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박사의 정책이야기 아홉번째, 국민연금
명절때 마다 우리집에서 빠지지 않는 음식이 있는데, 바로 녹두전이다.
황해도가 고향이신 우리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께서는 녹두전을 아주 좋아하셨다.
그래서 우리 집 명절 음식에 녹두전은 절대 빠질 수 없는 그런 음식이었다.
내가 어렸을 때, 녹두전을 부치시는 외할머니와 엄마 곁을 맴돌며 놀곤 했는데, 방금 만들어 뜨겁기까지 한 녹두전은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뜨거워서 '호호' 불며 동생들과 나눠먹던 녹두전은 참 맛있었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돌아가셨지만, 우리 엄마는 매 명절때 마다 황해도가 고향이셨던 외할머니 대신해 녹두전을 만드신다.그리고 그 옆에 내 딸이 갓 만들어 뜨거운 녹두전을 '호호' 불며 먹고 있다.
우리 엄마는 내 딸의 외할머니가 되셨고, 나는 엄마가 되었다.
언젠가 우리 딸도 부모가 될 것이다. 그리고 나도 할머니가 될 것이다.
그렇게 세월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흘러갈 것이며, 우리는 모두 노인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국민복지연금법이 제정된 시기는 1973년이지만, 실제로 제도가 도입된 것은 1988년이다. 당시 국민연금은 10인 이상 상시 근로자 사업장에 우선 적용된 후 1992년 5인 이상 사업장으로 확대되었고, 1999년 전국민 연금시대를 대대적으로 선언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국민연금은 선진 복지국가의 연금제도와 비교하면 특이한 점이 있는데, 그것은 제도가 갖고 있는 역사가 짧다는 것과 제도 도입 이후 제도 확대 수준이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길게는 100여년 짧게는 70여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서구의 연금제도는 시간을 두고 연금제도를 수정하고 정비해 나갔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연금제도는 1988년 도입 이후 1999년 전국민 연금시대를 선언하기까지 걸긴 시간은 고작 11년이었다. (우리나라는 경제성장 이후 복지제도의 정비에 들어섰고, 이러한 특징 상 연금제도 뿐 만 아니라 다른 여타의 제도들도 도입 이후 제도의 확대가 상당히 빠르게 진행되었다는 특징들을 보이고 있다.)
서구의 연금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의 국민연금 역시 노후소득 보장을 목적으로 설계된 제도이다.
맞다. 우리나라 국민연금의 목적은 바로 '노후소득보장'이다.
그렇다면 이 제도가 지닌 가치는 무엇일까?
국민연금 제도는 노후소득보장이라는 목적을 위해 설계되었지만, 이것이 다는 아니다.
이 제도 안에는 노후 소득 보장을 위해 세대 간 그리고 계층 간 연대라는 가치를 지향하고 있다.
국민연금이 지닌 이러한 가치를 보다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연금금액을 계산하는 방식을 들여다 봐야 한다.
우리가 받는 연금금액은 위에서 보는 연금금액 공식에 의해 책정이 된다고 보면된다.
연금액=1.2(A+B)(1+0.05n)/12개월
여기서 A값은 은퇴직전 전체 국민연금 가입자의 3년 평균 소득액이고,
B값은 가입자 본인의 국민연금 가입기간 중 평균 소득액을 의미한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이 A값이다. 국민연금은 내가 낸 돈만 계산 되는 것이 아니고, 내가 은퇴하기 직전 3년간의 우리나라 연금가입자의 3년간 평균소득도 포함이 된다. 다시말해 A 값은 모든 가입자에게 동등한 값이 적용 될 것이고, B값은 개인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결국 국민연금의 A값은 계층간 급여율을 상쇄시키는 효과를 갖고 있는 셈이다.
그림의 예를 설명해 보겠다.
국민연금 가입자의 3년간 평균소득액을 200만원이라 가정을 하자.
고소득자 갑은 본인의 평균 소득액이 300만원으로 A값이 B값보다 작은 경우이다.(A<B)
평균소득자 을은 본인의 평균소득액과 전체 가입자 소득액이 같은 경우이다.(A=B)
저소득자 병은 본인의 평균소득액은 100만원으로 전체 가입자 소득보다 적은 경우이다.(A>B)
(단, 이들은 모두 25년간 연금에 가입했고, 그래서 이들의 n값은 5이다.)
