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보육정책, 누구를 위한 정책일까?

시골 박사의 쉬운 정책이야기: 보육정책의 목표를 생각해 봅시다.

by 윤승희


새해부터 여러가지 정책적 이슈들이 연일 뉴스를 통해 나오고 있다.

그 중 내 눈길을 끄는 것은 매년 반복되는 무상보육 예산에 대한 이야기이다.

현 정부의 대선 공약 중 하나였던 0-5세 무상보육은 위태로운 행보를 지속하고 있으며, 정부 부처간 치열한 논쟁 속에서 아이를 가진 부모들만 눈치를 보고 있는 셈이 되어 버렸다.


정책이 본연의 가치를 잃고 정치적 싸움의 장이 되어버렸다.


우리나라에서 보육정책이 관심을 받기 시작한 시기는 아무래도 저출산이라는 인구학적 위기가 사회적으로 심각하게 받아 들여졌던 2000년대 초반부터 였다.

초저출산 국가라는 타이틀을 달고 난 뒤 언론과 정부는 저출산의 해법을 찾기 위해 여러 고민과 대안들을 쏟아 낸다. 그리고 이러한 고민 안에서 보육정책은 검증된(?) 저출산 해결책으로 부상하게 된다.

그랬다. 출산이라는 것이 단지 하나의 문제가 해결된다고 아이를 더 낳고 말고 하는 그런 단순한 문제는 아니지만, 저출산의 해결책 중 하나로 보육정책은 그 필요성을 인정 받게 되고 발전을 하게 된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 그리고 2011년 이전까지 보육정책을 둘러싼 정치적 사회적 논의는 현재 '무상보육'과는 달랐다. 당시 보육정책의 사회적 논의는 보육정책의 공공화, 국공립 보육시설의 확충, 아동수당 등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무상보육'이라는 정책 신인이 등장하게 되고, 무상보육의 등장으로 보육정책의 판세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오늘은 바로 무서운 정책 신인 '무상'보육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무상'보육이 정치적 전면에 등장한 것은 아무래도 2011년 이라 해도 무방할 것 같다.

당시 보육정책의 주요 논의 거리는 큰 맥락에서 공공화 VS 시장화(민영화)였다. 보육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과연 어떠한 방식으로 확대할 것인가를 두고 여러가지 의견들이 분분한 그러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2011년 이전부터 많은 시민단체와 학계에서 보육정책의 공공화(국공립보육시설의 확충)와 아동수당을 골자로 하는 보편적 보육을 주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이명박 정부는 보편적 보육이라는 말을 상당히 꺼려했으며, 보육정책에서 이명박 정부와 당시 한나라당이 내세운 정책적 노선은 보편적 보육과 사뭇 다른 선별적 지원을 중심으로 하는 보육정책을 주장하고 있었다. 당시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의 보육정책의 주요 내용은 사회적 약자를 중심으로 보육비를 지원하고 수요자 중심의 보육시장의 조성 그리고 시장화를 통한 민간시장의 자율경쟁과 이를 통한 보육의 질 향상 이런 것들이 당시 정부과 한나라당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정치적 흐름이 완전하게 뒤바뀌는 사건이 일어나게 되었는데, 바로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 투표'였다. 서울시 무상급식에 대한 논쟁은 예상 외로 강력한 정치적 파급력을 가져왔고, 이것은 비단 아이들의 밥 한끼 문제를 넘어서 보편적 복지인가 아니면 복지 파퓰리즘인가라는 치열한 정치적 논쟁의 중심에 서게 된다. 거기에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이 자신의 시장직까지 거는 승부수를 띄웠고, 아이들의 무상급식을 둘러싼 시민 투표는 단지 서울시의 문제가 아닌 전국민적인 관심을 받게 된다. 복지에 대한 보수와 진보의 상징적인 대결의 장이 되었던 이 선거의 결과는 오세훈 시장이 시장직을 사퇴하는 것으로 끝나게 되고, 향후 서울시장 보궐 선거에서 박원순 현 서울시장의 당선으로 보수진영이라 할 수 있는 당시 한나라당에 상당한 충격을 주게 된다 .


그 충격이 얼마나 컸는지 한나라당은 보육정책에 한에서는 보편적 복지를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정책적 노선을 급 수정하게 된다(당시 한나라당은 보편적 복지와 무상 급식을 경제 파탄의 주범이 될 것이라 강력하게 비판했었다). 하지만 무상급식 선거의 패배 이후 당시 한나라당 황우여 원내대표는 만 0세부터 전면 무상보육의 추진이라는 당의 정책을 내세우게 된다. 그리고 다음 해인 2012년 총선이 있던 그 해, 이명박 정부는 무상보육을 전면 수용하게 된다 . '무상급식'의 역풍을 맞은 한나라당은 '무상보육'이라는 카드를 꺼내들고, 이는 총선에 임하는 각 정당의 핵심 정책으로 부상한다.

