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박사의 정책이야기: 새해 첫 이야기
어제 새벽부터 내린 눈은 오늘 아침에서야 그쳤다. 하얀 눈이 소담하게 쌓였다.
따뜻한 유자차를 들고 창 밖을 딸 아이와 보고 있다.
쌓여있는 눈을 보며 길이 미끄러울까봐 걱정하는 나와 달리 우리 딸은 뜨거운 유자차를 호호 불며, 서둘러 마시고 있다. 유자차를 다 마시면 나가서 놀게 해준다고 내가 약속 했기 때문이다.
" 도연아, 천천히 마시고 나가, 눈 안 녹는다."
"아니에요, 해가 뜨면 눈이 금방 다 녹는단 말이에요~"
벌써 동네 아이들 노는 소리가 들려 온다.
방학이다. 방학이라해도 동네에서 노는 아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바쁜 세상 속에 사는 우리 아이들은 바쁘다.
오늘은 나와 우리 딸이 본 영화 이야기를 해볼까한다.
방학이라 더욱 할 일이 없는 나와 우리 딸이 주로 찾는 곳은 동네 도서관이다.
집 바로 옆에 있는 동네 도서관은 나와 우리 딸이 자주 놀러가는 장소이다.
우리 동네 도서관은 아이들을 위해 여라가지 프로그램들을 진행 하는데, 그 중 매주 목요일 오후에는 아이들이 볼 수 있는 영화를 상영한다. 지하에 있는 큰 강당에서 보여주는데,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와서 딸 아이와 영화를 보곤한다. 조용히 영화를 봐야 하는 영화관과 달리 도서관의 영화관은 주로 아이들이 보는 곳이라 아이들이 마음껏 웃으면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암튼 우리 딸과 이번에 본 영화는 "투모로우랜드"였다.
월트 디즈니 영화로 조지 클루니가 나오는 영화였다. 어린이 영화치고는 런닝타임이 꽤 길다는 생각과 월트 디즈니의 공상과학영화니까 아이들이 보기 딱 좋겠구나란 생각을 하며 영화를 봤다.
미래의 도시 투모로우랜드. 아버지가 일하는 NASA 우주선 발사기 철거를 반대하는 한 소녀가 미래 도시를 볼 수
있는 핀을 얻게(?)되고, 그 도시가 실제 있다는 것을 알게된 그 소녀는 예전에 투모로우랜드에 있다 쫒겨난 조지 클루니를 찾아가서 다시 투모로우랜드로 들어가 미래를 바꾼다는 이야기이다.
영화의 줄거리는 꽤나 상투적일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인상 깊게 본 장면은 지구 미래에 대한 악당(박사인데 그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다)의 이야기였다.
악당은 인류가 멸망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현재의 인류에게 희망이 없다고 말하는데 그 주장은 이러했다.
투모로루랜드는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인류가 누릴 수 있는 장미빛 미래의 모습이었다. 인류는 장미빛 미래를 만들어 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인류는 잦은 전쟁, 환경의 파괴 등으로 장미빛 미래와 점점 멀어져 가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미래의 사람들은 현재의 지구 사람들에게 경고의 의미로 인류의 미래가 재난과 전쟁과 같은 참혹한 모습일 수 있다는 정보를 준다. 예를 들어 계속 이런식으로 환경을 파괴한다면 지구 온난화로 태풍 재해 등이 발생하고 결국에는 지구가 멸망할 수 있다는 식으로 말이다. 만약 이렇게 인류에게 겁(?)을 주면, 인류는 환경파괴와 전쟁을 멈추게 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비극적이고 절망적인 미래의 정보를 인류는 인지하고 습득만 할 뿐이지 절망적인 미래를 바꾸기 위해서는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악당박사는 현 인류에게 희망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악당 박사의 말대로 영화 속 현실은 교육현장에서, TV 뉴스에서, 많은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하는 여러 신문기사들에서, 일반 대중들까지 지구의 환경은 파괴도고 있고, 불평등과 기근과 재해는 늘어가고 있으며, 세상 곳곳에서 테러와 전쟁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고 한탄해 한다. 지구는 파멸로 치닫고 있다고 경고를 한다. 그리고 다들 그 말에 동의한다.
이 지점에서 영화 주인공 여자아이는 궁금해 한다.
다들 현재의 문제점을 잘 알고 있는데, 왜 다른 방식을 선택하지 않는 것일까? 현재의 문제점을 알고 있으니 그것을 수정하기 위해 애쓴다면, 미래는 바뀌지 않을까?
하지만 소녀의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냉소를 짓는다. 그럴수 없다고. 너무 멀리 왔다고, 그리고 모든 전문가들이 지구의 미래는 기상 악화와 기근, 전쟁으로 파멸을 할 거라 예상하고 있다고, 미래는 변화지 않을 것라고 단정 짓는다.
물론 영화는 인류의 미래에게 희망이 있다는 메시지를 던지며 끝을 맺는다.
바로 미래를 위해 자신의 자리에서 이웃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보여주며 말이다.
영화를 보고 딸아이와 집에 걸어오면서, 신나게 떠들고 있는 딸과 그 친구들을 보며 나는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에서 이러한 대사가 나온다.
세상에 두 종류가 늑대가 있다.
