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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호 Oct 19. 2022

일상의 논어 <태백泰伯15>-시난始亂


子曰 師摯之始 關雎之亂 洋洋乎盈耳哉

자왈 사지지시 관저지난 양양호영이재


-공자가 말했다. "악사 지로 시작하여 관저로 끝날 때까지 음악이 귀에 가득 흘러넘쳤다."



중국 고전들을 읽다 보면 '이런 내용이 무슨 의미가 있나?'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문장들과 자주 만나게 됩니다. 특히 논어에는 이런 대목이 많지요. 그럼에도 전체를 천천히 공부하는 것이 의미 있는 이유는 그 과정에서 한문 해석 능력이 길러지고, 생각하기를 포기하지 않는 한 사유 능력 역시 자라기 때문입니다. 


사지師摯는 지라는 이름의 노나라 악사장을 말합니다. 시始가 있으니 궁중 음악회는 악사장의 연주로 시작되었나 봅니다. 난亂은 시始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쓰여 마침을 뜻하는데, 문자 그대로 어지러운 것이니 합창으로 웅장하게 마무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난亂이라는 글자가 재미있게 느껴지지요. 무질서 속의 질서, 그것이 곧 합창입니다. 저마다 자신의 목소리를 내면서도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합창이라는 음악 형식에서 공자는 이상적인 정치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국민 모두가 마음껏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가운데 생각과 생각이 모여 여론을 형성하고 형성된 여론이 정책에 반영되는 아름다운 정치의 이상향 말입니다. <태백> 8장에서 우리는 시詩와 예禮, 그리고 악樂의 형식미와 악樂이 상징하는 대동大同의 정신에 대해 살펴본 바 있습니다. 공자가 음악을 사랑한 것은 우연이 아닌 것이지요. 


관저關雎는 <<시경>>의 제1편 <국풍國風> 중 '주남周南 - 주공周公이 남방 지역에서 모은 노래'의 처음에 나오는 시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요조숙녀'와 '전전반측'이 이것에서 유래했지요. 


關關雎鳩 在河之洲 窈窕淑女 君子好逑

參差荇菜 左右流之 窈窕淑女 寤寐求之 

求之不得 寤寐思服 悠哉悠哉 輾轉反側

參差荇菜 左右采之 窈窕淑女 琴瑟友之 

參差荇菜 左右芼之 窈窕淑女 鍾鼓樂之

관관저구 재하지주 요조숙녀 군자호구

참치행채 좌우유지 요조숙녀 오매구지

구지부득 오매사복 유재유재 전전반측

참치행채 좌우채지 요조숙녀 금슬우지

참치행채 좌우모지 요조숙녀 종고낙지


꾸륵꾸륵 물수리는 황하 섬가에서 우는데

얌전한 아가씨 군자의 좋은 짝이라네

올망졸망 마름풀을 이리 찾고 저리 찾고

얌전한 아가씨를 자나깨나 구한다네

구하여도 얻지 못해 자나깨나 생각하니

그립고 그리워라 잠 못들어 뒤척이네

올망졸망 마름풀을 이리 뜯고 저리 뜯고

얌전한 아가씨를 비파 타며 사귄다네

올망졸망 마름풀을 이리저리 골라내고

얌전한 아가씨를 북을 치며 좋아하네 




"지난해 고등학생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수학, 영어 수준이 미달하는 학생이 2017년 대비 40% 이상 급증했다"며 "기초학력은 우리 아이들이 자유 시민으로서 삶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이라고 대통령은 역설했지요. 이 말은 '극빈의 생활을 하고 배운 게 없는 사람은 자유가 뭔지도 모를뿐더러 왜 개인에게 자유가 필요한지 필요성 자체를 느끼지 못한다'는 그의 인식의 연장선 위에 있습니다. 한마디로 수학, 영어 성적을 올리게 되면 자유가 뭔지 좀 알게 되고 그것의 필요성을 좀 느낄 수 있게 된다는 것인데, 그의 논리 전개 방식이 참으로 심오한 지라 이해하기 쉽지 않지요. 여하튼 학생들에게 수학과 영어를 열심히 공부할 또 하나의 자유를 선사해 주신 하해와 같은 성은에 다시 한 번 감읍할 따름입니다. 


자유, 자유, 자유, 자유, 자유, 자유. 자유의 은혜로움이 미세먼지처럼 넘쳐 흐르는 아름다운 시절에 한 곡 띄웁니다. 하덕규, 자유. 


https://youtu.be/Zgg9h0e34d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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