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 선생은 피아노를 전공했다. 피아노 선율을 좋아하는 사람은 안다. 그것이 얼마나 듣는 이의 마음을 편하게 하는지.
그러나 정작 그녀는 자신의 손끝에서 흘러 나오는 소리에 행복해하지 못했다. 사람, 그리고 세상과 소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신 그녀는 개에게 마음을 주었다. 반려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은 안다. 그 존재가 얼마나 돌보는 이의 마음을 애잔하게 하는지.
나는 그녀에게 멀리 떠나라고 조언했다. 당신이 뿌리를 내릴 땅은 이곳에 없다고. 당신이 원하는 돈도, 일도, 평온도 그곳에 있다고. 힘들겠지만 수소문하여 의지처를 찾고 버티라고. 뿌리 뽑힌 채 정처없이 걸어 본 사람은 안다. 그것이 얼마나 살아 있는 자의 마음을 정지하게 하는지.
일 년만 견디면 나의 뜻을 이해할 것이라고, 그러면 될 거라고, 나는 말했다. 그녀는 일주일 만에 돌아왔다. 나는, 돈이 없는 그녀에게 돈이 중요한 게 아니라며 시간을 일러 주고 전화하라고 했다. 최선이 아니면 차선을 찾아보자고 격려하면서. 노력해 보겠습니다. 나의 긴 조언 끝에서 그녀는 가벼운 목소리로 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노력한 사람은 안다. 노력해 본다는 말, 그것이 얼마나 노력한 이의 마음을 허탈하게 하는지.
그래도 괜찮다. 괜찮지 않을 것은 없다. 많은 사람에게 삶이란 본래 재즈 같은 것이니까. 악보를 볼 줄 몰라서 음악은 연주되었고, 악보를 볼 줄 몰라서 연주는 자유로웠다. 그녀도 그녀만의 즉흥 연주를 통해 자유로울 수 있기를 나는 바랐다. 연주를 멈추지 않기만 하면, 그녀는 온몸을 손가락 삼아 두드린 끝에 자신만의 인생의 선율을 들을 수 있을 테니.
좋은 대학에 들어가서 세상이 인정하는 커리어를 쌓느라 시간을 보내지 마라. 그렇게 시간을 채운 뒤 먼저 공간을 차지한 무수한 사람이 그대 앞에 가득하다. 누가, 말하지 않는 그대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가? 그 누가, 소리 없이 울려 퍼지는 그대의 연주에 귀기울여 주는가? 그대 뿐이다, 오직.
그대의 모순, 그대의 방황, 그대의 좌절, 그리고 그대의 욕망. 그대 조차 그대에게서 귀를 닫고 싶어질 때가 오면 기억하라. 그때야 말로 변주를 시작해야 할 순간임을. 오래 걸어온 길에서 걸음을 멈추고 심장이 가리키는 방향을 향해 전력 질주해 본 사람은 안다. 그곳에 오랫동안 '나'를 기다려 온 진짜 길이 있었음을.
당신은 시간을 등지고 위험을 향해 전속력으로 내달릴 용기가 있는가?