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장Final

by 오종호

본시 절이란 인연의 덧없음을 알고 속세를 떠나 참된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자들이 수행정진 하는 곳. 편재 스님과 함께 육 년의 세월을 보낸 견성이라는 법명의 개가 어떤 깨달음에 이르렀는지는 오 년이 지난 지금도 명쾌히 밝혀진 바가 없다. 다만 편재 스님이 남긴 말로 미루어 편재 스님보다 더 높은 어느 경지에 도달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 <스님과 개>라는 다큐멘터리 마지막 부분의 추측이었다.


‘입에는 말이 없고 마음에는 생각이 없다’는 글을 남기고 견성 스님(다큐멘터리의 나레이터는 이 부분부터 개를 이렇게 부르고 있었다.)이 편재 스님이 간 길을 따라 사라진 후 두 번 다시 그들을 보았다는 사람은 없었기에 그에게 그 글에 대한 해석을 들을 어떠한 기회도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이 나레이터는 그 무엇보다 안타깝다고 했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많은 사람들은 견성 스님이 사라질 때 마치 세상의 모든 것이 멈춘 듯한 기분이 들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칠흙 같은 산의 어둠과 견성 스님의 하얀 몸이 맞닿아 한 점이 되는 순간 일종의 섬광 같은 것이 크게 일어났다가 잦아들었다고 했다. 어쩌면 그것은 인간과 동물이라는 겉모습과는 무관하게 진정 깨달은 자에게서만 나타나는 영혼의 빛이라는 느낌이 들었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여하튼 그 후로 견성사는 ‘깨달음의 절’이라 불리며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곧이어 세계각지의 구도자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방문하는 최고의 성지로 각광을 받게 되었다. 개의 몸으로 깨달은 자의 반열에 올라선 견성 스님이 땅바닥에 남긴 글자는 비가 와도 없어지지 않고 아무리 많은 눈이 내려도 글자에는 절대 쌓이는 법이 없어 신비로움은 물론 방문객들에게 더욱 더 큰 경외감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가끔 머리에도 생각이 없는 사람들이 글자 주변에 둘러쳐진 울타리를 넘어서서 발로 글자를 지우려다가 관리하는 스님들에게 발각되어 벌금형에 처해지기도 했다. 처음에는 벌금 액수를 크게 높여야 한다는 여론이 빗발치기도 했으나 어떠한 경우에도 글자가 지워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글자를 훼손하려던 사람들이 두 번 다시는 두 다리로 멀쩡하게 걸을 수 없게 된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다시는 낮은 울타리를 넘어 들어가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한편 위대한 사람 스님과 개 스님 두 명을 동시에 사라지게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세 사람은 견성 스님이 사라지자마자 시주함으로 달려들어 시주함을 깨뜨렸다고 하는데 그 안에서는 약 20%의 백 원짜리 동전과 10%의 오십 원짜리 동전, 그리고 69%의 십 원짜리 동전과 1%의 국적 불명의 동전과 옛날 버스 토큰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십자가와 바닥에 떨어진 동전으로 씌어진 ‘眞’이라는 글자가 나타났다고 한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두 스님이 아마도 오래 전에 이런 일이 있을 것임을 짐작한 것이 아닐까 했고, 어쩌면 지워지지 않는 글자와 함께 세상 사람들을 깨우치고자 하늘이 내린 기적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것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사람들 각자의 해석에 맡기는 것이 좋겠다고 다큐 프로그램의 연출자는 굳이 프로그램의 말미에 얼굴을 들이밀고 한마디를 거들기도 했다.


여하튼 오래 전 몇 안 되는 제자들이 견성사에서 편재 스님의 몽둥이에 맞으며 하루를 보내던 시절의 몇 안 되는 신도들과 이제는 ‘깨달음의 절’을 지키기 위해 되돌아온 그 시절의 제자들의 증언에 따라 세 사람이 과거에 무엇을 했었던 사람이었는지가 훤히 드러나게 되었는데, 그로 인해 언제나 넘치는 사랑으로 충만했던 교회에서도 자취를 감추었다고 한다. 그들이 과연 자신들만의 의지로 그날 저녁 견성사에 나타났겠느냐는 의구심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지만 아무도 적극적으로 문제제기를 하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 여하튼 그날 저녁 이후로 세 사람의 인연은 분명 세 사람만의 특별한 인연으로 더욱 끈끈해지지 않았겠느냐 하는 것이 세간의 추측이었다.


또한, ‘깨달음의 절’ 덕분에 사회적으로도 의미심장한 변화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는데 대표적인 예가 전국의 절에서 개들의 출입을 허용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었다. 또한, 개들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의 수와 유기견의 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전국의 보신탕집들이 급격히 악화된 수익성으로 인하여 앞다투어 문을 닫기 시작했다.


부작용으로는 견성 스님의 이름을 딴 온갖 상품들이 신비한 효과가 있다는 그럴듯한 포장을 하고 사람들의 지갑을 끊임없이 공략했고, 개를 신으로 숭배하는 몇 개의 사이비 종교로 인한 사회문제들이 심심치 않게 터져 나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견성사의 기적을 보기 위해 산 아래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오늘도 줄을 지어 서 있다는 것은 현대인들의 가슴속에 참 인간으로 거듭나고 싶어하는 소망이 자리하고 있는 증거일지도 모른다는, 대중적 인기를 누리는 한 저명한 스님의 의견이 있었다. 입으로는 말을 해서는 안 되고 마음으로는 생각을 해서도 안 되니 자기는 다만 작은 메모지에 볼펜으로 짤막하게 글을 써서 의견을 전달할 수 밖에 없다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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