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시민의 편에 서다(2)

시골박사의 정책 이야기 일곱번째

by 윤승희

우리는 전편에서 시민의 편에 설 수 없었고, 그래서 역사 속으로 사려졌던 엘리자베스 빈민법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다.


이번 화에서는 빈민법과 마찬가지로 사회복지 역사 안에서 중요한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독일의 사회보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현대 복지국 사회보장의 주요한 정책으자리 매김된 사회보험제도는 독일에서 탄생되었다.


19세기 말 당시 가장 선진적 자본주의 국가였던 영국이 아니라 산업화가 가장 늦었던 독일에서 사회보험이 가장 먼저 생겨난 것은 뜻밖의 사건이었다. 왜냐하면 사회보험은 자본주의 생산양식에서 나타날 수 있는 사회적 위험들(산업 재해, 실업, 질병, 정년퇴직)에 대한 대응책이었고, 특히 노동자를 주된 대상자로 하는 제도였기 때문에 당시 가장 산업화 진행 속도가 빠른 영국에서 사회보험의 도입 개연성이 가장 높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사회보험은 영국이 아닌 독일에서 가장 먼저 도입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왜 독일에서 사회보험이 탄생하게 되었을까?


당시 독일은 영국이나 프랑스에 비해 산업 발달이 뒤늦은 국가였지만, 뒤늦은 속도를 만회하기 위해 급속한 산업화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계급이 급속하게 성장하였, 다른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초기 산업화 형성과정에서 노동자의 삶은 매우 열악하였다.


당시 독일 노동자들의 삶잠시 들여다 보면,

1860~1870년대 공장 노동자의 주당 노동시간은 78시간이었다.

여성노동자의 경우 같은 일을 하고도 남성에 비해 반에 해당하는 임금을 받았으며, 무엇보다 가장 심각했던 것은 아동도 이러한 노동의 희생자였다는 것이었다. 당시 8~10세 아동은 하루에 10~14시간 노동을 견뎌야만 했다.


지금으로는 상상도할 수 없고,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현실이 그 당시 노동자의 삶이었다.



이러한 상황 아래, 자본주의의 부조리함을 비판했던 사회주의는 노동자들에게 상당히 큰 영향을 주게되고, 독일은 1870년대 이후 30여년간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사회주의 운동이 행하여 졌던 곳이 된다. 더 나아가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이해를 대변해 줄 정당을 탄생시키는데 그것이 바로 현재 독일의 사회민주당이다.


산업화와 노동자 계급의 성장, 사회주의의 확대, 이러한 사회적 배경과 더불어 이 당시 독일의 사회보험 도입에 영향을 준 인물이 있었는데,

바로 스마르크(Otto von Bismarck:1815-1898)였다.


비스마르크(1815-1898)


그는 독일의 통일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었으며, 재상이 된 이후 독일 민족의 내부적 통일과 다른 국가들보다 뒤쳐진 경제 부흥에 고심한 인물이었다. 강력한 독일, 내부적 통일을 원했던 그의 정치권력에 위협이 되는 세력들이 있었는데 바로 자본주의로 인해 새롭게 생겨난 신흥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 사회주의자들이었다.


그리고 당시 재상이었던 비스마르크이러한 정치적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으로 내놓은 것은 바로 '사회보험'이었다.

노동자에게 힘을 실어주는 정책을 도입함으로써 신흥자본가들의 정치력을 견제하고, 동시에 사회주의 사상의 확대를 저지하며 노동자 계급을 국가에 충성시키기 위한 회유책으로 '사회보험'을 고안하게 된 것이다.


독일의 사회보험의 도입은 비스마르크의 고도의 정치적 계산이 포함되어 있었 것이 사실이지만, 사회보험의 필요성이나 노동자 보호의 정당성에 대한 공감대가 그 당시 광범위하게 형성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여러가지 정치적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었던 독일의 사회보험은 1883년 의료보험, 1884년 산재보험 순으로 도입되게 된다. 세계 최초의 사회보험이 탄생되는 순간이었다. 독일의 사회보험은 이후 19세기와 20세기에 걸쳐 유럽의 사회보험 성립과 확대에 역사적 중요성을 갖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역사적 의미와는 다르게 독일의 사회보험은 당시 독일 노동자들에게 큰 호응을 받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제도의 도입을 반대하기도 했었다.


왜 노동자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사회보험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을까?


사회보험이 노동자들의 이해를 대변하고 있었음에도 왜 이들은 이 제도에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던 것일까?


우선 가장 큰 이유는 당시 노동자들이 사회보험 도입에 깔려 있는 비스마르크의 정치적 의도를 정확하게 간파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비스마르크가 사회보험을 빌미로 노동자들의 통제와 회유를 원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당시 노동자들이 사회보험 정책을 거부했던 것은 이 정책에 대한 경험이 전무했기 때문이었다. 이들에게 노동자들을 위한 사회보험은 역사상 처음으로 경험해보는 것이었다. 그것도 정부가 나서서 노동자들을 위한 정책을 제안한 것이다. 당시 노동자들이 경험했던 정책은 권력층의 시민에 대한 통제와 억압의 수단이었다. 예를 들어 영국의 빈민법을 떠올려보자.


따라서 당시 노동자들에게 사회보험이 빈곤의 원인을 제도적으로 제거해주며, 노동자의 법적 권리를 확보해준다는 것은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노동자들은 이 제도가 본인들에게 이익이 된다는 것을 이해하고, 사회보험의 확충과 제도 개선에 적극적인 요구와 참여를 하게된다.

그리고 현재 사회보험은 노동자들에게 그리고 대다수의 시민들에게 안정된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가장 중요한 정책으로 자리잡게 된다.


전혀 변할 수 없을 것 같았던 빈곤한 노동자의 삶이 정책에 의해 변화되는 순간이었으며, 드디어 정책이 시민의 편에 서게 되는 순간이었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빈민법과 독일의 사회보험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


정책은 처음부터 시민의 편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정책은 시민의 편에 설 수 있게 되었다.


정책이 시민의 편에 서게 되는 과정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정책을 시민의 편으로 만드는 것은 바로 우리의 몫이라는 것이다.


정책이 갖고 있는 가치와 목표를 이해하고 그 정당성에 동의한다면 우리는 기꺼이 정책을 우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


만약, 정책적 목표와 가치가 보편적 시민 정신에 위배되고 차별적이며 시민의 권리를 위협한다면 그러한 정책은 더 이상 정책으로서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 역시 우리의 몫이다.



















매거진의 이전글정책, 시민의 편에 서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