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나리가 지면 갓 꽃이 피고
사월초에 만개하는 벚꽃은 어이없게도 며칠 만에 다 져버렸다.
마음먹은 거를 실천으로 옮기는 데에 좀 오래 걸리는 편인 나는
이제 슬슬 구경 가볼까라고 마음을 일으켰는데 한 발 늦었다.
보통 벚꽃이 피면 사월 중순까지는 피니깐 괜찮을 거야라고 했던
나의 생각은 오산이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요즘은
우리 마을에 피는 꽃들만 해도 뭐 풍년이니 마을 한 바퀴 돌면서
꽃 감상을 하기로 했다.
며칠 전부터 활짝 피기 시작한 철쭉과 사과꽃,
벌써 지기 시작하는 향기가 좋은 라일락과 수선화,
그리고 땅에 딱 붙어서 피는 노란 민들레, 그리고
오늘 풀숲에서 찾아낸 하얀 민들레도 환하게 피어 있었다.
동백옆에는 마치 질투의 화신인가 싶은 붉은 철쭉.
마을 전체가 꽃밭이 되어가고 있었다.
아마도 지구의 온난화로 인해 벚꽃이 빨리 지는 것처럼
예년보다 더 빨리 피기 시작하는 봄 꽃들이다.
그리고 또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하는
갓 꽃의 그 화사함이란 봄의 상징인 황금 개나리 못지않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나는 선명하고도 화사함의 극치를 폭발시키고 있는
개나리에 완전 푹 빠져 있었다. 개나리가 지면서 갓 꽃이 그 뒤를 이어 피어나기
시작하였는데 군락을 지어 피어있는 갓 꽃의 매력도 매우 경쟁력 있었다.
참 신기하기만 하다. 개나리가 지면 갓 꽃이 피고, 라일락과 동백이 지면
다시 철쭉과 사과꽃이 피어나니. 꽃들은 이렇게 피고 지는 계절이 겹치지 않고
오묘하게도 인간들의 심성을 아름답게 가꾸어주고 설레게 한다.
이렇게 먹거리도 제공하고 거기다 볼거리까지 제공하는 갓은
한 집안 살림을 반짝 윤기 나게 가꾸어주시는
우리네 엄마들 닮은 알뜰한 채소이다.
화려함으로 인간들의 시선을 뺏고는 곧 시들어버리고 마는
대개의 꽃들이 귀족이라면
겨우내 먹거리를 제공하고 봄에는 꽃으로 또 눈을 즐겁게 해주는
갓은 넉넉한 인심을 갖고 있는 서민을 대표하는 꽃 같다.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을 지나 겨울이 돌아오면
다시 그 예의 싸한 감칠맛을 지닌 갓김치가 되어
또 우리들을 행복하게 해 주겠지.
그렇게 누군가에게 행복을 안겨다 주고
어디에 있어도 감칠맛 내어주는
그런 사람이 되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