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byrån은 스웨덴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편의점이다. 우리 나라 편의점처럼 다양한 음식을 팔지는 않지만, 여기서 아침에 파는 커피와 빵은 저렴할 뿐 아니라 맛있다. 무엇보다 갓 나온 빵과 갓 내린 커피 냄새가 솔솔 풍겨 나오는 Pressbyrån 앞을 나는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아침을 든든히 먹고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나의 손에는 시나몬 빵과 커피가 들려 있다.
Pressbyrån 맞은 편에는 Åsö vuxengymnasium이 있다. 5월 부터 내가 다니는 곳이다. 여기는 우리로 치자면 성인들을 위한 교육기관 즉, 평생 교육기관이다.
현재 나는 성인들을 위한 고등 교육기관인 Åsö vuxengymnasium 에서 영어 수업을 받고 있다. 더욱이 이번 주제는 문학이고, 우리 조가 선택한 주제는 스웨덴 여성들의 작품(Swedish Women's Writing)이다. 내가 문학에 소질이 있다거나 문학을 공부하고 싶어서 이 수업을 등록한 것은 아니다. 문학 방면으로는 문외한인 내가 이 수업을 등록한 이유는 이민자들을 위한 스웨덴 교육 시스템이 궁금해서 였다.
원래 처음에 내가 찾아 다닌 곳은 스웨덴에 온 이민자들은 의 위한 스웨덴어 교육기관인 SFI(Swedish for Immigrants)였다. 스웨덴은 이민온 사람들과 일정 기간의 비자를 소지한 모든 사람들에게 스웨덴어를 무료로 배워준다. SFI 교육 과정은 상당히 유명하고, 이민자들이 언어적 어려움을 해결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는 교육기관이다. 나 역시 SFI 기관을 방문도 하고 등록해서 단기간이지는 하지만 교육도 받아 보았다. 하지만 나는 이 이후 과정에도 궁금했다. SFI에서 제공하는 모든 교육과정은 빠르면 1년 늦어도 3년 안에 수료 할 수 있다. 그렇다면 SFI 수료하고 난 이후 이민자들은 어떤 교육을 받게 되는 것일까? 물론 대부분의 이민자들은 스웨덴어가 잘 되면 취직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실제 SFI(Swedish for Immigrants)는 교육과정을 마친 학생들을 대상으로 취업을 알선해 주기도 한다. 이 교육과정을 마친 학생이 취업을 하는 경우 정부 보조금도 제공이 된다. 하지만 SFI에 다니는 대부분의 이민자들은 주로 시리아에서 온 전쟁 난민이었다. 이들은 이렇다할 기술도 없고 교육수준도 낮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10대 후반이나 20대 초반도 상당히 많았다. 이들이 단순히 언어만 배운다고 노동시장에 수월하게 진입 할 수는 없다. 물론 언어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교육수준이 낮고 기술도 없는 이들이 진입하는 노동시장은 여기가 아무리 스웨덴이라도 해도 저임금 일자리이거나 파트타임 일자리일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SFI에서 언어를 익힌 젊은 이민자들은 주로 음식점이나 호텔과 같은 서비스 직종으로 취업이 되고 있었다.
물론 스웨덴에서 제공하는 무료 언어 교육은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 보기 힘든 제도이다. 북유럽 다른 국가에도 이렇게 보편적으로 이민자들에게 언어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국가는 없다.
하지만 아무런 경제적 기반도 없고, 전문적 기술도 없는 전쟁 난민들에게 언어는 시작일 뿐이고 기본일 뿐이다. 나는 그 이후 교육 과정이 궁금해졌다. 유난히 스웨덴에 들어오는 전쟁난민은 10대가 많은데 이들은 아직 한창 교육을 받아야 하는 나이이기도 하다. 물론 학령기 아이들은 스웨덴 학교로 들어간다. 하지만 이미 중고등학교 다닐 나이가 아닌 십대 후반이나 20대 초반 젊은이들은 이대로 스웨덴 노동 시장에 진출을 할 수 있을까?
SFI과정 이후 취업을 하기도 하지만 기술을 배우고 싶거나 대학교에 진학을 하고 싶을 때는 어떻게 될까?