이들이 받게 될 연금은 고소득자는 월 62만5천원으로 이는 본인 소득 값(B값) 대비 20.8%에 해당된다. 즉, 20.8%가 고소득자의 소득대체율이 되게 된다. 평균소득자의 월 평균 연금액은 50만원 (25%), 저소득자의 월 평균 연금액은 37만 5천원으로 소득대체율은 37.5%로 볼 수 있다.
즉, 우리나라의 국민연금은 소득계층이 낮은 집단에게 더 유리하게 설계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지점이 국민연금이 갖고 있는 독특성(소득 계층간 소득 재분배 기능)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계층간 소득 재분배를 위해 이러한 제도의 설계를 지지하는가 그렇지 아니한가는 개인의 도덕적 판단의 문제일 수 있다.
그렇다면 국민연금은 평균이상 소득자에게 불리한 제도란 말인가?
' 뭐야, 난 평균 소득이 300만원은 넘는데 그럼 나는 손해를 보란 말이야?'
이렇게 생각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국민연금제도가 상대적으로 저소득 계층에세 유리하게 설계 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이 말이 절대 다른 계층이 손해를 본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우선 국민연금은 가입자가 죽을 때 까지 받을 수 있는 급여라는 점을 명심하자.
그리고 (통계상이긴 하지만) 평균소득이 높을 수록 평균 수명이 더 길다는 점 역시 명심하자. 이는 국민연금이 고소득층에 유리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하지만 평균 수명을 떠나서라도 국민연금은 고소득층과 중간 계층에게 절대적으로 손해를 주는 제도가 아니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국민연금의 수익율 혹은 수익비 개념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수익비는 1을 기준으로 보는데, 수익비가 1이라는 것은 내가 낸 보험료의 총액과 받게 되는 연금액의 총액이 같다는 것을 의미한다. 위의 표를 보면, 연금의 개정 전 후로 그 수익비가 다소 차이는 있지만, 모든 소득 계층은 수익비가 1을 넘는 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말은 모든 계층에서 본인이 낸 보험료보다 더 많은 연금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수익비를 보면 어느 소득계층도 본인이 낸 돈보다 적게 받는 계층은 없다. 오히려 더 받는 셈이다.
그리고 어떠한 민간 보험회사의 상품도 시장의 원리상 수익비 1을 넘지 못한다.(보통 사회보험회사의 수익비는 대략 0.8~0.7에 머물 것으로 예상된다.)
예전에 연금 전문가가 어느 강연장에서 국민연금보다 수익비가 높은 민간 보험을 찾아오면 밥을 사주겠다고 한적이 있는데, 아마 빈말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국민연금의 수익비가 1을 넘을 수 있단 말인가? 내가 낸 돈 보다 어떻게 많이 받게 되는 건가? 바로 이 부분이 국민연금이 가진 세대간 연대를 의미한다. 그리고 이 부분은 요새 핵심 쟁점이 되는 재정 고갈과 후세대 부담론과 긴밀하게 연관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 이 부분은 다음에 이야기 하도록 하겠다.)
우리나라 국민연금은 시민을 위한 제도로 설계되었다. 그리고 이 제도가 지향하는 가치는 소득 계층간 세대간 연대이다. 우리 모두가 함께 우리의 노후를 준비하는 것이 바로 국민연금이 지닌 가치이다.
서구의 선진복지국가 연금제도가 100여년에 걸쳐 그 시행착오를 거쳐온 것에 비하면 현재 우리나라 연금제도에 대한 여러 오해와 불신은 어쩌면 당연하다 할 지 모르겠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도입과정에서 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국민들의 불신과 반감을 사고 있으며, 시민들의 환영을 받아야 할 국민연금이 오히려 서민을 갈취하는 수단으로 인식되어지고 있다.
과연 국민연금은 시민의 편에 설 수 있을 것인가?
정책이 시민의 편에 서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지지가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서구 선진국가들의 예를 통해 보았다.
정책이 지닌 가치와 목표를 시민들이 동조하고 지지할때, 그리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노력할 때 정책은 시민의 편에 설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국민연금이 가진 정책의 가치와 목표를 제대로 이해하고 지지하는가?
국민연금이 가진 가치는 우리가 지키고 지지 할 만한 것인가?
국민연금 재정 고갈설, 연금 파탄설....여러가지 이야기들에 흔들리기 전에
한번 생각해 보자.
우리는 국민연금에 대해 진정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던 것인가?
이 제도가 가진 가치와 사상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만약 국민연금의 목표와 가치에 동의한다면, 그래서 이 제도를 우리의 것으로 만들기로 했다면,
연금 고갈설, 위기설 등등 수 많은 위기설은 해결 가능한 문제가 된다.
국민연금을 진정한 국민의 연금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