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노인이 된다(1)

시골 박사의 정책이야기 여덟번째, 공적 연금

by 윤승희

내가 쓰고 있는 시골 박사의 정책 이야기의 시작은 바로 3년 전 쯤 우연하게 본 복지국가 관련 다큐방송이었다.


당시 인터뷰를 한 남성분의 말을 잊을 수가 없었는데, 바로 " 정부는 믿지 못해도 제도는 믿는다"란 말이었다.

정부는 믿지 못해도 제도는 믿는다고?

이 말을 통해 나는 얼마나 이들이 그들이 갖고 있는 제도에 대해 강한 신뢰와 자부심을 갖고 있는지 느낄 수가 있었다.


100여년 넘게 시민의 편에서 시민의 삶을 지탱 해주었던 선조들의 유산인 '제도(정책)'에 대한 강한 신뢰와 자부심, 솔직히 나는 그런 그들이 부러웠다. 나도 그들처럼 말하고 싶었다.




선진 복지국가 시민들이 이처럼 강한 자부심을 드러낸 정책은 바로 '공적연금'이었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국민연금이다.


서구의 공적연금은 100여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연금제도가 시민의 강한 지지와 신뢰를 받았던 것은 아니었다. 국가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공적연금의 도입은 처음에 시민들의 거센 반대에 부딪쳤다.


국민전체를 대상으로 공적연금을 세계 최초로 도입한 국가는 스웨덴이었다.

현재 선진 복지국가로 손 꼽히는 스웨덴에서도 연금의 도입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1883년 의료보험 도입 직후 1884년 스웨덴 정부는 연금제도 도입을 논의했지만, 당시 시민들의 반응은 연금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보였다. 특히 농촌 공동체를 기반으로 둔 농민들은 이 제도의 도입을 강하게 반대 하였는데, 이 제도가 갖고 있는 노인 부양의 의미와 가입의 강제성에 대해 쉽게 납득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약 30여년이 흐른 1913년이 되어서야 마침내 스웨덴은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보편적인 공적연금제도를 도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67세 이상의 노인에게 연금을 지급하는 세계최초의 공적연금 도입을 의미했다.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을 달긴 했지만 당시 연금의 급여율은 아주 낮았는데, 고작 임금소득의 5% 이내에 불과한 것이었다. 이후 1957년에 이르러서야 연금 급여율이 60%에 이르게 된다.


물론 현재 스웨덴의 국민연금은 명실상부한 시민을 위한 공적연금으로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스웨덴의 국민연금이 이렇게 자리잡기까지 무수히 많은 변화의 과정이 있었다.

스웨덴 역시 인구의 변화(저출산 고령화의 인구문제), 세계 경기의 변동으로 인한 경제 불황 그리고 연금재정에 대한 우려 등 우리와 유사한 문제점을 겪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연금제도는 변화를 거듭할 수 밖에 없었다.


1913년 연금의 도입 이후, 1937년 스웨덴 연금은 연금법을 개정하고,1946년 기초연금을 도입하였으며, 1957에는 추가 연금제도의 의무적 도입 여부를 놓고 국민투표를 실시 한다. 물론 그 이후에도 스웨덴 연금은 현재에 이르기까지 꾸준하게 변화와 개혁이 이루어지고 있다.


스웨덴 국민연금의 변화는 현재 진행형이다.


하지만 이처럼 스웨덴 국민연금이 변화와 개혁을 진행하고 있다고 해서 이 제도가 국민의 신뢰를 잃어버렸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시민들은 그들이 지켜온 연금에 자부심을 갖고 있으며, 스웨덴의 연금은 스웨덴 국민들의 노후를 보장하기 위한 최선의 제도로 그 역할을 다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스웨덴 국민들은 100여년이 넘도록 이 제도를 지켜왔던 것일까?


이유는 단 한가지이다.


바로, 공적연금이 가진 가치와 목표를 지지했기 때문이었다.


공적연금의 목표는 노후 소득의 보장이다. 노후에도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지켜주고 보장해주는 제도가 바로 공적연금이다.


사람은 누구나 늙는다.

하지만 늙는다는 자연적인 현상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전혀 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인이 된다는 것은 바로 노동자의 노동 상실을 의미한다.

자신의 노동력의 상품화만이 소득을 얻을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던 노동자에게 노동력 상실은 소득의 중단을 의미했다. 그리고 임금소득의 중단은 빈곤을 의미했다.


인류역사에서 노인은 빈곤한 집단의 대명사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인이 된다는 것은 빈곤함을 의미했다.


하지만 불과 70~80년 전부터 인류는 노인이 되어서도 빈곤하지 않고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기 시작한다.

바로 연금을 통해서 말이다.

공적연금의 도입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빈곤할 수 밖에 없었던 노인의 삶을 바꾸어 놓았다.

이것은 인류 역사상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연금은 이러한 목적을 갖고 생겨났으며, 그것이 가지는 가치는 바로 노후 빈곤에 대한 사회적 부양의 책임성과 사회구성원들간의 연대였다.


바로 이러한 점을 스웨덴은 잘 알고 있었다.

공적연금이 가진 본래의 가치와 목표를 잃어버리는 순간 시민들의 노후는 절대 안정될 수 없으며, 본연의 목표와 가치를 잃어버린 정책은 절대 시민의 편에 설 수 없다는 것을 스웨덴 시민들은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어떠한 상황(인구구조의 변화, 경제 불황 등)에서도 스웨덴 국민들은 연금의 가치와 목표의 정당성을 지지했으며, 시민들의 이러한 지지 기반을 덕분으로 연금 정책은 수 많은 변화과정 안에서도 본연의 가치와 목표를 잃어버리지 않으면서 현재의 공적연금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바로 사회보험의 꽃으로 말이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단 한가지.

바로 공적연금은 노후 소득 보장을 위해 만들어진 제도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연금을 둘러싼 모든 논의와 정책의 변화는 바로 이 지점을 향해 나아가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 사회에 돌고 있는 연금을 둘러싼 논의와 정책 변화가 '노후소득 보장'이라는 연금의 목표와 가치를 지향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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