스웨덴은 모든 시민들에게 대학교(원)까지 무료 교육을 제공한다. 지금 내가 커피와 빵을 들고 들어서는 이곳 (성인 교육기관)역시 무료다. 한번 체험을 해보자라는 마음에 마음에 온라인으로 등록을 했는데, 운 좋게 집 근처로 배정을 받게 되었다. 바로 도연이 학교 근처라서 아이와 같이 등하교 하기에도 딱 좋은 장소였다. 여하튼 수업이 있는 날은 이렇게 아침 일찍 학교에 나와서 편의점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나의 낙이다. 여기는 일반 고등학교와 성인 교육기관이 같이 있는 곳이라 성인 교육 체계도 체험할 수 있지만, 이 곳의 고등학교 학생들 생활도 살펴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일반 고등학교 말고 성인 교육기관은 이민자들이나 난민들 그리고 여러가지 이유로 고등 교육을 받지 못한 친구들이 다시 정규 수업을 받는 곳이다. 여기서 고등 학교 과정을 마치면 바로 직업 교육을 받고 바로 취업 전선에 뛰어 들기도 하고, 대학 진학을 위해 우리로 치자면 수능을 준비하는 반도 있다. 이민자들을 위한 교육을 생각하고 이 곳에 왔는데, 와서보니 이민자들도 외에도 다양한 이유로 이 곳을 찾은 사람들이 많았다.
그럼 우리 반 친구들을 소개하겠다.
우선 우리 반에서 가장 연장자인 일본계 스웨덴 사람 다로 할어버지가 계시다. 영국의 시인 조지 고든 바이런을 좋아하는 할아버지는 초등학교때 부모님을 따라 스웨덴에 와서 노르웨이 여성을 만나 결혼해 딸 하나 아들 하나를 낳고, 그 아이들이 어느덧 자라 결혼을 해 이제는 외손녀를 돌봐주는게 큰 낙인 할아버지시다. 바이런의 시를 열심히 낭독 중이신 다로 할아버지는 바이런의 시를 좋아하는 것인지 미남이고 뭇 여성들에게 상당히 인기가 많았던 바이런의 연애사를 좋아하는 것인지 다소 헷갈리기는 하지만, 어쩌면 우리 반에서 가장 문학적인 감성을 갖고 계신 분이다. 전직 회계사인 부인이 세상에서 가장 무섭고, 결혼을 앞둔 같은 반 마리아에게 결혼은 정말 미친 짓이라고 이야기를 해 주위를 아연실색하게 만든 장본이기도 하다.
결혼을 앞둔 빨간 머리 마리아는 시리아에서 온 26살 아가씨이다. 스웨덴에 온지 5년이 넘었고, 스웨덴어를 정확하게 구사하며, 대학에 가서 경제학을 공부하는 것이 목표이다. 수업이 없는 날은 식당에서 일을 하는 우리 반 최고의 우등생이다. 하지만 결혼은 미친짓이라고 말한 다로 할아버지와 앙숙 관계이다. 다로 할아버지는 마리아가 너무 수다쟁이라 결혼할 남자가 불쌍하다고 나에게 말했고, 마리아는 다로 할아버지가 바람둥이 같다고 나에게 흉을 봤다. 아무튼 서로 흉을 보고 다니는 사이인데 정말 둘 나이차를 생각하면 웃음 밖에 안나온다.
이스라는 이란에서 온 두 아이의 엄마이다. 이스라는 만났을 때, 이슬람 여성들이 입고 다닌는 차도르 때문인지 그녀가 상당히 조용할 것이라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그런 나의 예상은 수업 중간쯤 되었을 때 빗나가고 말았다. 다로 할아버지의 썰렁한 농담을 듣고 이스라가 웃기 시작하는데, 나 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들도 놀라는 눈치였다. 이스라의 웃음 소리는 흡사 전원주 아줌마 웃음소리 같았다. 우리는 다로 할아버지의 농담이 아니라 이스라의 웃음 소리때문에 다 같이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유쾌한 이스라는 이 과정을 마치고 간병인 교육을 받을 목표를 갖고 있다. 그래서 요양기관에 취직하는 것이 소망이다. 내가 보기에 유쾌한 이스라는 간병인이 적성에 잘 맞을 거 같다. 성격 좋은 이스라는 반 모든 사람들과 다 친하다. 전직 메이크업 아티스트였던 한나는 역도 선수와 같은 체격을 갖고 있는 스웨덴 여성이다. 우리 반 군기 반장이기도 하는데, 항상 맨 앞에 앉아서 수업을 듣는 열혈 학생이기도 하다. 문제는 아침마다 운동을 다니는 것 같은데, 샤워후 머리를 말리지 않고 바로 와서 그 뒤에 앉아 있는 날이면 한나 머리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이 내 책상 위로 떨어진다는 것이다. 예전에 파리에서 일할 때 한국 아티스트들을 많이 만났다고, 아티스트 이름을 줄줄 말하는데, 내가 아는 사람이 단 한명도 없어서 민망했던 기억이 난다. 아무리 같은 한국이라도 내가 메이트업 아티스트까지 알리는 만무하지 않은가. 한나는 케이팝에도 관심이 많았다. 재혼을 한 한나는 요새 보너스 아들 때문에(재혼 남편의 아이들을 한나는 보너서 아이들이라고 했다. 스웨덴에서는 재혼 해서 생긴 상대편 아이들을 보너서 아이라도 부르곤 한다.) 몹시 바쁘다. 5살 꼬맹이가 요구 사항이 보통 많은 것이 아니란다. 나에게 하루는 아무래도 이 꼬맹이가 이전 엄마한테 가정 교육을 잘 못 받은 거 같다고 살짝 흉을 보기도 했다. 