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시민의 편에 서다(1)

시골박사의 정책 이야기 여섯번째

by 윤승희

사회복지정책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정책을 꼽으라면 무엇이라 할 수 있을까?

대답을 하기 쉽지 않을 것 같다. 아마 각자의 시각과 이유에 따라 다양한 대답들이 나올 것이다.

그 다양한 대답들 중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 영국의 엘리자베스 빈민법과 독일의 사회보험"이라고....


이번 이야기의 주제는 바로 약 340여년간 빈민에 대한 억압과 통제의 서막을 열었던 영국의 엘리자베스 빈민법(1601년)과 사회보 시대의 개막을 알렸던 독일의 사회보험(1883년)이다.


그리고 오늘 이야기는 앞으로 하게 될 우리나라 사회보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 아주 중요한 안내서가 될 것이다.


자, 어쩌면 긴 이야기의 아주 짧은 도입에 해당될지 모를 , '정책 시민의 편에 서다 1' 편을 시작해보자.




빈곤에 대한 최초의 정부 개입 혹은 유럽 사회복지정책 역사의 시작이라 일컫는 엘리자베스 빈민법은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통치하면서 생겨난 빈민에 대한 정책이었다.


하지만 이 정책은 애석하게도 빈민을 위한 정책이 전혀 아니었다. 물론 빈민 때문에 만들어 지기는 했지만 절대 빈민을 위한 정책이 아니었고, 오히려 빈민을 통제하고 억압했던 수단으로 사용되었던 정책이었다.


"나태한 자들은 누더기를 걸쳐야 한다. 일을 하지 않는 자는 먹어서는 안 된다." (John Bellars)


2011052644077328.jpg 엘리자베스 여왕(1558-1603)


엘리자베스 빈민법에서는 빈곤의 원인과 빈민에 대한 원조에 관심을 두기 보다 빈곤의 원인을 개인의 나태와 게으름이라 단정짓는다. 그리고 도와줄 이유가 있는 빈민(노동능력이 없는 빈민 예를 들어 노인, 아동, 질병이 있는자들)과 도와줄 필요가 없고 강력하게 통제해야 하는 빈민(이들이 보기에 노동능력이 있는데 빈곤한자)을 구별하는데 정책은 수단과 방법이 되었다.


공공부조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엘리자베스 빈민법은 빈민에 대한 가혹한 억압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엘리자베스 빈민법은 이후 약 350여년간 영국의 대표적인 공공부조 정책으로 지속되었고,

이후 2차 세계대전 이후 1948년 현대적 국민부조법이 도입되고서야 가혹하고 부조리했던 빈민법은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1948년 국민부조법은 "지금까지의 빈민법은 그 효력을 상실한다."라 선언 함으로써 빈민법 시대의 막을 내린다.


기나긴 시간동안 빈민에 대한 통제와 비인간적인 처우를 의미했던 엘리자베스 빈민법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정책이 처음부터 시민의 편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시민의 편이 될 수 없는 정책도 있다는 사실이다.


16세기 말 형성된 빈민법은 350여년이라는 기나긴 세월동안 많은 수정을 거쳐왔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엘리자베스 빈민법은 태생적으로 빈곤에 대한 잘못된 관점을 갖고 있었다.

엘리자베스 빈민법은 그 시작부터 당시 귀족과 지배계급의 빈민에 대한 처벌적인 관점을 그대로 재현한 정책이었고, 이 정책의 목표는 빈민의 처벌과 억제였다. 그리고 이러한 정책의 의도는 세월이 지나가도 변하지 않았다.


어쩌면 빈민법이 빈민을 위한, 빈민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정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을 것이다.

그것이 가진 가치와 철학적 사상은 절대 빈민을 위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시민의 삶에 혹은 빈곤에 대해 이중적 태도를 유지했던 빈민법은 아무리 제도의 변화를 시도하였지만, 제도 본연의 가치 마저 바꿀 수는 없었던 것이었고, 이는 이 정책이 절대 시민의 편에 설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 정책은 절대 시민의 편에 설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시민의 편에 설 수 없었던 이 정책은 사라겨버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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