한나당이 '무상보육'의 카드를 들고 나오면서 '무상급식'의 담론은 '무상보육'의 담론으로 바뀌어지고, 무엇보다 무상급식을 보편적 복지의 핵심 정책으로 내세웠던 민주당은 담론의 주도권을 보편적 복지와 무상급식을 반대했던 한나라당에게 내어주는 모양새를 보이게 된다 .


'무상급식'으로 정치적 역풍을 맞았던 한나라당은 '무상보육'이라는 카드를 들고 나와 2012년 총선의 핵심 이슈였던 보편적 복지의 담론을 장악하는 모습을 보인다 .


그렇다. '무상보육'은 당시 이명박 정부와 한나당의 총선을 위해 만들었던 선거용 정책이었으며, 무엇보다 무상급식의 논란을 잠재울수 있는 히든카드였다. '무상'보육은 '무상'이라는 단어를 가져와 본인들에게 불리했던 정치적 상황을 역전 시켜버린 탁월한 정치적 계산의 산물이었다.


물론 '무상보육'이 정책적 관심사로 떠오르게 되면서, 우리나라 보육정책의 양적 확대에 강력한 추진력이 된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그 동안 보편적 보육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정책적 노선을 택했던 보수 진영에서 이러한 정책적 변화는 이후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보육정책의 양적 확대를 수용하는데 출발점이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나라 보육정책의 급격한 확대는 보육에 대한 국가의 선별적 책임을 주장하며, 보편적 보육정책을 반대하였던 진영의 주도로 이루어지게 된다. 하지만 정책 도입의 이런 모순적인 순간은 여러 국가 혹은 많은 시대에서 보여 왔기에, 현재 '무상보육' 정책의 문제는 어느 당에 의해 도입과 확대가 되었는지와는 상관이 없을 수 있다.


현재 '무상' 보육의 문제는 이 정책이 갖고 있는 보다 본질적인 것에서 기인한다.


'무상'보육정책의 문제는 이 정책의 모호한 정체성에 기인하고 그리고 이는 이 정책을 내세운 정부가 보여주는 이중적 태도에 긴밀하게 연결 된다.

보수당의 주도로 보육정책의 양적 확대가 이루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문제는 보육정책의 확대를 주도하는 정부와 한나라당(혹은 새누리당)의 보육정책에 대한 정책의 방향성이 변화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전히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는 보육정책에 있어 민간 공급체계를 유지 확대하고 현금급여 중심의 시장화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정부는 만 0세에서 5세 전 계층의 보육료 지원과 양육수당의 확대를 주도 하며 보육료 지원의 폭을 급격히 늘리고 있지만, 정부의 무상보육 확대가 보육에서의 국가 책임을 강조하는 공공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보육에 대한 현금지원이 급격하게 확대되고 있었던 2012년과 2013년 정부의 '보육서비스 개선 대책'을 살펴 보면 보육서비스 구조에서 정부는 공적 보육체계의 사실상 포기를 선언하며, 민간 위주의 공급 구조 정책을 표명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무상 보육이 국가 정책으로 도입되고, 보수당에 의해 주도된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 보육정책에서의 국가의 역할은 보육비 지원에만 한정이 되어 있을 뿐 그 동안 보육의 공공화를 주장하며 내세웠던 국공립 보육시설의 확대에는 이 정부는 어떠한 책임과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보육정책에 가장 큰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보육의 질 향상과 공공성 확충을 위해 가장 많이 논의 되었던 것은 국공립 보육시설의 확충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논의는 무상 보육의 등장 이후 사회적 논의 관심에서 멀어지게 된다 .





'무상'보육의 담론이 보육의 '공공성' 담론을 덮어버리게 되고, 당시 한나라당은

'보편적 보육=보육의 공공성'이라는 등식을 '무상보육=보육의 공공성'이라는 틀로 완전하게 뒤덮어 버린다.


2011년 이후 등장한 '무상보육'의 현재의 모습은 어떠한가?




현재 보육정책은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렸다.


보육정책의 목표는 무엇인가? 왜 우리는 보육정책을 만들었고, 왜 그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 하는가? 그리고 왜 보육정책에서 국가의 책임을 강조하는가?


보육정책의 출발은 여기서 시작되어야 한다 .

어떠한 것이 보육정책의 목표인지, 무엇을 위해 우리는 보육정책의 확대를 주장하는지에 대한 분명하고, 사회적으로 합의된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시대나 국가에 따라 보육정책의 목표는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스웨덴은 1970년대 부터 공적 보육의 목표를 노동시장에서 일하는 여성들을 지원하기 위한 것으로 설정하였다. 그래서 스웨덴의 보육정책은 노동시장에서의 양성 평등과 연계하여 발전하게 된다 .