한나는 직업을 바꾸기 위해 공부를 하는 중이다. 그녀가 하고 싶은 것은 바로 물리치료사다. 나는 왠지 메이트업 아티스트 보다 물리치료사가 한나에게 더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견을 좋아하시는 다로 할아버지는 나중에 나에게 조용히 한나에게 어울리는 직업은 아이스하키 선수나 역도 선수라고 말씀을 하셨다. 물론 나도 속으로 동의를 했지만, 할아버지에게는 조심하라고 경고를 했다. 한나가 들으면 할아버지를 창문 넘어로 던져 버릴 수도 있다고 말이다. 모나는 우리 반 막내인데,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놀다가 마음을 잡고 다시 공부 중인 흥이 많은 십대 청소년이다. 쉬는 시간마다 음악을 듣는데, 젊어서 참 이쁘다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학생이다. 이 외에도 다양한 사연과 목표를 갖고 수업을 듣는 친구들이 서너명 더 있다. 이들 모두 모나와 같이 대학 진학을 위해 공부하고 있는 십대들이다.
이들 중 마리아와 이스라는 스웨덴어 교육기관인 SFI(Swedish for Immigrants) 교육과정을 다 마치고 이곳에서 공부를 하고 있고, 다른 친구들은 대학 진학을 위해 혹은 직업 전문학교 진학을 위해 이 곳을 다니고 있다. 상대적으로 이민자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지만, 실제 다양한 목적과 이유로 이곳에 찾은 사람들은 각양각색이다.
SFI가 이민자들에게 스웨덴어를 배워주는 특별한 목적을 갖고 운영이 되는 기관인 반면, 성인교육기관은 교육을 받기 원한느 사람들이면 누구나 언제든 찾아 올 수 있는 기관이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다양한 사연과 목적을 갖고 이 곳에 모인다.
SFI가 이민자들의 위한 스웨덴 교육 시스템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없다. 물론 언어 교육은 그 사회에 들어가기 위한 중요한 첫 단계이다. 하지만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언어 교육을 마친 이민자들이 진학하는 교육기관은 이민자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스웨덴 교육기관에서 이들을 흡수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교육기관은 이만자 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 있다는 것이다.
스웨덴은 유럽 안에서도 이민자의 수가 많은 국가에 속한다. 절대적인 숫자는 독일이 가장 많지만, 전체 인구 대비 이민자 유입의 비율은 스웨덴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 만큼 다양한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스웨덴 사회에 모여 산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스웨덴에 들어 오는 이민자들에는 취업을 해서 혹은 연구를 목적으로 하는 경우도 있지만, 전쟁 난민과 같은 특수한 상황에 의해 이 나라로 들어오는 경우도 많다. 스웨덴은 전쟁 난민을 많이 받아들인 국가이다. 특히 사민당이 이민에 개방적이다. 특히 전쟁 난민에 대해 대단히 관용적이다. 다문화, 다인종에 대한 이들의 관용적인 태도는 스웨덴 좌파정당들이 국제주의를 지지하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고, 이들이 지향하는 복지국가의 기본 이념이 보편주의 그리고 평등이기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사민주의의 이념적 전통인든 혹은 인간적인 연민이든 스웨덴은 난민을 많이 받고 있는 국가이다.
물론 내가 살고 자란 곳이 아니기 때문에 살면서, 좋은 일만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스웨덴에 사는 이민자들이 외모로 인한 편견과 차별을 안 겪어 봤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스웨덴은 다양한 국적과 다양한 언어를 가진 이민자들의 사회 통합을 위한 정책적 노력을 상당히 많이 한다. 이미자들의 경우 대부분의 의료, 교육 서비스를 자국민과 대등하게 받을 수 있다. 특히 교육부분은 이민자들이 이 사회에 적응하는데 아주 중요한 열쇠이며, 이들이 취업을 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 그래서 스웨덴은 모든 이민자들에게 평등한 교육의 기회를 제공한다.
