오는지에 대한 안내가 상세히 적혀있는 메일이 도착했다.
무엇보다 그날 한국인 통역사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라는 내용도 적혀 있었다. 안 그래도 언어 때문에 나는 내심 걱정을 하고 있었다. 주변에 수소문이라도 해서 스웨덴어 잘 하시는 한국 분을 구해야 하나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병원 측에서 한국인 통역사를 준비하겠다고 연락이 온 것이다.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예약 날, 나는 카롤린스카 병원에 갔다. 리셉션에서 진료비(350KR)를 내고, 로비에 앉아 내 차례를 기다리고 있으니, 피터가 내 이름을 불렀다. 서글서글한 눈매가 인상적인 피터는 나를 만나는 내내 익살스러운 농담을 하며, 나를 편안하게 해주었다(물론 가끔 나는 피터가 던진 농담을 이해할 수 없어서, 예의상 웃기도 했다).
피터 역시 다리아와 마찬가지로 나에게 간단하게 본인 소개를 했다. 아마도 여기 스웨덴 의사들은 직접 환자들을 이렇게 마중 나오고 자신의 진료실로 안내하면서 본인의 소개를 간단히 하는 듯 했다.
긴 복도에는 여러 진료실들이 늘어져 있었다. 14번 진료실이 자신의 방이라고 문을 열어 주면서, 피터는 자기는 14번이라는 숫자를 좋아한다고 이야기 했다.
나도 14번이 좋다고 했다. 우리 딸의 생일이 9월 14일이라서.
내가 자리에 앉자, 피터는 간단하게 몇 가지 질문을 한 뒤, 통역사를 불렀다.
한 중년 여성 분이 들어 오셨다. 통역을 하시는 분은 나에게 간단한 본인 소개와 본인의 통역은 어느 쪽도 아닌 중립을 지키며, 환자에 대한 비밀과 통역 내용에 대한 비밀 엄수에 대한 본인 행동 규칙을 이야기 해 주셨다.
통역 해주시는 분이 있으니, 내 마음도 한결 편해졌다.
여러가지 이야기를 피터와 나누고 그렇게 시간은 30여분을 훌쩍 넘었다.
피터는 내년 초 내 몸에 흐르는 전체적인 혈류량에 대한 것을 검사하자고 제안을 했고, 왜 그러한 검사가 필요한지 이야기를 해주었다. 우리는 다음 예약에 대해 이야기를 했고, 나는 진료실을 나왔다. 물론 피터는 진료실 밖까지 배웅을 나오며, 올 겨울은 여느 해보다 따뜻 할거 같다며, 트럼프에게 감사 해야겠다고 농담까지 했다.
나는 큰 병에 걸렸고, 수술 끝에 살았났다. 그리고 나는 평생 약을 먹어야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나는 나의 수술 부위에 대해, 그리고 내가 먹고 있는 이 약들이 내 몸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현재 나의 상황과 앞으로 남은 나의 삶 동안 내가 어떠한 관리를 받아야 하는지 전혀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내가 아팠을 당시, 나는 여러 병원에서 치료하기를 거부 당한 환자였고, 나를 받아 준다는 병원만 있었도 그저 황송해야 하는 처지였다. 감사하게도 좋은 의사 선생님을 만나 수술을 받고 이렇게 건강하게 살고 있지만, 나는 앞으로 내가 어떻게 관리를 받아야 할지 잘 몰랐다. 그저 5개월에 한번씩 약을 처방 받기 위해 5시간 넘게 차를 타고 병원에 가서 단 10여분 의사를 만나고 오는게 전부였다.
그런데, 여기 스웨덴에서 나는 나의 정확한 상태와 내 약에 대해 그리고 앞으로 나에 대한 관리 계획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피터가 그랬다.
'앞으로 너의 남은 생애 동안 너의 건강은 국가에서 책임지고 관리해 줄 거니 걱정말라'고.
아마도 피터는 내가 여기 잠시 들렀다 떠나야 하는 사람인지 몰랐을 것이다.
나는 새삼, 나처럼 잠시 머무는 외국인에게도 보편적인 의료 혜택을 주는 스웨덴의 의료 서비스 정책이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암에 걸려 죽었을 본인의 어머니가 스웨덴에 와서 살았다는 한 이민자 친구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스웨덴 의료 제도는 정말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는 위급한 환자와 중증 질환자만 관리를 한다고 이야기 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감기나 장염 혹은 골절 등과 같이 일상 생활에서 자주 발생할 수 있는 질병에는 별 치료가 없다고 이야기 한다.
맞다. 흔들리는 이를 보고 당근을 많이 먹으라고 처방한 치과 의사처럼 말이다.
하지만, 내가 겪은 스웨덴은 나 같은 중증 질환자에게는 정말 고마운 국가다.
그리고 내가 만난 스웨덴 의사들은 친절했고, 신뢰 할 수 있었다. 말도 잘 안통하는 그들에게 나는 신뢰감을 느낄 수 있었다. 정말 그들이 내 말에 경청하며, 나에게 내 상태에 대해 최선을 다해 설명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나의 몸을 맡겨야 하는 상황에서 만약 환자가 의사를 믿을 수 없다면, 그 두려움은 상상을 초월한다.