하나는 어둠과 절망의 늑대이고, 하나는 빛과 희망의 늑대이다. 두 늑대가 싸우면 어떤 늑대가 이길 것인가?
답은 바로 내가 먹이를 주는 늑대이다.
나는...나는 과연 어떠한 늑대에게 먹이를 주고 있을까?
그 동안 내가 브런치에 올려 놓았던 나의 글들을 다시금 읽어보았다.
나는 왜 이러한 이야기를 시작했을까?
정책에 대해 더 유용하고 좋은 글들이 많이 있는데 말이다.
나는 어떠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나는 나의 이야기를 통해 정책이 얼마나 우리 삶에 중요한가를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다.
나는 올바른 정책은 우리 삶을 지켜 줄 수 있고, 그것이 우리가 사는 곳을 더욱 행복하게 만들어 나갈 수 있을거라 믿는다.
그래서 나는 내가 갖고 있는 작은 지식이라도 보태어 글을 쓰고 싶었다. 정책의 가치를 조금이라도 많은 사람들과 나눠보고 싶었다. 올바른 정책을 만들고 지지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길 바라면서...
하지만 내 이야기의 주요 골자가 정책에 대한 비판이 주가 되다 보니, 현재 우리 사회에 대한 부정적인 면만 늘어 놓은 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난 우리 딸에게 혹은 내 강의를 듣는 학생들에게 내가 살고 있는 이 땅, 대한민국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를 해 왔는가?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야 할 이 세상에 대해 나는 어떠한 이야기를 해주고 있었던 것인가?
희망의 이야기를 해왔던가 아니면 절망과 비관적인 이야기를 해왔던가.....
이대로 가면 이 사회가 진정한 '헬 조선'이 될 거라 겁을 주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지금까지 희망의 이야기를 해왔다고 말 할 자신이 없어진다.
자꾸만 후자였다는 생각을 지워버릴 수가 없다.
나 역시 어둠과 절망의 늑대에게 먹이를 주고 있었을까....
정책과 우리의 삶은 긴밀하다. 사실이다. 오늘 신문만 들쳐봐도 우리 사회는 여러 정책적 문제들로 넘쳐난다. 매년 되풀이 되는 보육대란, 정부가 추진하려는 노동개혁법 등 우리들의 삶은 다양한 정책의 장이 되었으며, 정책은 정당간, 지역간, 심지어는 정당의 부처간의 논쟁의 장이 되어버렸다.
정책이 중요하다는 것은 이제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 되었다.
하지만 과연 어떠한 정책이 우리 삶을 살리고 지켜낼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우리는 진지하게 하고 있는 것일까? 대안이 없이 단지 비난을 위한 비판만을 하고 있지는 않았는가?
아이와 별 생각 없이 본 영화는 뜻하지 않게 나에게 큰 질문을 던져 주었다.
찹찹함을 감출수가 없다.
무거운 마음으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저녁밥을 먹고 있는 아이에게 물어본다.
" 도연아, 오늘 본 영화에서 기억에 남는게 뭐가 있어?"
짐짓 아이의 대답에 기대를 해본다.
아이는 숟가락을 입에 물고 잠시 고민하더니,
" 흠...., 아이 로봇이랑 어른 로봇들이 싸우는 장면이요. 그리고 에펠 탑이 반으로 나뉘어 지는거요. 진짜 대박~"이런다.
" ...그래? 늑대 이야기는 생각 안나?"
" 늑대요? 늑대라뇨?"
아무래도 나만 심각하게 영화를 본 것 같다.
저녁을 먹는 아이에게 다시 물었다.
" 도연아, 이 세상에는 두마리의 늑대가 있데, 하나는 어둠과 절망의 늑대이고, 하나는 빛과 희망의 늑대야. 두 늑대 중에 싸우면 누가 이기는지 알아?"
"알아요."
"안다고?"
" 당연히, 빛과 희망의 늑대가 이겨요." 아이는 웃으며 대답한다.
내 예상과는 다르게 진행되는 이야기에 당황스럽지만 아이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그 이유가 궁금하다.
"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 엄마,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어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어두우면 불을 켜는 거잖아요. 희망도 그래요. 아무리 절망스러워도 우리는 실낱같은 희망이라고 이야기 하잖아요"
그렇구나.
우리 아이는 이미 희망과 빛의 늑대를 키우고 있었구나.
나는 어떠한 늑대에게 먹이를 줄 것인가? 당연히 희망과 빛의 늑대에게 먹이를 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우리 아이에게 이 세상은 아름답고, 정의로우며, 행복한 곳이라고만 이야기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우리 아이에게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가난과 전쟁 그리고 부당함과 불공평함이 있다는 것을 이야기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러한 세상을 살아가야 하고,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이야기 해줄 것이다. 살아가야 할 이유는 많겠지만, 단지 살아 있는 그 존재적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우리는 살아가야 할 가치가 있다고 이야기 해줄 것이다.
단지 너이기 때문에 살아야 하는 이유를 우리 아이가 아직 어려서 이해를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진심을 다해 이야기 해 줄 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을 보다 평등하고 정의로우며, 행복한 세상으로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 해주고 싶다. 그러니 너도 그러한 사람이 되라고, 그리고 엄마 아빠도 그러한 사람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살 것이라 말해 줄 것이다.
새해가 밝았다.
나의 쉬운 정책 이야기는 올 해도 계속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