반면, 덴마크와 핀란드는 아동 발달의 측면에 초점을 두고 보육정책을 발전 시킨다. 아동이 안전하고 좋은 환경에서 자라날 수 있는 권리에 초점을 두고 보육정책을 발전시켰다.

현재 스웨덴과 핀란드 그리고 덴마크는 보육정책의 선진국이며, 공공보육시설과 보육정책에 대한 국가의 책임이 완전하게 자리를 잡은 국가들이다. 그래서 어떠한 보육의 목표가 더 낫다고 이야기 하긴 어렵다.


단지 우리는 우리 사정에 맞고, 사회적 합의가 된 보육정책의 목표를 만들면 된다.



하지만 무상보육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2011~2012년 그 당시 우리는 진지하게 보육정책의 목표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았다. 현재도 마찬가지이다.


정책이 그 본래의 가치를 갖기 위해서는 명확한 목표를 갖고 있어야 한다 .


나는 보육정책의 진정한 목표는 바로 우리 아이들의 돌봄 받을 권리를 지켜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국가는 우리 아이들을 좋은 환경에서 돌보아야 할 의무가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좋은 환경에서 그 아이들의 부모가 누구이건, 부모의 경제력이 어떠하던지, 학벌이 어떠하건 간에 모든 아동은 부모의 소득과 계층에 상관 없이 질 높은 보육서비스를 이용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아이들은 평등하게 그리고 안전하게 본인들의 삶의 처음을 시작할 권리가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교육이 계층 이동의 주요한 열쇠라고 이야기 한다. 물론 현재 우리나라의 교육은 사교육으로 오히려 계층을 고착시키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이렇게 사교육이 미치도록 판을 치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그만큼 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반증이 아니겠는가?


보육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출생추첨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 아이들은 각기 다른 환경에서 태어난다. 그리고 부모의 경제적, 사회적 지위는 어린 자녀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두 말하면 잔소리다. 요새 금수저 흙수저 이야기가 이러한 것을 대변하는 것이 아닌가?


비록 부모의 경제적 지위, 사회적 지위가 자녀들에게 영향을 주는 것을 완전하게 차단하지는 못하겠지만, 최소한 우리 아이들에게 평등한 삶의 출발선을 마련하기 위해 우리는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바로 그 시작이 보육정책이라 생각한다.


보육정책은 아이들의 권리에서 시작되며, 국가는 보육환경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하기 때문에 보육정책의 대상자는 부모도 아니고 선거권을 가진 시민들이 아니고 바로 우리 아이들이다.


우리 아이들에 대한 권리를 지지하고 지켜주는 것이 보육정책이고, 그렇기 때문에 공짜 혹은 무상이라는 말은 어울리지않는다. 보육정책은 우리 아이들의 권리에서 나왔으며, 그것에 대한 재원은 부모와 우리 어른들이 낸 세금에서 나온다. 정부가 주는 무상, 공짜가 아니고 그것은 우리 아이들의 부모와 할머니, 할아버지가 우리 아이들을 위해 그리고 우리 사회의 발전을 위해 기꺼이 모아두었던 우리 사회의 배당금으로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 나라와 우리 사회의 발전을 위해 여러가지 형태로 기여했으며, 당연히 그 발전의 이익과 몫은 우리 그리고 우리의 미래인 우리 아이들에 있다.


응당 받아야 할 권리를 갖고 태어난 우리 아이들에게 공짜 급식과 무상 보육이란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정책은 권리적 측면에서 접근을 해야한다. 시민이 시민으로서 갖고 있는 권리를 지켜주기 위한 것으로 정책은 그 명분과 목표를 갖는다. 정책의 명분은 단 하나이다. 시민의 권리를 지켜주는 것.


보육정책의 존재 이유는 단 하나이다. 우리 아이들의 평등한 시작을 위한 것.

물론 보육정책이 보다 발전하게 되면 다른 정책(아동수당, 육아휴직, 근무시간 유연제 등등)과 그 영향력이 합쳐져 출산율을 올리고, 여성경제활동율도 높이며, 아동 빈곤율도 낮춰줄것이다.


'무상보육'의 발생에 큰 영향을 준 '무상급식 주민 선거'를 다시금 생각해 보자. 왜 우리는 아이들 밥 한끼에 그토록 관심을 보였는가? 아마도 그것은 우리 아이들을 기르는 것이 우리 모두의 몫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을 기르는데 있어 어떠한 차별과 배제가 있어서는 안된다고 우리 대다수가 생각 했다고 본다.


보육에서 '무상'이라는 정치적 미사여구를 걷어내자. 더 이상 보육정책이 정치적 도구로 전락하는 것을 두고 보고 있지 말자.


좀 더디게 가더라도 이제는 고민해 보자.


보육정책 과연 누구를 위한 정책인가?

과연 보육정책의 목표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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