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II

by 오종호

내가 이미 얘기했다시피 담장은 정말 높았단다. 그 위를 가끔씩 날아다니는 새들이 까마득하게 보일 만큼 높았어. 그때 딱 한 번 새가 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 것 같아. 하지만 곧 잊어버렸지. 새가 된다는 것은 더 이상은 흙에다 그림을 그릴 수 없다는 얘기잖아. 미로의 길 바닥에, 나는 가지고 들어간 막대기로 계속 선을 그으며 걸었어. 목이 마르다 싶을 때마다 맑은 물이 담장에서 흘러 나오곤 했어. 그러고 보면 그 신이라는 존재가 나름 배려심은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


물을 마시면 기운이 났어. 그래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막대기로 그림을 그리곤 했지. 뭘 그렸냐고? 구름도 그리고 바람도 그리고, 또 별도 그렸던 것 같아. 잘 그리지는 못했던 것 같네. 하지만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그림 그리는 것을 참 좋아했던 것 같아.


이런 이런, 말이 너무 길어졌네. 그 미로에는 특징 하나가 있었어. 다른 미로들과는 분명히 다른. 막다른 길이 없더라고. 그냥 계속 나아갈 수 있었어. 때론 빙 돌아가는 굽은 길이 나오기도 했고, 어떤 때는 열 번 연속 우회전만 했던 것 같기도 한데 길은 어디론가 이어지더라고. 그러다가 지친 해가 하늘 끝에 간당간당 걸려있을 무렵 처음으로 막대기가 그은 선과 선이 만나게 된 거야. 그곳이 어딘지 짐작하겠니? 후후. 바로 미로의 문 앞이었단다. 내가 선과 선이 맞닿은 그 지점을 얼마나 오랫동안 지켜보고 서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아. 자네도 알잖아, 정말 오래 전 일이라는 것을.


해가 비켜난 자리에 달이 떠오르자 미로의 담장 사이로 보이는 하늘로 별들이 달려 내려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어. 담장들이 인간 세상의 빛을 차단하고 밤하늘을 고이 끌어 안았을 때의 그 어둠에서 쏟아지는 별빛들이란... 휴우, 눈물이 나고 말았어.


그리고 그때 태어나서 처음으로 정말 행복하다는 기분이 들었단다. 영원히 그렇게 있고 싶을 뿐이었어. 그 자리에서 그렇게 마지막 별까지 잠들어 버린 순간까지 서 있었던 것 같아. 달마저 삼켜 버릴 만큼 새벽하늘이 가까이 다가오고 나서야 나는 정신을 차린 것 같아. 그러고는 막대기가 그은 선과 선이 만난 그 자리에 그 막대기를 깊게 꽂아 두고 나왔지. 그 다음날 고향 마을을 떠나고 벌써 이십 년이 지났군. 내 나이도 마흔이 훌쩍 넘어 버렸어, 하하하.

keyword
작가의 이전글행복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