교육은 기회의 상징이다.
전쟁 난민으로 이 곳에 와서 새로운 삶은 시작하는 사람에게도, 당시에는 몰랐지만 고등학교를 다시 다니고자 하는 젊은이들에게도, 다시 직업을 바꾸기 원하는 사람에게도 스웨덴 교육은 기회를 준다.
왜 남들처럼 공부할때 하지 않는냐고, 이민자라는 낙인도 없다.
한참 수업 중인데, 교실 창 밖이 시끌 벅적하다. 우리 교실 반대편 건물이 일반 고등학교인데, 졸업식이 한창이다. 스웨덴은 고등학교 졸업식이 대학교 졸업식보다 더 왁작지껄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완전한 성인 즉 독립을 의미하기도 하기 때문에 의미가 남다른 졸업식이다. 졸업생과 재학생이 그리고 가족들이 한 곳에 모여 축하를 하느라 정신이 없다. 더욱이 부모들은 자신들 아이들의 어렸을적 사진을 크게 확대해서 피컷으로 들고 다니기도 하다. 이렇게 어렸던 우리 아이가 이제 성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수업은 자연스럽게 중단이 되고, 우리는 다 같이 창문에 매달려 졸업식을 쳐다보았다.
내 옆에 있던 다로 할아버지가 자신의 아들은 졸업식때 엄청 울었다고 한다. 뭉쿨한 마음이 들어서 아들이 많이 감격스러웠나보다고 물으니, 그게 아니란다.
본인이 아들이 한살일때 집에서 옷벗고 물놀이 하던 사진을 크게 확대해서 들고 갔더니 그것을 보고 울었단다. 너무 창피해서 말이다. 다로 할아버지 아들이 안쓰럽다. 인생에 단 한번 뿐인 졸업식을 울면서 보냈다니...
또래 아이들 졸업식을 보고 있는 모나를 보니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이 아이도 제때 학교를 다녔다면, 저런 졸업식을 했을텐데..... 그런 나의 마음을 눈치 챘는지 나와 눈이 마주친 모나는 활짝 웃으며, 다시 이어폰을 귀에 꽂는다. 그러고는 음악에 맞춰 몸을 움직인다.
어느덧 졸업식은 막바지에 이르렀는지 졸업생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본인들이 쓴 하얀 모자를 파란 하늘을 향해 힘껏 던진다. 폭죽이 터지고, 팡파레가 울린다.
창에 쭉 매달려 있던 우리도 덩달아 소리를 치며, 박수를 쳐준다.
아마 다들 한 마음일 것이다. 6월의 하늘 만큼 파란 저 젊은이들의 생을 축하한다. 그리고 저들이 겪을 삶을 축하한다.
누구는 졸업이 끝이라고 하고 누군는 또 다른 시작이라 이야기 할 것이다.
약간 다른 방식의 학교이기는 하지만, 지금 이 곳에 있는 우리 역시 또 다른 시작점 앞에 놓여 있다.
국적과 인종은 다양하고, 본인들의 꿈은 더 다양하다.
어쩌면 우리가 사는 이 곳에 다양하지 않은 것은 없는 것 같다.
"스웨덴은 기회의 나라야, 혹시 네가 실수를 해도 걱정마, 네가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너를 도와줄 거야"
National test에서 점수가 잘 안나와 울고 있는 마리아에게 앙숙인 다로 할아버지가 해 준 말이다.
걱정 하지 말라고, 다시 하면 된다고.
인생이 즐거운데, 왜 우냐고.
물론 마리아는 다시 본 시험에서 만족할 점수를 얻었다(우리로 치면 대 수능에 해당하는 national test는 여러번 볼 수 있다). 마리아 점수가 나오는 날 우리 반 모두 기뻐했던 기억이 난다.
여름의 신부가 되었던 마리아는 지금쯤 정신 없는 대학 생활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이스라는 간병인 교육을 열심히 받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모나와 그 친구들 역시 대학을 가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다양한 삶 속에 있는 것은 비단 이민자 뿐만 아니다.
우리 모두 다 다른 삶을 살고 있다.
다양함을 이유로 차별하지 말자.
우리는 다 다른 사람들이고, 다양한 생각과 삶을 살 권리가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다양한 존재로 태어났다.
이민자를 위한 특별한 교육을 찾아 다녔던 나는 이제서야 깨닫는다.
여기서 이민자를 위한 특별한 교육은 없다.
모두를 위한 특별한 교육만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