극심한 고통 안에 있으면서, 내 몸에 뭔가 큰 이상이 있다는 것은 알지만, 도대체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 알 수 없다면, 그리고 그 누구도 자세한 설명을 해주지 않는다면, 환자는 신체적 아픔을 더 넘어 극심한 불안을 느낀다.
그것을 나는 경험 했다.
그 막막함을....그 외로움을....말이다.
심지어 내가 아픈 부위는 나의 질병과 연관이 없다고 내 앞에서 내 말을 비웃었던 의사도 있었다.
나는 내 오른쪽 눈을 도려내고 싶을 정도로 아픈데, 의사들은 내 머리의 이상과 내 오른쪽 눈의 통증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나의 의견을 묵살 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나는 분명히 너무 아팠다.
수술을 통해 내 눈의 통증은 내 머리속 혈관 중 하나의 이상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우리나라 의료보험제도는 상당히 높은 수준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의료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진료 서비스 질의 수준 역시 높다고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값 비싼 최첨단 장비로 온갖 검사를 하는 것만이 진료의 전부가 아니다.
내가 스웨덴 병원을 통해 내가 느낀 것은 환자의 본인 부담금이 낮아서, 중증 질환자라해도 그리고 평생 병원의 관리를 받아야 하는 환자들 역시 부담 없이 삶을 유지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문재인 정부가 그 동안 건강보험의 혜택에서 제외 되었던 약과 MRI와 같은 검사들이 2022년까지 단계적으로 건강보험으로 적용 시킬 거라 발표했다는 것이다. 그 동안 보험에 적용 되지 않았던 비급여 부분으로 본인 부담률이 높았던 많은 환자들의 부담이 경감 될거라 예상 된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본인 부담금 역시 낮아져야 한다.
제도의 개선과 더불어 의료 서비스 질에 대한 개선도 필요하다.
우리는 우리의 몸에 대한 전문가의 조언과 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에 가는 것이다.
그들의 말을 귀담아 듣는 것은 그들이 인격적으로 훌륭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이 분야에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전문가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의 의견을 존중한다. 단지 그 이유 뿐이다.
나의 사연에 내 손을 잡아 줬던 다리아, 앞으로 내가 평생 병원의 관리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솔직히 이야기 해주며, 국가가 너의 평생을 지켜줄 테니 걱정말라고 했던 장난기 많았던 피터, 그들도 의사이지만, 나는 한국에서 이들과 같은 의사를 만나본 적이 없다.
그리고 인상적이었던 또 하나의 사실은 스웨덴 의료 진료 시스템이었다.
처음 진료를 예약한 것은 내 자신이지만, 나의 질병이 중증이라고 판단 되는 그 순간, 스웨덴 의료 시스템은 아주 체계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1차 진료 기관에서 검사를 의뢰하고, 검사 결과 질병이 확인 되는 순간, 치료에 적합한 병원으로 바로 연결을 시켜 주었다. 환자가 알아서 병원을 알아보고 하는 일은 없었다. 나는 그저 이들이 제공하는 정보에 따라 움직이기만 하면 되었다.
현대의 사회가 아무리 정보가 넘쳐나고,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다고 해도, 본인의 질병과 치료에 대한 정보를 환자는 쉽게 얻지도 선택할 수도 없다. 그래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다.
스웨덴의 의료 시스템은 나의 질병과 치료에 대해 내가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전문가의 선택과 조언에 따라 가는 시스템이었다. 물론 이러한 시스템을 두고 환자의 자기 결정권을 무시한 것이라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환자의 자기 결정권과 정보의 올바른 선택은 전문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한 정확한 정보가 공정하게 환자 자신에게 주어 줬을 때만 가능하다. 즉, 정확하고 공정한 정보를 바탕으로 환자가 여러 기관을 비교 가능할 때만 가능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의료와 같이 전문적인 영역에서 치료 방법과 병원의 선택은 일반 환자(소비자)가 결정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작정 큰 병원, 대학 병원, 종합 병원을 가려고 하는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처럼 공공기관과 민간 의료 기관이 공존하는 의료시장 안에서 소비자들은 자신들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정보를 선택 할 개연성이 높다. 이 말은 의료서비스 선택에서 (경제적) 계층 간 격차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스웨덴의 1차 진료 시스템에 만족하고 있다. 무작정 큰 병원 가기 전에, 나의 질병에 대해 상담을 하고 향후 병원의 선택에 도움을 줄 주치의가 우리에게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들었던 스웨덴 응급실 괴담은 아마도 사실일 것이다.
물론 약간의 과장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 역시 스웨덴 의료 서비스의 한 단면임에는 확실하다.
하지만 내가 겪은 스웨덴 의료 서비스 이야기 역시 사실이다.
아픈 환자들의 말에 경청하며, 신뢰를 주는 의사들 이야기 역시 사실이며,
진료 예약부터 약 처방까지 효율적인 시스템 안에서 운영되는 진료 시스템 이야기 역시 사실이다.
그리고 치료에 대한 모든 것은 국가가 책임 질 테니 걱정말라는 국가의 존재도 사실이다.
나는 스웨덴 의료 서비스를 믿는다.
그리고, 여기 있는 동안 나는 병원을 즐겁게 다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